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를 하루 앞둔 2월 13일 오후 초콜릿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초콜릿 판매 진열대를 살펴보고 있다.
하지만 2월이 지나면 그 많던 초콜릿이 자취를 감춘다. 하트 모양으로 포장된 작은 초콜릿은 일부 남지만 화려한 선물용 묶음은 사라진다. 2월 20일 들른 서울 신촌역 인근 G편의점 앞에는 1만 원짜리 ‘초콜릿 다발’ 하나가 초라하게 남아 있었다. 그 많던 초콜릿이 과연 다 팔린 걸까. 편의점 점주는 “별로 안 팔린다. 본사에서 들어온 물량의 30%가량만 나간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밸런타인데이나 입학, 졸업식이 끝나면 선물용 바구니 제품은 대부분 제조사나 수입사가 도로 가져간다. 일부는 포장만 풀어 개별 제품을 해당 코너에 진열한다.”
이 편의점에 남은 초콜릿 다발을 살펴봤다. ‘페레로 로쉐’ ‘허쉬’ ‘미니쉘’ ‘킷캣’ ‘도브’ 등 다양한 브랜드의 초콜릿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꽃다발 모양의 비닐포장을 뜯지 않으면 일일이 제품의 유통기한이나 성분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구매해 포장을 열어봤더니 유통기한이 제각각이었다. 2015년 8, 9월이 대부분이고 짧게는 2015년 4월, 길게는 2016년 7월인 제품도 있었다. 편의점이나 마트 등 시중에서 판매하는 초콜릿 제품의 유통기한은 약 1년에서 1년 반이다. 그렇다면 유통기한이 2015년 4월인 초콜릿은 2013년 10월에서 2014년 4월 사이 생산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기업이 제조일자 허위 표기도
한 초콜릿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1~2월은 ‘초콜릿 재고 떨이’ 기간으로 봐도 무방하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도 선물용 포장에 살짝 끼워 넣으면 팔리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매년 1~2월은 다른 달에 비해 초콜릿 관련 민원이 3~4배 증가한다. 2014년 1~2월에는 45건이었고 올해는 2월 24일까지 35건이 접수됐다”며 “이물질이 들어 있거나 유통기한 경과 관련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면 초콜릿을 살 때는 유통기한만 확인하면 되는 걸까. 이러한 습관도 안전한 구매를 보장하지는 못한다. 유통기한을 허위로 표시하거나,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유통기한이 경과된 원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1월 주로 어린이들이 소비하는 초콜릿과 사탕을 만드는 123개 업체를 조사했다. 결과는 총 20곳이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가품질검사 미실시, 원료 수불일지와 생산일지 미작성, 작업장과 기계·#129;기구류 청결 미흡, 종사자 건강진단 미실시 등이었다. 식약처는 “일부 공장에서 더러운 장갑, 녹이 슨 조리기구가 발견됐고 벽에는 오래된 곰팡이와 거미줄이 있었다”고 밝혔다. 초콜릿에 벌레나 이물질이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이다.
지난해 실시한 동일한 조사에서는 식품위생법 위반 사례에 대기업이 포함돼 소비자에게 충격을 줬다. 아모레퍼시픽의 오설록 티하우스 공장에서는 소비자가격 500만 원 규모의 초콜릿 및 빵류 제조일자를 허위 표기해 해당 품목이 전량 압류됐고, 한화그룹 계열인 한화호텔앤드리조트도 초콜릿 자가품질검사를 실시하지 않은 사실이 적발됐다. 초콜릿·#129;빵 원료 수입업체인 대아상교는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정부 당국이 일일이 초콜릿 원료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기는 불가능한 일. 이근택 강릉원주대 식품가공유통학과 교수는 “국내 식품관련법상 완제품에 들어간 원재료의 개별 유통기한을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초콜릿도 재가공해 유사한 초콜릿 가공품으로 재생산한다면 위생 당국에서 확인할 방법과 처벌 규정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언론에는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냉동 닭을 튀겨 재포장한 후 유통기한을 1년 연장한 업체 사례가 보도됐지만 그 업체는 처벌받지 않았다. 완제품이 ‘원재료’로 쓰여 다시 가공된다면 유통기한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근택 교수는 “이는 합법이라기보다 법의 빈틈을 악용하는 악덕 식품업자들의 농간”이라며 “구체적으로 제재할 법규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수제 초콜릿, 비싼 값에 안전 선택
그러면 유명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유통기한이 경과한 재고품을 어떻게 처리할까. 기자는 페레로 로쉐 한국지사와 아모레퍼시픽에 문의했지만 이들 기업 관계자들은 “밝힐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개인 브랜드로 판매하는 수제 초콜릿은 그나마 믿을 만하다는 것이 업계 전언이다. 이에 수제 초콜릿을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 G마켓은 1월 27일부터 2월 2일까지 초콜릿 판매량을 조사했는데, 수제 초콜릿은 전년 동기 대비 423% 증가한 반면, 일반 초콜릿은 65% 증가하는 데 그쳤다. 다만 수제 초콜릿은 개당 2000~4000원대로 일반 소비자가 사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 흠이다.
수제 초콜릿업체 ‘빠드두’의 김성미 대표는 “수제 초콜릿은 가격이 다소 비싸지만 그만큼 좋은 재료를 써 인체에도 안전하다”고 말했다.
“시중에서 대량 판매되는 초콜릿은 가격이 싼 팜유나 식물성 유지를 사용하는 편이다. 또 초콜릿을 부드럽게 하려고 생크림 대신 대두유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런 재료는 제품 원가를 낮추고 초콜릿 완제품의 유통기한을 늘린다. 하지만 건강에는 해로울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반면 수제 초콜릿은 유통기한이 지나면 상당히 거칠어지고, 열을 가해 녹여도 본래의 액체 상태가 아니라 덩어리로 뭉쳐진다. 이런 경우 재가공할 수 없다.”
식품전문가들은 “안전한 먹거리를 위해 기업, 정부, 소비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불량 초콜릿’ 판매는 제조업자에게 1차 책임이 있지만 유통업자, 정부, 소비자도 책임을 분담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불량식품 척결’이 성공하려면 사회 전체가 경각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기업은 불량식품을 발견했을 때 자발적으로 해당 제품을 회수하고 즉시 유통을 차단하도록 ‘식품이력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다른 나라처럼 식품의 ‘소비기한’을 표기하는 방법을 고려할 만하다. 유통기한은 식품 판매가 가능한 기한인데, 이 기한이 지나면 먹자니 찜찜하고 버리자니 아까운 경우가 발생한다. 이는 시간, 비용 낭비다. 반면 소비기한은 식품을 먹을 수 있는 기한이라 제품이 안전한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있다.”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다. 연인끼리 서로 사탕을 교환하는 또 다른 이벤트 날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초콜릿과 비슷한 포장에 내용물만 바뀐 제품들이 공장 물류 창고에 가득 쌓여 있을 것이다. 화려한 겉포장에 현혹될 것인가, 제품 정보를 꼼꼼히 확인하고 신중하게 구매할 것인가. 소비자 노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