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기르는 채소 가운데 배추만큼 즐겨 먹는 게 있을까. 어느 집 밥상에서나 배추김치는 기본이요, 배추를 국이나 겉절이, 쌈으로도 즐겨 먹으니까. 게다가 김치냉장고가 일반화하면서 사시사철 배추김치 없는 밥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배추꽃을 본 적 있는가. 가을이면 전국 어디나 배추밭이 널리는데 왜 꽃을 보기는 어려울까. 그 이유는 재배농가에서 꽃을 원하지 않기 때문. 꽃을 피운다는 건 곧 씨를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농가에서는 대부분 씨앗을 손수 받지 않고, 종묘상에서 사다 심는다. 농사꾼이 배추를 기르면서 원하는 건 속이 잘 찬 배추. 어쩌다 꽃을 피우려고 꽃줄기를 올리는 순간, 그 배추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사라진다. 안타깝지만 배추는 돈에 가려 제대로 된 한살이를 마치지 못한다.
눈도 입도 즐겁게
그럼에도 배추꽃을 관상용으로 즐기거나 토종 씨앗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꽃을 피워 씨앗 받는 일을 기꺼이 하려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좀 번거롭다.
배추가 꽃을 피우자면 가을에 심은 배추가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꽃줄기를 올려야 한다.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먼저 시간부터 그렇다. 가을배추는 씨를 뿌리고 석 달 정도면 속이 차 시장에 나온다. 그런데 꽃을 피우려면 긴긴 겨울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개량 배추는 영하 4도면 냉해를 입고, 추운 겨울을 나면서 대부분 얼어 죽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9월 말 늦게 배추 씨를 뿌려, 포기가 차지 않은 로제트 상태에서 겨울을 나게 하면 된다.
4월에 접어들면 우리 산천에 피는 꽃들이 제법 많다. 매화나무와 앵두나무가 하얀 꽃을 활짝 피운다. 살구꽃은 연분홍빛으로 그 모습을 막 드러낸다. 이와 견줘 채소 꽃은 딸기 말고는 아직 귀한 철. 배추가 슬그머니 장다리(꽃줄기)를 올린다. 푸른 잎을 배경으로 노란 꽃이 점점이 피어난다. 한창 필 때는 눈길을 확 잡아챌 만큼 유혹적이다. 향기는 덤덤한 편.
배추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다. 달달하면서도 약간 매운맛이 난다. 또 아삭하니 씹히는 식감이 좋다. 봄을 깨우는 맛이라고도 하겠다. 혀가 살고 몸이 깨어나는 그런 맛. 또한 배추꽃은 꽃차례를 따라 아주 많이 또 오래도록 피니 음식에 고루 넣어 먹어도 좋다. 샐러드에 넣기도 하고, 주먹밥에 넣으면 눈이 즐겁고 저절로 손이 간다. 화분에 배추 두어 포기만 살려두면 이렇게 봄꽃 밥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내가 배추꽃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배추꽃이 지닌 성질 때문이다. 배추는 십자화과 식물로 사랑을 좀 특별나게 한다. 한집안 식구끼리는 쉽게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생물학 용어를 빌리면 ‘자가불화합성’. 안정된 삶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늘 새롭고자 하는 성질이라고나 할까.
안정보다 새로움을
좀 더 설명해보자. 배추꽃은 갖춘꽃으로 한 꽃 안에 암술과 수술이 함께 있다. 하지만 한 꽃 안의 암술과 수술은 물론이고, 같은 포기에 있는 꽃끼리는 수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람으로 치면 한집안끼리는 결혼을 꺼리는 것과 비슷하다 할까. 어쩔 수 없이 자가수정하게 되면 부모 때보다 세력이 약해진다. 싹이 잘 트지 않으며, 싹이 트더라도 다른 식물들과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만일 강제로 3~4대까지 계속 자가수정을 시도하면 배추는 단호히 거부한다. 구차하게 목숨을 이어가느니 아예 대를 끊고자 한다. 마치 배추라는 종의 존엄을 지키겠다는 결기가 느껴질 만큼.
반대로 자연 상태에서는 교잡이 쉽게 일어난다. 그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오래전 지중해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숭’이라는 채소가 중국에서 자연교잡을 해 원시형 배추가 됐다. 이 배추가 속이 차는 결구배추로 발전한 건 청나라 초기였다. 다시 이 배추가 지금처럼 속이 꽉 찬 포기배추가 된 건 1950년대 우장춘 박사가 육종한 결과다. 지금은 봄배추와 여름배추까지 나왔다. 그러니까 배추는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접어든 100여 년 사이 엄청나게 변화 발전하고 있는 채소다.
오늘날도 배추는 자신과 비슷한 갓이나 유채하고도 쉽게 사랑을 해 생명을 이어간다. 이렇게 교잡이 일어나면 그 배추는 ‘사람 기준으로 봤을 때’ 결구가 잘 안 되고, 수량도 떨어진다. 전문 육종가들은 이런 교잡을 방지하고자 채종포(씨받이밭) 사이 거리를 2km 이상 띄운다.
