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마니아라면 안다. 소보로빵(곰보빵)이 다 같은 소보로빵이 아니고, 단팥빵 소의 양과 질은 빵집마다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정은진(36·사진)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동네 빵집을 찾아가는 ‘빵 투어’에 나섰다가 어느새 그 분야 전문가가 됐고, ‘정낭자의 빵생빵사’라는 책까지 썼다. 그의 빵 투어 여정이 담긴 인터넷 블로그는 2011, 2012, 2013년 연속 네이버 차·커피·디저트 분야 파워블로그에 선정됐다. 책에는 7년 가까이 탐색한 빵집 가운데 고르고 골라 알짜배기 동네 빵집 36곳만 소개했다.
회사 그만두고 시작한 빵 투어
“책에는 기존 유명 빵집이 상당수 빠져 있어 의아한 분도 있을 거예요. 동네마다 숨어 있는 맛있는 빵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책을 준비하는 동안 없어진 집도 있고, 콘셉트가 바뀐 곳도 있어요.”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그는 “만화에서 다이애나가 앤에게 구워주던 애플파이가 참 맛있어 보였다. 어릴 적부터 그들처럼 티타임을 갖고 디저트를 나눠 먹는 환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블로그 프로필 아래 적힌 문구가 눈에 띈다. ‘빵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즐겨야 한다.’
빵집 36곳은 어떻게 골랐을까. 그는 “맛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가게 자체에 ‘임팩트’가 있는 곳을 위주로 골랐다. 임팩트라는 건 얘깃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과 친분이 있지만 실리지 않은 곳도 많아 서운해할 것”이라며 웃었다.
‘맛있는 빵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그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먼저 제빵을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은 빵을 평가하는 데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내 입에는 썩 맛있지 않은 빵인데 제빵사들은 ‘얼마나 대단한 빵인 줄 아느냐’며 기술적으로 평가해요. 그런데 소비자는 맛이 없으면 다시는 안 사거든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겠다 싶었죠.”
그는 처음 가는 빵집이라면 먼저 호밀빵, 잡곡빵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빵이기도 하고 맛이 담백해 좋은 재료를 썼는지, 간이 맞는지 판별하기 쉽기 때문이다.
“빵도 음식이니 간이 맞고 재료가 잘 어울려야 해요. 시식용 빵이 따로 없으면 호밀빵이나 잡곡빵을 사와서 맛을 봐요. 그리고 청결, 서비스, 친절, 셰프가 추구하는 것 등을 살피죠. 일반 소비자는 주방을 보는 게 아니라 직원이 빵을 건넬 때의 모습을 보거든요. 그 과정에서 뭔가 매끄럽지 못하고 감정이 상하면 빵맛과 관계없이 맛없는 집으로 기억되더라고요.”
이렇게 직접 사와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블로그에 올린다.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 인상적인 빵집은 다시 찾아가 다른 빵을 먹어보고 흡족하면 또 블로그에 쓰는 식으로 차곡차곡 정보를 쌓아간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린 것보다 그가 찾아간 빵집은 훨씬 많다.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생기면 글을 비공개 상태에서 계속 수정하기도 한다. 여름에 처음 간 빵집 관련 글이 겨울에야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빵순이’ 정씨에게 ‘첫 빵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우리 동네에 지금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선 자리에 빵굼터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오시던 보리빵이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거든요. 요즘도 그 맛이 종종 떠올라요. 다시 맛보고 싶지만 너무 어릴 때라 제빵사 성함도 모르는 게 아쉽죠.”
가전제품 웹디자이너, 마케터로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잘 하던 딸이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빵 찾아 삼만 리’를 시작하자 부모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빵집을 찾아다니다 보니 문득 빵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 사는 언니가 빵을 만들거든요. 블로그도 언니와 정보를 공유하려고 시작한 거예요. 제빵은 천직이 아닌 것 같아 빵집과 빵 정보 위주로 올리다 ‘빵생빵사 매거진’ ‘지하철 빵 지도’로까지 발전했네요. 큰 수익이 나는 사업은 아니어서 부모님은 지금도 다시 회사에 다니면 안 되느냐고 물으세요.”
