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옥수수밭을 본 적 있는가. 밭고랑 따라 줄 맞춰 늠름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군부대를 보는 것 같다. 옥수수부대. 이 밭고랑을 따라 천천히 거닐다 보면 마치 부대를 사열하는 지휘관이라도 된 듯하다. 한 그루 잡고서 인사를 건넨다.
“가뭄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 고맙구나.”
옥수수꽃은 연애를 잘한다. 옥수수는 키가 2m 남짓으로 크다. 줄기 맨 꼭대기에 수꽃이 부챗살처럼 원추형 꽃차례로 핀다. 그저 수수한 꽃밥을 수백 개 달고서. 그럼 암꽃은 어디에 있나. 수꽃보다 사람 팔 하나 정도 아래 줄기에서 다발 모양으로 다소곳이 핀다.
바람 따라 훨훨 날아
옥수수는 풍매화가 기본. 수꽃이 맨 꼭대기에서 꽃가루를 아래로 훌훌 날리면 되는 구조다. 바람을 타면서 연애를 즐길 수 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가루는 바람이 없더라도 2m 남짓 난다. 바람이 불면 수백m, 그 이상도 날아가며 짝을 찾는다. 그래서 옥수수는 잡종이 쉽게 생긴다. 흰 옥수수와 검은 옥수수를 가까이 심으면 희고 검고 붉은 알록달록 옥수수가 열린다. 이럴 때 옥수수를 바람둥이라고 할까. 식물학에선 ‘크세니아’라고 한다. 순종을 잇고 싶으면 다른 품종과 넉넉히 거리를 띄워 심거나 보름 이상 충분한 시간 차를 둬야 한다.
옥수수는 중매쟁이로 바람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꽃가루가 좋아 특히 꿀벌을 많이 불러들인다. 꽃가루가 한창 무르익는 오전이면 수꽃 이삭마다 꽃가루를 모으려는 꿀벌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벌이 꽃가루를 묻혀 암꽃으로 날아가진 않지만 꽃밥을 흔들어줌으로써 그들 나름 구실을 한다.
옥수수는 수꽃과 암꽃이 피는 때가 차이 난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수꽃이 암꽃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먼저 핀다. 그다음 암꽃에서 우리가 보통 ‘옥수수수염’이라 부르는 암술 수백 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시간 차를 두는 이유는 제꽃가루받이가 아닌 딴꽃가루받이를 하고자 함이다.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암수가 장단을 맞춰 한다. 그런 점에서 옥수수는 암꽃도 수꽃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극적이다. 꽃가루가 잘 준비되면 암술은 암 이삭에서 여러 겹으로 된 껍질(포엽)을 뚫고 서서히 그 머리를 내민다. 여리면서도 비단결같이 고운 꽃술을.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솜털이 촘촘하다. 이건 바로 꽃가루가 어디로든 날아들면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력을 거슬러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연애 전략은 암술의 길이에 숨어 있다. 보통 볏과식물은 암술이 그리 길지 않다. 1cm조차 안 된다. 하지만 옥수수는 길다. 얼추 우리네 손바닥 길이 정도. 딴꽃가루받이를 잘하게끔 발달했다.
이 암술이 길기만한 게 아니다. 뭐든 길면 우리네 머리카락처럼 아래로 처지기 마련인데 옥수수 암술은 그렇지 않다. 중력을 거스른다. 이삭에서 나와 옆으로 뻗다 끝부분을 위로 향해 구부린다. 마치 낚시를 하려는 모양새다. 이는 꽃가루가 어디서 날아오든, 상황이 어떻든 고루 잘 받고자 하는 암술의 연애 전략이다. 놀랍지 않은가. 사랑의 힘은 그만큼 위대하다.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옥수수 쓰임새를 확대해간다. 그런 실험 가운데 하나가 옥수수 암술이 나오기 전 수정을 못 하게 인위적으로 막으면 암술이 한참 더 자란다. 어떠하든 수정을 하고 싶은 식물의 본성 때문이리라. 이때 옥수수수염에 특정 성분이 아주 많아진다는 사실을 농촌진흥청 연구에서 밝혀냈다.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원료로 쓰는, 항산화물질인 ‘메이신’ 함량이 무려 13배 이상 늘어난단다. 정상적으로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해 열매를 맺고 싶은데 이를 억제하니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거다.
