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55

2004.10.14

80년대로 돌아간 일본판 러브 스토리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입력2004-10-08 09: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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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0년대로 돌아간 일본판 러브 스토리
    가타야마 교이치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는 올해 일본 영화계 최대의 히트작이다. 개봉 10주 만에 700만 관객을 동원했고 덩달아 원작 소설이 300만권 판매를 돌파했으며 같은 원작을 각색한 텔레비전 시리즈 역시 히트했으니, ‘원 소스 멀티 유즈’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다. 심지어 이 작품은 ‘겨울 연가’를 만든 윤석호 PD에 의해 한국에서 리메이크될 계획도 세워져 있다.

    영화는 결혼을 앞둔 30대 직장인인 사쿠가 사라진 약혼녀 리츠코를 뒤쫓아 자신의 첫사랑 기억이 담긴 고향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사쿠의 회상을 통해 관객들은 사쿠가 10대 소년이었던 80년대 중엽, 그가 동급생 아키와 나누었던 짧은 사랑에 대해 알게 된다.

    80년대로 돌아간 일본판 러브 스토리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줄거리는 전형적인 시한부 인생 러브 스토리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예쁘고 인기 많은 여자 주인공 아키는 백혈병 환자이고-영화는 방송작가 김수현처럼 희귀 병을 찾아 구글링(googling)하는 성의도 보이지 않는다-자잘한 상징과 그만큼이나 자잘한 십대의 언어들로 구성된 사쿠와 아키의 사랑 이야기 역시 이런 이야기의 전형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영화는 새로운 이야기로 튀는 대신 극도로 흔해빠진 전통적인 순애보 이야기로 관객들을 설득하려는 정공법을 유지한다. 그나마 조금 튀는 설정은 원작에 없는 약혼녀 리츠코를 이용해 사쿠와 아키의 이야기를 회상하는 또 하나의 관점을 부여한다는 것. 리츠코를 연기한 배우 시바사키 코우가 이 소설을 대중에게 소개해 히트시킨 일등공신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캐릭터는 좋아하는 소설에 잠입한 변장한 독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에서 단순무식한 순애보 정서만큼이나 중요한 건 80년대 일본에 대한 회고적 정서다. 영화의 러브 스토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 영화 그리고 80년대 일본 테크놀로지의 상징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는 소니 워크맨에 의존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사쿠와 같은 세대인 30대 일본인들에게 일찍 죽어 사라진 여자 주인공이라는 존재 자체가 지금은 세월에 쓸려가 기억만 남은 그네들의 젊은 시절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이런 회고 성향은 한국 관객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한국에서 일본에서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면, 그것은 본국에서 순애보 정서와 회고주의라는 양 날개를 타고 날았던 원작에서 회고주의라는 날개가 떨어져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떼어내면 남는 건 흔해빠진 신파 연애담밖에 없으니 관객들이 따분해 몸을 비튼다고 해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나중에 나올 한국판 리메이크가 훨씬 한국 관객들에게 설득력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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