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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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과 종교의 창으로 역사 읽기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

  •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09-11-18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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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과 종교의 창으로 역사 읽기

    사이토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뜨인돌/ 296쪽/ 1만3000원

    인문서는 원래 인문적 가치나 학술적 가치가 중시됐다. 하지만 영상이 세상을 뒤덮어 시각문화가 발달하고 인터넷의 등장으로 검색이 일상화한 후 책의 가치는 ‘임팩트’로 대체되고 있다.

    주목을 끄는 요소가 없는 책은 당연히 사람들의 관심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을 트리밍한 이야기가 주목받는 것처럼 인문서도 시공간을 트리밍해서 극적으로 서술한 책이 시선을 끌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 지식을 통합해 하나의 실에 꿰어서 간결하게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책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이토 다카시의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이 점에서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는 통사이자 분류사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역사서와는 서술체계가 완전히 다르다. 저자는 욕망, 모더니즘, 제국주의, 몬스터, 종교의 다섯 가지 코드(키워드)로 인류 역사에 대한 통찰력과 분석력을 보여주면서 ‘역사서란 이렇게 써야 하는 거야’라고 뽐낸다.

    첫 장 ‘욕망’의 코드에서는 커피, 금과 철, 브랜드와 도시 등을 다룬다. 차와 커피는 세계를 움직여온 음료다. 그런데 1773년에 일어난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미국은 영국에서 비싼 찻잎을 사들이는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됐다. 이때 여유로운 기분의 홍차에서 각성작용이 강한 커피로 전환한 것이 미국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던 한 원인이 됐다. 전 세계를 휩쓴 ‘스타벅스’에서 느낄 수 있듯 커피는 활력 있는 분위기와 사업적인 발전, 가격의 진보를 이룸으로써 근대 이후의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금과 철은 자동차의 양쪽 바퀴 노릇을 하며 세계사를 움직여왔다. 욕망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금이 마음을 부추기고,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실질적 힘을 가진 철이 이용됐다. 상품을 상품 자체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기호적 가치, 즉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나 무리 짓는 본능, 곧 도시화가 세계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됐다. 5세기 후반 서로마제국 멸망부터 15세기까지 약 1000년 동안은 기독교, 특히 가톨릭교회가 지배하는 중세시대다.

    이 시대에는 인간의 합리성과 명석함, 자유로운 발상과 창조력이 모두 억압받았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기나긴 중세의 침묵을 깨뜨린 뒤, 인간을 중시하는 근대가 시작됐다. 지금 세계를 이끌어가는 것은 자본주의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서양적 근대화인 모던의 압력과 절묘한 쌍을 이룬다. 근대는 신체 가운데 시각이 우위에 서는 시대다. 미셸 푸코가 ‘감옥의 탄생’에서 “‘시선’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했듯 근대에는 ‘보는 자’가 ‘보여지는 자’를 지배한다.

    컴퓨터 발달로 정보의 무료화가 가능해진 다음에 정보의 민주화가 아닌 독점으로 말미암아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됐다. 결국 정보를 쥐는 자가 권력의 중심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의 범람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최근 신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충만감, 촉각을 통해 느끼는 행복감, 미각과 후각 같은 감각에 호소하는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업신여기던 신체적인 감각, 특히 시각 이외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나폴레옹 등은 정복으로 대제국의 완성을 추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공룡기업들이 멈출 줄 모르는 확장욕, 사그라지지 않는 지배욕으로 제국의 야망을 발산한다. 금융자본가들의 패권다툼은 ‘글로벌리즘’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현대 제국주의의 문제다. 자본은 국가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제국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주의, 파시즘 등은 세계사에 나타난 몬스터들이다. 인간의 욕망을 무시한 채 이론적으로만 이상적 시스템으로 만들어진 사회주의는 70년을 넘기지 못하고 몰락했고,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적 시스템인 자본주의는 전 세계로 확장됐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정체 상태에 빠져들어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의 미래는 인류 전체의 미래다. 따라서 대량으로 회전시키고 소비하는 자본주의 방식을 개선하는 등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가상의 적을 두고 자기 민족에 대한 우월의식을 만들어내는 파시즘은 여전히 부활을 꿈꾸고 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일신교 3형제’는 인류 전쟁사의 주범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임에도 제국의 야망과 하나가 됐고, 이슬람교는 관용을 추구한다면서 세계적인 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두 종교는 유대교라는 일신교에 뿌리를 박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코드는 모두 인간의 감정이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인간 자체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를 만들어온 인간의 마음을 속속들이 이해할 수 있다. 역사는 철학, 심리학, 인류학 등과 함께 인간을 이해하는 기반 학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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