재밌는 빵 관련 콘텐츠 만들 것
책에는 잘라서 갖고 다닐 수 있는 ‘빵집 지하철 지도’가 부록으로 들어 있다. 이 지도 한 장이면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빵 투어를 즐길 수 있다. 그의 빵 지도를 본 서울시 측의 제안으로 2월 말부터 ‘스마트 서울맵’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동네 빵집 지도가 제공된다. 그 밖에 정씨와 네이버 카페 ‘빵생빵사’ 회원들은 온라인 밖에서 ‘빵생빵사 빵자선행사’를 열고 있다. 지금까지 3회가 열렸고, 지난해 행사 수익금 220여만 원은 서울중심지역아동센터에 기부했다. 올해는 어떤 형태로 행사를 진행할지 고민 중이다.
지난해 9월 정씨는 ‘빵생빵사’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명함에는 ‘마케팅 전문’이라고 쓰여 있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빵 인류를 위한 재미있는 빵 문화 만들기’다. 하지만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당장의 목표는 빵 잡지를 내는 것. 2월 말 미국으로 출국한 정씨는 40여 일간 미국 빵집을 돌며 ‘빵생빵사 매거진’ 원고 작업도 병행한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잡지를 보고 레시피, 빵집 소개 외에는 볼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격월로 다양한 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웹진을 내볼 생각이에요.”
‘파워 블로거’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돈’의 유혹이 찾아온다. 공동구매를 통해 부당이익을 챙기는 게 대표적인 사례. 정씨도 “주변에서 ‘3년 차 블로거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웃었다.
“제가 먹는 빵은 다 제 돈으로 사니까 남의 눈치 볼 일 없죠. 간혹 해외 브랜드 론칭 행사 초청장을 받으면 제 관심 분야니까 일단 가서 살펴봐요. 그러나 수수료를 줄 테니 리뷰를 써달라는 요청은 사절입니다. 제 블로그가 유명해지니까 한때 저를 사칭한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알려지지 않은 동네 빵집을 찾아 소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동네 빵집이 문을 닫는 게 모두 프랜차이즈 때문만은 아니에요. 동네 빵집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값이 비싸고 패키지도 안 예쁘고, 제휴할인도 되지 않으니 경쟁에서 불리하죠. 결국 성공 비결은 맛이에요. 좋은 재료를 써서 빵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맛으로 입소문이 나면 손님이 알아서 찾아오죠. 음식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급화된다고 해요. 물론 각자의 경제 사정과 입맛에 따라 선택이 다르겠지만, 최근 동네 빵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자신만의 색을 갖고 있는 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회사 그만두고 시작한 빵 투어
“책에는 기존 유명 빵집이 상당수 빠져 있어 의아한 분도 있을 거예요. 동네마다 숨어 있는 맛있는 빵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러나 책을 준비하는 동안 없어진 집도 있고, 콘셉트가 바뀐 곳도 있어요.”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을 좋아하는 그는 “만화에서 다이애나가 앤에게 구워주던 애플파이가 참 맛있어 보였다. 어릴 적부터 그들처럼 티타임을 갖고 디저트를 나눠 먹는 환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블로그 프로필 아래 적힌 문구가 눈에 띈다. ‘빵은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즐겨야 한다.’
빵집 36곳은 어떻게 골랐을까. 그는 “맛은 당연히 있어야 하고, 가게 자체에 ‘임팩트’가 있는 곳을 위주로 골랐다. 임팩트라는 건 얘깃거리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사장님과 친분이 있지만 실리지 않은 곳도 많아 서운해할 것”이라며 웃었다.
‘맛있는 빵의 기준이 무엇인가’는 그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그는 먼저 제빵을 배운 사람과 배우지 않은 사람은 빵을 평가하는 데 차이가 있다고 했다.
“내 입에는 썩 맛있지 않은 빵인데 제빵사들은 ‘얼마나 대단한 빵인 줄 아느냐’며 기술적으로 평가해요. 그런데 소비자는 맛이 없으면 다시는 안 사거든요. 그래서 나 같은 사람도 필요하겠다 싶었죠.”
그는 처음 가는 빵집이라면 먼저 호밀빵, 잡곡빵을 찾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빵이기도 하고 맛이 담백해 좋은 재료를 썼는지, 간이 맞는지 판별하기 쉽기 때문이다.
“빵도 음식이니 간이 맞고 재료가 잘 어울려야 해요. 시식용 빵이 따로 없으면 호밀빵이나 잡곡빵을 사와서 맛을 봐요. 그리고 청결, 서비스, 친절, 셰프가 추구하는 것 등을 살피죠. 일반 소비자는 주방을 보는 게 아니라 직원이 빵을 건넬 때의 모습을 보거든요. 그 과정에서 뭔가 매끄럽지 못하고 감정이 상하면 빵맛과 관계없이 맛없는 집으로 기억되더라고요.”