이렇게 여러 면에서 옥수수는 연애의 강자다. 하지만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다 보니 옥수수는 이제 사람 없이는 종을 이어가기 어렵다. 옥수수를 거두지 않고 그냥 두면 나중에 땅으로 쓰러지더라도 이삭째 쓰러진다. 낟알 수백 개가 여기저기 흩어지지 못하고 한군데 모인 그 상태 그대로. 이듬해 봄이 되면 낟알 수백 개가 한군데서 거의 같이 싹이 난다. 이래서는 과잉 경쟁으로 자손을 남기기 어렵다. 이제는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옥수수. 사람을 살리지만 사람이 심고 가꿔야 산다.
무더운 여름, 달달한 풋옥수수를 먹을 때면 설레는 연애감정을 되새겨본다.
옥수수 : 외떡잎식물로 볏과의 한해살이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다. 우리나라로 옥수수가 들어온 건 16세기 후반 중국으로부터. 줄기는 곧게 높이 2m 남짓 자란다. 옥수수는 7월부터 8월에 꽃을 피운다. 암꽃과 수꽃이 같은 포기에서 따로 피는 단성화(單性花)다.
풍매화이며, 딴꽃가루받이를 한다. 수이삭은 이삭이 나온 뒤 3~5일쯤 꽃가루를 날리며, 꽃이 피는 기간은 일주일쯤이고 오전 10~11시에 가장 많이 핀다. 옥수수수염 하나가 옥수수 알갱이 하나와 연결돼 있어 하나가 수정되면 알갱이가 하나 여문다. 꽃말은 재보(財寶).
“가뭄을 이겨내고 꽃을 피워 고맙구나.”
옥수수꽃은 연애를 잘한다. 옥수수는 키가 2m 남짓으로 크다. 줄기 맨 꼭대기에 수꽃이 부챗살처럼 원추형 꽃차례로 핀다. 그저 수수한 꽃밥을 수백 개 달고서. 그럼 암꽃은 어디에 있나. 수꽃보다 사람 팔 하나 정도 아래 줄기에서 다발 모양으로 다소곳이 핀다.
바람 따라 훨훨 날아
옥수수는 풍매화가 기본. 수꽃이 맨 꼭대기에서 꽃가루를 아래로 훌훌 날리면 되는 구조다. 바람을 타면서 연애를 즐길 수 있다. 눈에 보일 듯 말 듯 작은 꽃가루는 바람이 없더라도 2m 남짓 난다. 바람이 불면 수백m, 그 이상도 날아가며 짝을 찾는다. 그래서 옥수수는 잡종이 쉽게 생긴다. 흰 옥수수와 검은 옥수수를 가까이 심으면 희고 검고 붉은 알록달록 옥수수가 열린다. 이럴 때 옥수수를 바람둥이라고 할까. 식물학에선 ‘크세니아’라고 한다. 순종을 잇고 싶으면 다른 품종과 넉넉히 거리를 띄워 심거나 보름 이상 충분한 시간 차를 둬야 한다.
옥수수는 중매쟁이로 바람에만 만족하지 않는다. 꽃가루가 좋아 특히 꿀벌을 많이 불러들인다. 꽃가루가 한창 무르익는 오전이면 수꽃 이삭마다 꽃가루를 모으려는 꿀벌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장관이다. 벌이 꽃가루를 묻혀 암꽃으로 날아가진 않지만 꽃밥을 흔들어줌으로써 그들 나름 구실을 한다.
