주간동아 779

2011.03.21

내진설계 안 된 곳에서 살기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yurim86

    입력2011-03-21 09: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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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3월 한 서울시의원에게서 ‘1992년 이후 준공된 아파트 중 내진설계 안 된 아파트 목록’을 입수한 기자는 경악했습니다. 저희 가족이 사는 서울 강서구 염창동의 아파트가 바로 그 목록에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14층 높이의 이 아파트는 1990년대 초반 준공했습니다. 1988년 개정된 건축법 개정령은 16층 이상 건물에만 내진설계를 의무화했습니다. 엄밀히 이 아파트는 법을 위반한 건 아닙니다. 그래도 마음은 편하지 않습니다. 지진이 저희 집만 피해서 오지는 않을 테니까요.

    3월 11일 이후 언론을 통해 일본 해안가의 목조 건물이 쓰나미(지진해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장면을 수없이 봤습니다. 볼 때마다 울컥합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고층 건물보다 저층 건물이, 목조 건물보다 조적조 건물이 지진에 취약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저층 건물은 빠른 속도로 흔들리고 압력도 많이 받아 지진이 나면 폭삭 무너질 가능성이 크고, 벽돌로 지은 조적조 건물은 건물이 무너질 때 벽돌 압력까지 더해져 충격이 크다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내진설계 법규는 이러한 견해를 거스릅니다. 1998년에는 16층 이상 건물만 내진설계를 의무화했고, 해가 갈수록 점차 층수가 내려와 2005년 개정된 현행법에는 3층 이상 건물까지만 내진설계를 의무화했습니다. 여전히 1~2층 건물은 내진설계 관련 법규가 없습니다. 그나마 3~5층 건물도 내진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뿐 아니라 건축사까지 내진설계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3~5층 건물의 내진설계 안전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내진설계 안 된 곳에서 살기
    1년 전 한 건축구조기술사가 말했습니다. “한국에 규모 7.0 지진 한번 와봐야 다들 정신 차리지, 그 전에는 아무리 말해도 ‘쇠귀에 경 읽기’일 뿐”이라고요. 그동안 ‘소가 도망갈 가능성이 없는데 굳이 외양간을 고칠 필요가 있느냐’고 말하던 정부는 이번 일본의 비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국민 역시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로 생각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도 대부분 서민이 내진설계가 안 된 건물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을 포함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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