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치니 오페라 ‘일 트리티코’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물음을 다양한 방식으로 들여다본 작품이다.
공연은 기대 이상이었다. 영상물로 익히 접했던 자코모 안드리코의 무대와 크리스티나 페촐리의 연출을 실제로 마주하는 재미와 감흥이 예상보다 더 컸고, 본고장 가수로 구성된 주역들의 뛰어난 가창과 연기도 무척 만족스러웠다. 또 이탈리아 여성 지휘자로 성신여대 교환교수이기도 한 잔나 프라타가 이끈 오케스트라 역시 대체로 무리 없는 연주로 가수들을 잘 뒷받침했다.
그러나 더 큰 즐거움은 ‘일 트리티코’와 만남 그 자체였다. ‘3면 제단화’를 뜻하는 제목처럼 세 편의 단막 오페라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놓은 이 작품은 푸치니가 완성한 마지막 오페라다. 푸치니의 원숙한 기법과 인생에 관한 통찰이 담긴 걸작으로 세 작품이 한 무대에 오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연출상 난점 때문에 온전한 형태로 상연되는 경우는 드물다.
푸치니는 단테 ‘신곡’에서 착안해 이 작품을 썼는데, 세 편의 단막 오페라 가운데 첫 작품인 ‘외투’는 지옥편, 두 번째 ‘수녀 안젤리카’는 연옥편, 마지막 ‘자니 스키키’는 천국편에 해당한다. 문제는 각 오페라의 어떤 면이 지옥, 연옥, 천국을 나타내는가 하는 점인데 보통은 설정 자체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즉 서민의 고달픈 삶과 불륜 이야기를 다룬 ‘외투’는 암울한 비극이고,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채 속죄와 수행의 나날을 보내던 한 수녀의 이야기를 다룬 ‘수녀 안젤리카’는 종교적 신비극, 그리고 피렌체 부호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 ‘자니 스키키’는 이탈리아 희극 오페라의 전통을 계승한 풍자극이다.
‘일 트리티코’ 같은 걸작을 한자리에서 집중적으로, 그것도 완성도 높은 공연으로 접하면 평소와는 다른 발견이나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필자는 이번 공연을 통해 세 작품에 담긴 일관된 세 가지 소재에 주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집, 아이, 사랑이었다.
‘외투’에서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집 없는 하층민이고, 주인공 부부는 병들어 죽은 아이로 고통받고 있으며, 그 여파로 불륜의 비극이 벌어진다. ‘수녀 안젤리카’에서 수녀들은 집을 떠나온 또는 아직 집에 도달하지 못한 존재들이고, 주인공 안젤리카는 갓난아기 때 두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결하지만 마지막 순간 구원을 받는다. ‘자니 스키키’는 우여곡절 끝에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데, 주인공 스키키는 집을 얻었고 그의 딸은 사랑하는 청년과 결혼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푸치니는 집, 아이, 사랑으로 이뤄지는 ‘가정’이야말로 인생의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아울러 ‘일 트리티코’는 인간을 옭아매는 관습과 율법의 가혹함, 그리고 그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양면성에 대한, 마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상념에도 부채질을 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