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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류부터 살펴보자. 제주의 육류 하면 뭐니 뭐니 해도 흑돼지다. 제주 흑돼지는 비계가 적고 육질이 좋아 고소하면서도 졸깃한 맛이 특징이다. 돼지고기를 숯불 바비큐로 즐긴다면 호주산 시라즈(Shiraz)나 칠레산 메를로(Merlot) 와인을 곁들여보자. 더운 기후에서 만들어진 농익은 과일향과 오크 숙성으로 얻어진 스파이시한 향이 직화로 구운 돼지고기에서 느껴지는 불맛과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제주에는 돔베고기라는 독특한 요리도 있다. 제주말로 돔베는 도마를 뜻하는데, 돔베고기는 촉촉하게 찐 돼지고기를 먹기 좋게 썰어 도마에 내는 요리다. 그 맛이 부드럽고 담백해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나 미국 오리건(Oregon)산 피노 누아르(Pinot Noir)처럼 섬세한 레드 와인과 잘 어울린다. 피노 누아르는 제주 순대에 곁들여도 좋다. 제주 순대에는 찹쌀 대신 메밀가루가 들어가 맛이 약간 거친 듯하지만 피노 누아르의 은은한 흙향과 제법 잘 어울린다.
제주 재래시장에서는 독특한 마늘치킨을 판다. 양념에 마늘을 섞는 대신 바삭하게 튀긴 닭에 으깬 마늘을 얹어 먹는데, 치킨의 고소함과 마늘의 알싸함이 어울려 그 맛이 일품이다. 마늘치킨에는 독일산 리슬링(Riesling) 와인을 곁들여보자. 리슬링이 가진 꿀처럼 달콤한 향이 마늘향과 조화를 이루고 와인의 상큼한 산도가 치킨의 기름진 맛을 잡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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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 성게, 해삼처럼 바다향을 내뿜는 해물은 체리향이 은은한 프랑스산 로제(Rose) 와인과 궁합이 잘 맞는다. 방어, 고등어, 갈치 등 생선 조림에도 차가운 로제 와인을 곁들이면 생선 조림의 매콤함과 로제 와인의 향긋함이 아름다운 마리아주(mariage·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선사할 것이다.
맛있는 제주식 식사 뒤엔 입가심도 당연히 제주식이어야 한다. 쫀득한 찹쌀에 팥고물이 듬뿍 묻은 오메기떡과 귤잼이 가득한 하르방빵에는 달콤한 캐나다산 아이스 와인이 그만이다. 모스카토 다스티(Moscato d’Asti)나 세미세코 카바(Semi-Seco Cava)처럼 단맛이 나는 스파클링 와인을 곁들여도 좋다. 떡과 빵을 먹고 난 뒤 텁텁함을 와인의 기포가 개운하게 씻어줄 것이다. 간단한 후식을 원한다면 감귤초콜릿이나 볶은 우도 땅콩에 포트(Port) 와인을 한 잔 더해보자. 포트 와인의 진한 과일향과 오크향이 초콜릿이나 견과류와 어우러져 훌륭한 디저트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