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태 검찰총장이 이번 검찰 인사에 크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는 분석이 많다.
이번 검찰 인사에 대해 일각에서는 ‘TK(대구·경북) 독식 인사’ ‘우병우(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라인 전진 배치’ ‘청와대 부속기관으로 전락한 검찰’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 안정을 꾀하면서, 특수 및 공안 라인이 당장이라도 ‘사정 국면’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인사철 업무 공백이나 빈틈이 느껴지지 않는 ‘꽉 찬 인사’로 보인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난해와 달리 김진태 검찰총장의 영향력이 약화된 점이다. 박성재(53·17기) 대구고등검찰청장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에 옮겨온 것 외에는 뚜렷하게 총장의 의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 근거로 김 총장이 원칙처럼 강조하던 ‘하방’인사에 균열이 생긴 것을 들 수 있다. 하방인사는 김 총장이 내세운 탕평인사 원칙으로, 서울중앙지검에 1년간 부장검사로 재직할 경우 다음 인사 때 일선 지방 형사부장 등으로 내려보내는 교류 인사를 하겠다는 것. 김 총장은 이달 초 서울중앙지검 부장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다른 대검찰청(대검) 참모들에게도 이 같은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그러나 인사 결과 27명의 부장 가운데 3명은 서울중앙지검에 남았다. 임관혁(49·26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은 특수1부장으로 옮겨가고, 배종혁(48·27기) 특수4부장은 유임됐으며, 이정수(46·26기) 첨단범죄수사2부장은 첨단범죄수사1부장으로 이동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사들도 하방 원칙에 예외가 생긴 인사 소식에 크게 술렁거렸다”며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천명해온 하방인사 원칙이 어떤 이유에서든 훼손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진태 검찰총장, 영향력 약화 뚜렷
임 부장은 국회의원 입법로비 사건이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을 수사하는 등 지난해 유난히 대형사건을 많이 맡아 왔으므로 공소 유지 차원에서 서울중앙지검에 남은 것이라는 게 검찰 인사라인의 설명. 특수2부장에서 특수1부장으로 보임되는 인사는 근래 보기 드문 영전이다.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야전만 돌아다닌 수사통이 인정을 받아 특수1부장이 된 게 반갑다”는 분위기도 있다.
법무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태스크포스’에 참여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김석우(43·27기)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3부장의 전진 배치도 눈에 띈다. 한 부부장급 검찰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검사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임관혁과 김석우 부장”이라며 “조직이 원하는 검사 모습이 저런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정부 방침인 4대악 척결, 세월호 침몰 사고 수사 등에 앞장선 광주지방검찰청과 서울서부지방검찰청, 그리고 이를 지휘한 대검 형사부 파트는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인사 결과를 받지 못했다. ‘땅콩회항’ 사건을 비롯해 불량식품 유통 대기업 등을 연이어 처벌한 문무일 서울서부지검장(18기)은 대전지방검찰청장으로, 해양경찰과 선원 및 123정의 구조 소홀 부문 수사를 현장에서 지휘한 변찬우 광주지검장(18기)은 19기가 맡고 있던 대검 강력부장으로, 조은석 대검 형사부장(19기)은 동기 자리인 청주지방검찰청장이 됐다. 이완식(48·27기) 대검 형사1과장은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장으로, 손영배(43·28기) 대검 형사2과장은 서울북부지방검찰청 형사5부장이 됐다.
검찰총장으로선 자신의 업무 하달 방침에 가장 충실히 임한 사람에게 ‘인사’로 보답하고 싶었을 터. 하지만 ‘고생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기에는 검찰총장의 영향력이 크게 발휘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업무 조율에 불협화음이 생기거나 수사팀 의견을 굽히지 않다 인사에서 불이익을 본 사례도 눈에 띈다”며 “수사를 잘한다고 꼭 영전하는 것은 아니고 수사통보다 기획통이 안전하다는 원칙이 확인된 셈”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의 가장 큰 관심사는 황교안(58·13기) 법무부 장관과 검사장에 승진하지 못하고 퇴임했던 우병우(48·19기) 수석이 요직 인사를 놓고 어떤 결정을 내릴지였다. 40대 수석과 하늘 같은 선배의 힘겨루기에 누가 발탁될지 관심이 집중된 것.
