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37

2020.05.01

이슈

1조6000억 원 라임 사태, 배후는 ‘책임’ 돌리기 게임 뒤에 숨었다

대신증권과 우리은행, 펀드 판매 앞장…불완전판매 도마 올랐지만 배후는 수면 아래로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0-04-29 11: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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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임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라임자산운용. [라임자산운용 홈페이지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라임 사태)는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긴 금융사기 사건이다. 투자자를 끌어모으는 과정에 금융감독원에서 청와대로 파견 나갔던 김모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연루된 의혹이 제기돼 권력형 비리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펀드를 설계하고 운용한 이종필 라임자산운용 전 부사장과 김 전 행정관을 라임자산운용 측에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검거되면서 라임 사태에 대한 검찰 수사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문제는 1조6000억 원대에 이르는 막대한 금융사기 사건에 누가 책임을 지느냐다.

    라임 사태의 전말

    라임사건 관계도. [동아일보 뉴스디자인팀]

    라임사건 관계도. [동아일보 뉴스디자인팀]

    라임 사태는 지난해 10월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던 펀드에 들어 있던 주식가격이 하락하자 펀드런(투자자들이 일시에 환매를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 결국 환매 중단을 선언해 발생했다. 사모펀드가 환매를 중단한다는 것은 사실상 파산을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어 펀드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막대한 손실을 떠안게 된다. 특히 라임자산운용은 투자자들에게 펀드 부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연 5~8% 높은 수익률을 약속하며 상품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져 불완전판매 의혹도 받고 있다. 따라서 라임 사태는 부실 판매와 부실 운용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신증권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한 사모펀드의 상당 부분은 대신증권, 특히 대신증권 반포WM센터를 통해 투자가 이뤄졌다. 손실을 본 투자자 상당수가 대신증권을 비난하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부실한 펀드에 투자를 유도한 책임을 대신증권이 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대신증권은 부실한 펀드 운영으로 손실을 초래한 것은 라임자산운용이라며 손실에 대한 책임을 라임자산운용 측에 떠넘긴 채, 투자자를 유치해 수수료를 챙긴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이 사모펀드 투자 유치 때 손실 가능성 같은 불완전판매가 이뤄졌는지 조사해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것도 그래서다.



    우리은행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를 개인에게 가장 많이 판매한 곳 가운데 하나가 우리은행이다. 문제는 우리은행이 펀드 투자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투자 성향을 조작해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투자하도록 유도했다는 점이다. 경제채널 SBSCNBC 보도에 따르면 펀드 등 투자상품 가입에 필요한 ‘투자자 성형분석’을 우리은행 직원이 고객 몰래 임의로 체크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펀드를 판매하는 은행은 각 투자자에게 설명서를 교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우리은행 일부 직원은 ‘고객이 설명서 받기를 거부했다’고 허위로 표시했다고 한다. 각종 상품 설명자료인 투자설명서와 간이투자설명서 등을 고객이 받기를 ‘거부’했다며 은행 직원이 거짓으로 표시했다는 것. 

    만약 이 같은 SBSCNBC 보도가 사실이라면 은행 직원이 투자자를 속여 투자를 유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행위는 단순한 불완전판매 수준을 넘어 고객을 기만한 것이다.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이 우리은행 측이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불완전판매를 넘어 고객을 기만한 행위를 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 행정관

    전 청와대 행정관 김모. [뉴시스]

    전 청와대 행정관 김모. [뉴시스]

    라임자산운용 펀드 상품의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부실 판매한 뒤 수수료를 챙긴 대신증권과 우리은행 측의 불완전판매 책임은 라임자산운용의 부실 운용과 별개로 엄중히 다뤄야 할 문제다. 불완전판매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제2, 제3의 라임 사태 같은 고수익 위험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부실 운용으로 환매 중지 사태가 터진 후 사건의 본질인 부실 판매와 부실 운용에 대한 책임이 조명되는 대신, 청와대 행정관 연루 의혹이 터져 나왔다. 

    라임자산운용 펀드에 1조 원가량 모금한 장모 전 대신증권 반포WM센터장의 녹취록에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김모 씨가 등장한 것. 김씨는 금융감독원 출신으로 지난해 2월부터 청와대에 파견 나가 있는 상태였다.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장 전 센터장은 투자자들에게 김 전 행정관의 명함을 보여주면서 그가 라임자산운용 관련 문제를 해결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투자자를 안심시켰다. 김 전 행정관은 김봉현 전 회장으로부터 직무상 정보와 편의를 제공하는 대가로 4900만 원어치 뇌물을 받고 김 회장에게 금융감독원의 라임자산운용 검사 관련 내부 정보를 건넨 혐의로 4월 18일 구속됐다. 실제로 김 전 행정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검찰이 수사를 통해 명백히 밝혀야 할 문제다.

    김봉현과 이종필

    김봉현(왼쪽), 이종필. [뉴시스, 뉴스1]

    김봉현(왼쪽), 이종필. [뉴시스, 뉴스1]

    김 전 행정관과 고향 친구 사이로 알려진 김봉현 전 회장은 경기도 버스회사 수원여객운수에서 161억 원대 횡령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영장이 청구된 바 있다. 한동안 잠적했던 그는 4월 23일 서울 성북구 빌라에서 체포됐고, 26일 구속됐다. 라임자산운용의 ‘돈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그가 라임자산운용 부실 운용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특히 김 전 행정관 외에 라임자산운용 부실 운용에 또 다른 관련자가 있는지에 따라 라임 사태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 비화할 휘발성을 안고 있다. 

    이종필 전 부사장은 라임자산운용 펀드를 기획, 운용해 라임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는 라임자산운용이 과거 최대주주였던 코스닥 상장사 리드의 횡령 사건에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박모 전 리드 부회장이 유상증자와 전환사채 발행으로 800억 원대 자금을 유치해 횡령할 때 라임자산운용 자금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 검찰은 지난해 11월 박 전 부회장과 함께 이 전 부사장에게도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잠적했고, 올해 4월 23일 체포돼 26일 구속됐다.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이 구속되면서 검찰은 이제 라임 사태의 부실 운용과 정치권 비호 의혹에 수사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부실 운용에 대한 검찰 수사뿐 아니라, 부실 판매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등 감독 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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