이렇게 직접 사와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블로그에 올린다. 한 번으로 끝이 아니라 인상적인 빵집은 다시 찾아가 다른 빵을 먹어보고 흡족하면 또 블로그에 쓰는 식으로 차곡차곡 정보를 쌓아간다. 그래서 블로그에 올린 것보다 그가 찾아간 빵집은 훨씬 많다. 조금이라도 의문점이 생기면 글을 비공개 상태에서 계속 수정하기도 한다. 여름에 처음 간 빵집 관련 글이 겨울에야 완성되는 경우도 있다.
‘빵순이’ 정씨에게 ‘첫 빵의 기억’은 어떻게 남아 있을까.
“우리 동네에 지금은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선 자리에 빵굼터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퇴근길에 사오시던 보리빵이 정말 구수하고 맛있었거든요. 요즘도 그 맛이 종종 떠올라요. 다시 맛보고 싶지만 너무 어릴 때라 제빵사 성함도 모르는 게 아쉽죠.”
가전제품 웹디자이너, 마케터로 10여 년간 직장생활을 잘 하던 딸이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고 ‘빵 찾아 삼만 리’를 시작하자 부모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좋아하는 빵집을 찾아다니다 보니 문득 빵에 대한 정보를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국에 사는 언니가 빵을 만들거든요. 블로그도 언니와 정보를 공유하려고 시작한 거예요. 제빵은 천직이 아닌 것 같아 빵집과 빵 정보 위주로 올리다 ‘빵생빵사 매거진’ ‘지하철 빵 지도’로까지 발전했네요. 큰 수익이 나는 사업은 아니어서 부모님은 지금도 다시 회사에 다니면 안 되느냐고 물으세요.”
재밌는 빵 관련 콘텐츠 만들 것
책에는 잘라서 갖고 다닐 수 있는 ‘빵집 지하철 지도’가 부록으로 들어 있다. 이 지도 한 장이면 서울 지하철 노선도를 따라 빵 투어를 즐길 수 있다. 그의 빵 지도를 본 서울시 측의 제안으로 2월 말부터 ‘스마트 서울맵’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동네 빵집 지도가 제공된다. 그 밖에 정씨와 네이버 카페 ‘빵생빵사’ 회원들은 온라인 밖에서 ‘빵생빵사 빵자선행사’를 열고 있다. 지금까지 3회가 열렸고, 지난해 행사 수익금 220여만 원은 서울중심지역아동센터에 기부했다. 올해는 어떤 형태로 행사를 진행할지 고민 중이다.
지난해 9월 정씨는 ‘빵생빵사’라는 이름의 회사를 차렸다. 명함에는 ‘마케팅 전문’이라고 쓰여 있지만 장기적인 목표는 ‘빵 인류를 위한 재미있는 빵 문화 만들기’다. 하지만 언제 또 바뀔지 모른다. 당장의 목표는 빵 잡지를 내는 것. 2월 말 미국으로 출국한 정씨는 40여 일간 미국 빵집을 돌며 ‘빵생빵사 매거진’ 원고 작업도 병행한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잡지를 보고 레시피, 빵집 소개 외에는 볼만한 콘텐츠가 부족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격월로 다양한 빵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웹진을 내볼 생각이에요.”
‘파워 블로거’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돈’의 유혹이 찾아온다. 공동구매를 통해 부당이익을 챙기는 게 대표적인 사례. 정씨도 “주변에서 ‘3년 차 블로거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웃었다.
“제가 먹는 빵은 다 제 돈으로 사니까 남의 눈치 볼 일 없죠. 간혹 해외 브랜드 론칭 행사 초청장을 받으면 제 관심 분야니까 일단 가서 살펴봐요. 그러나 수수료를 줄 테니 리뷰를 써달라는 요청은 사절입니다. 제 블로그가 유명해지니까 한때 저를 사칭한 사람도 있었다고 해요.”
알려지지 않은 동네 빵집을 찾아 소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 프랜차이즈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동네 빵집이 문을 닫는 게 모두 프랜차이즈 때문만은 아니에요. 동네 빵집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값이 비싸고 패키지도 안 예쁘고, 제휴할인도 되지 않으니 경쟁에서 불리하죠. 결국 성공 비결은 맛이에요. 좋은 재료를 써서 빵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맛으로 입소문이 나면 손님이 알아서 찾아오죠. 음식 문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고급화된다고 해요. 물론 각자의 경제 사정과 입맛에 따라 선택이 다르겠지만, 최근 동네 빵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비싸더라도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쓰고, 자신만의 색을 갖고 있는 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