인사 결과를 놓고 보면 우 수석의 의중이 반영된 흔적이 엿보인다. 하지만 당사자 역량과 전문성, 업무 연속성을 훼손한 인사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MB(이명박 전 대통령) 정부의 한상대 검찰총장 시절 검찰 내 핵심 요직을 고려대 출신으로 가득 채웠던 ‘특수 현상’과 비교하면 더더욱 그렇다.
민정수석까지 초스피드로 오른 우 수석의 영향일까. 우 수석을 포함해 검찰 내 쟁쟁한 인물이 포진한 19기에선 법무·검찰 조직 전체의 인사 및 기획을 총괄하는 법무부 검찰국장과 전국 공안수사를 책임지는 대검 공안부장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 대신 20기인 안태근(49) 법무부 기조실장과 정점식(50)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이 각각 발탁됐다. 정 검사장은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태스크포스를 진두지휘한 공로를 인정받은 셈이지만, 검찰국장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20기로 내려갈 거라는 세간의 예상이 현실화했다. 19기 이창재, 봉욱, 김진모 검사장 등이 검찰국장에 거론됐으나 “우 수석과 호흡을 맞추기 편하려면 아무래도 한 기수 내려갈 것”이라는 한 대검 간부의 의견이 그대로 들어맞았다.
서울중앙지검 핵심 보직으로 주요 특별수사를 현장에서 지휘하는 사령관 격인 3차장에는 최윤수(48·22기) 대검찰청 반부패부 선임연구관이 낙점됐다. 최 차장은 우 수석의 서울대 법대 동기. 22기 최선두로 청와대 민정2비서관과 저축은행 비리 합수단장을 지낸 권익환(48)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이 물망에 올랐으나 그는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최 차장의 발탁을 놓고 일각에선 우 수석과의 친분이 배경이 됐다고 보지만 권 지청장이 3차장이 됐더라도 ‘우병우 라인’으로 비판받았을 수 있다. 권 지청장 역시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우병우 특수부장’을 모셨고 최 차장만큼 우 수석과 친분이 깊은 사이이기 때문이다.
특수·공안라인 전진 배치
박근혜 대통령이 1월 26일 새로 임명된 수석비서관, 특보 등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이 우병우 대통령 민정수석 비서관.
우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 시절 데리고 있었던 조상준 부장이 대검 수사지휘과장에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장으로 간 것 등을 두고 일부 언론은 ‘청와대의 검찰 장악 의도’라고 했으나 이 역시 우 수석이 아니더라도 예상됐던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또 주목받는 것은 공안통의 부활이다. 신임 이상호(48·22기)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2012, 201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시절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유우성(35) 씨를 국가정보원(국정원)과 함께 수사해 구속 기소했다. 공판 과정에서 국정원의 증거조작 의혹이 불거져 유씨가 무죄 판결까지 받았지만, 이 차장의 인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지난해 거듭된 공안사건 무죄 판결 이후 오히려 ‘검찰 공안부가 입은 치명상을 정통 공안통이 다잡아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었다. 신임 변창훈(46·23기) 대검 공안기획관은 2년 동안 국정원 파견검사로 검찰과 국정원의 업무 협조 및 국정원 댓글 사건, 증거조작 사건을 처리했다.
최근 항소심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로 뒤집혔지만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던 윤석열(55·23기) 대구고검 검사, 수사팀 일원이던 박형철(47·25기) 대전고등검찰청 검사의 복권은 이뤄지지 않았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사와 관련해 문책성 인사까지 당한 이동열(49·22기) 대전고검 검사, 주영환(45·27기) 부산고등검찰청 검사도 각각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부산고검 ‘잔류’ 인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