하지만 배추는 스스로를 믿는다. 사람을 포함한 자연환경이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 않는가. 하여, 배추는 한집안끼리 사랑을 거부하고 다양한 유전자를 가짐으로써 그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본능을 꾸준히 살려가려 한다. 오늘 나는 배추꽃을 먹고, 꿈에서나마 노란 배추꽃 속으로 유전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
배추꽃 : 십자화과 두해살이풀. 노란 배추꽃은 꽃잎 4개가 활짝 벌어져 핀다. 꽃잎은 낱낱이 떨어지고 4개의 꽃받침조각마다 꽃잎이 하나씩 달려 열십자를 이룬다. 꽃에는 암술 1개와 수술 6개가 있는데, 수술 4개는 길고 2개는 짧다. 긴 장다리(꽃줄기)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 아래서부터 피기 시작해 꽃줄기를 위로 계속 밀어 올리며 차례차례 핀다(총상꽃차례). 4월부터 피기 시작해 5월 말까지 볼 수 있다. 꽃말은 쾌활.
그런데 배추꽃을 본 적 있는가. 가을이면 전국 어디나 배추밭이 널리는데 왜 꽃을 보기는 어려울까. 그 이유는 재배농가에서 꽃을 원하지 않기 때문. 꽃을 피운다는 건 곧 씨를 받는다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농가에서는 대부분 씨앗을 손수 받지 않고, 종묘상에서 사다 심는다. 농사꾼이 배추를 기르면서 원하는 건 속이 잘 찬 배추. 어쩌다 꽃을 피우려고 꽃줄기를 올리는 순간, 그 배추는 상품으로서 가치가 사라진다. 안타깝지만 배추는 돈에 가려 제대로 된 한살이를 마치지 못한다.
눈도 입도 즐겁게
그럼에도 배추꽃을 관상용으로 즐기거나 토종 씨앗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은 꽃을 피워 씨앗 받는 일을 기꺼이 하려 한다. 그런데 이 일이 좀 번거롭다.
배추가 꽃을 피우자면 가을에 심은 배추가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 꽃줄기를 올려야 한다.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먼저 시간부터 그렇다. 가을배추는 씨를 뿌리고 석 달 정도면 속이 차 시장에 나온다. 그런데 꽃을 피우려면 긴긴 겨울을 얼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야 한다. 개량 배추는 영하 4도면 냉해를 입고, 추운 겨울을 나면서 대부분 얼어 죽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9월 말 늦게 배추 씨를 뿌려, 포기가 차지 않은 로제트 상태에서 겨울을 나게 하면 된다.
고구마 수프에 넣은 배추꽃. 배추김치 버무리기. 배추꽃과 거의 같은 시기에 피는 살구꽃(왼쪽부터).
배추꽃은 사람이 먹을 수 있다. 달달하면서도 약간 매운맛이 난다. 또 아삭하니 씹히는 식감이 좋다. 봄을 깨우는 맛이라고도 하겠다. 혀가 살고 몸이 깨어나는 그런 맛. 또한 배추꽃은 꽃차례를 따라 아주 많이 또 오래도록 피니 음식에 고루 넣어 먹어도 좋다. 샐러드에 넣기도 하고, 주먹밥에 넣으면 눈이 즐겁고 저절로 손이 간다. 화분에 배추 두어 포기만 살려두면 이렇게 봄꽃 밥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내가 배추꽃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배추꽃이 지닌 성질 때문이다. 배추는 십자화과 식물로 사랑을 좀 특별나게 한다. 한집안 식구끼리는 쉽게 사랑하지 않으려 한다. 생물학 용어를 빌리면 ‘자가불화합성’. 안정된 삶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서 늘 새롭고자 하는 성질이라고나 할까.
안정보다 새로움을
알록달록 봄된장주먹밥.
반대로 자연 상태에서는 교잡이 쉽게 일어난다. 그 역사를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오래전 지중해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숭’이라는 채소가 중국에서 자연교잡을 해 원시형 배추가 됐다. 이 배추가 속이 차는 결구배추로 발전한 건 청나라 초기였다. 다시 이 배추가 지금처럼 속이 꽉 찬 포기배추가 된 건 1950년대 우장춘 박사가 육종한 결과다. 지금은 봄배추와 여름배추까지 나왔다. 그러니까 배추는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접어든 100여 년 사이 엄청나게 변화 발전하고 있는 채소다.
오늘날도 배추는 자신과 비슷한 갓이나 유채하고도 쉽게 사랑을 해 생명을 이어간다. 이렇게 교잡이 일어나면 그 배추는 ‘사람 기준으로 봤을 때’ 결구가 잘 안 되고, 수량도 떨어진다. 전문 육종가들은 이런 교잡을 방지하고자 채종포(씨받이밭) 사이 거리를 2km 이상 띄운다.
하지만 배추는 스스로를 믿는다. 사람을 포함한 자연환경이 또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지 않는가. 하여, 배추는 한집안끼리 사랑을 거부하고 다양한 유전자를 가짐으로써 그 어떤 환경에서든 살아남기 위한 진화적 본능을 꾸준히 살려가려 한다. 오늘 나는 배추꽃을 먹고, 꿈에서나마 노란 배추꽃 속으로 유전자 여행을 떠나고 싶다.
배추꽃 : 십자화과 두해살이풀. 노란 배추꽃은 꽃잎 4개가 활짝 벌어져 핀다. 꽃잎은 낱낱이 떨어지고 4개의 꽃받침조각마다 꽃잎이 하나씩 달려 열십자를 이룬다. 꽃에는 암술 1개와 수술 6개가 있는데, 수술 4개는 길고 2개는 짧다. 긴 장다리(꽃줄기)에 꽃자루가 있는 여러 개의 꽃이 어긋나게 붙어 아래서부터 피기 시작해 꽃줄기를 위로 계속 밀어 올리며 차례차례 핀다(총상꽃차례). 4월부터 피기 시작해 5월 말까지 볼 수 있다. 꽃말은 쾌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