옥수수는 수꽃과 암꽃이 피는 때가 차이 난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수꽃이 암꽃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먼저 핀다. 그다음 암꽃에서 우리가 보통 ‘옥수수수염’이라 부르는 암술 수백 개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시간 차를 두는 이유는 제꽃가루받이가 아닌 딴꽃가루받이를 하고자 함이다.
연애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암수가 장단을 맞춰 한다. 그런 점에서 옥수수는 암꽃도 수꽃에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극적이다. 꽃가루가 잘 준비되면 암술은 암 이삭에서 여러 겹으로 된 껍질(포엽)을 뚫고 서서히 그 머리를 내민다. 여리면서도 비단결같이 고운 꽃술을. 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솜털이 촘촘하다. 이건 바로 꽃가루가 어디로든 날아들면 놓치지 않겠다는 의미다.
중력을 거슬러
여기서 또 하나 눈여겨봐야 할 연애 전략은 암술의 길이에 숨어 있다. 보통 볏과식물은 암술이 그리 길지 않다. 1cm조차 안 된다. 하지만 옥수수는 길다. 얼추 우리네 손바닥 길이 정도. 딴꽃가루받이를 잘하게끔 발달했다.
이 암술이 길기만한 게 아니다. 뭐든 길면 우리네 머리카락처럼 아래로 처지기 마련인데 옥수수 암술은 그렇지 않다. 중력을 거스른다. 이삭에서 나와 옆으로 뻗다 끝부분을 위로 향해 구부린다. 마치 낚시를 하려는 모양새다. 이는 꽃가루가 어디서 날아오든, 상황이 어떻든 고루 잘 받고자 하는 암술의 연애 전략이다. 놀랍지 않은가. 사랑의 힘은 그만큼 위대하다.
사람들은 좀 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옥수수 쓰임새를 확대해간다. 그런 실험 가운데 하나가 옥수수 암술이 나오기 전 수정을 못 하게 인위적으로 막으면 암술이 한참 더 자란다. 어떠하든 수정을 하고 싶은 식물의 본성 때문이리라. 이때 옥수수수염에 특정 성분이 아주 많아진다는 사실을 농촌진흥청 연구에서 밝혀냈다.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원료로 쓰는, 항산화물질인 ‘메이신’ 함량이 무려 13배 이상 늘어난단다. 정상적으로 연애도 하고 사랑도 해 열매를 맺고 싶은데 이를 억제하니 이런 결과를 가져온 거다.
이렇게 여러 면에서 옥수수는 연애의 강자다. 하지만 사람 손을 너무 많이 타다 보니 옥수수는 이제 사람 없이는 종을 이어가기 어렵다. 옥수수를 거두지 않고 그냥 두면 나중에 땅으로 쓰러지더라도 이삭째 쓰러진다. 낟알 수백 개가 여기저기 흩어지지 못하고 한군데 모인 그 상태 그대로. 이듬해 봄이 되면 낟알 수백 개가 한군데서 거의 같이 싹이 난다. 이래서는 과잉 경쟁으로 자손을 남기기 어렵다. 이제는 사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옥수수. 사람을 살리지만 사람이 심고 가꿔야 산다.
무더운 여름, 달달한 풋옥수수를 먹을 때면 설레는 연애감정을 되새겨본다.
옥수수 : 외떡잎식물로 볏과의 한해살이풀.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다. 우리나라로 옥수수가 들어온 건 16세기 후반 중국으로부터. 줄기는 곧게 높이 2m 남짓 자란다. 옥수수는 7월부터 8월에 꽃을 피운다. 암꽃과 수꽃이 같은 포기에서 따로 피는 단성화(單性花)다.
풍매화이며, 딴꽃가루받이를 한다. 수이삭은 이삭이 나온 뒤 3~5일쯤 꽃가루를 날리며, 꽃이 피는 기간은 일주일쯤이고 오전 10~11시에 가장 많이 핀다. 옥수수수염 하나가 옥수수 알갱이 하나와 연결돼 있어 하나가 수정되면 알갱이가 하나 여문다. 꽃말은 재보(財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