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탈모로 취직과 연애에 어려움을 겪자 아예 삭발을 해버린 배모 씨.
어쩌다 모자를 쓰고 밖에 나갔다가 젊은 여자나 여학생들과 마주치는 순간 바람이라도 불면 어쩔 줄 몰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습니다. 요즘 같은 돈,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탈모가 자신감을 추락시켜 직업도 못 구하고 앞길이 막막하네요. 무인도 가서 혼자 살고 싶습니다.”(인터넷 카페의 M씨)
탈모 치료 절반 이상 30대 이하
20, 30대 젊은 세대의 탈모가 심각하다. 탈모 고민은 50, 60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란 사회적 통념이 완벽하게 깨졌다. 꽃다운 20, 30대 나이에 이미 심각한 탈모에 처한 사람(탈모인)이 우리 눈에 잘 띄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온갖 방법을 동원해 탈모 사실을 숨기거나 외부 활동을 삼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모지상주의 사회는 탈모가 하나의 질환임을 간과한 채 그들을 사회 밖으로 몰아내며 은둔형 외톨이로 만들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최근 5년간 탈모증으로 치료받은 진료자 수는 2009년 18만 명에서 2013년 21만 명으로 5년간 15.3% 증가했다. 문제는 그중 가장 많은 수가 30대 이하 젊은이라는 점. 2013년 기준 연령별 점유율은 30대가 24.6%로 가장 높았다. 이어 40대 22.7%, 20대 19.3%, 50대 15.6%가 뒤를 이었다. ‘탈모는 40, 50대의 고민’이라는 기존 통념을 깬 결과다.
여기에 20세 미만 10.7%를 합치면 탈모증으로 치료받은 30대 이하 진료 인원은 전체의 절반이 훌쩍 넘는 54.6%에 달한다. 30대 이하 젊은 탈모증으로 치료받은 이는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늘어나 2009년에는 전체 진료 인원의 59.7%였으며, 2010년에는 59.4%까지 올라가 정점에 달했다. 이 기간 여성의 비중도 46.4~48.9%에 달해 탈모증이 남성의 전유물이란 공식도 함께 깨졌다.
하지만 심평원의 통계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치료 사례일 뿐, 탈모가 심해 모발이식까지 받아야 하는 이들의 통계를 보면 젊은 탈모의 심각성을 더 절감할 수 있다. 탈모 치료 특화병원인 루트모발이식클리닉은 2011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2년간 모발이식술을 받은 2158명의 탈모 환자 중 추적 관찰이 가능했던 755명을 분석한 결과 압도적인 수인 568명(75.2%)이 20, 30대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남성과 여성 비율은 남성이 631명으로 여성(124명)에 비해 5배가량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각한 수준의 탈모증 환자가 찾는 가발업체의 경우에도 ‘가발=중·장년용’이라는 기존 관념이 무너지고 있다. 젊은 탈모인 고객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것. 국내 최대 규모 가발업체 H사의 경우 2013년 탈모증으로 인해 가발을 구매한 고객 중 31%가 20, 30대인 것으로 집계됐다. 40대가 32%인 점을 고려하면 고객 중 63%가 20~40대인 셈이다. 여성의 비율도 15%나 됐다.
심우영 강동경희대학교병원 피부과 교수는 젊은 세대의 탈모 원인을 서구화된 육류 중심의 식생활에서 찾는다. 과거 한국인의 주요 먹을거리였던 콩, 두부, 된장에는 남성호르몬의 활성을 억제하는 ‘피토에스트로겐’이라는 성분이 다량 함유돼 탈모를 예방하는 기능을 했지만, 식습관이 서구화되면서 피토에스트로겐이 적은 육류 섭취가 늘어났고 그에 따라 탈모 발생률이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잦은 야근, 음주, 흡연, 스트레스 등의 폭증 현상이 유전형 탈모의 방아쇠 구실을 했다.
문제는 20, 30대 젊은 세대의 탈모가 40, 50대 중·장년층과 달리 소외, 반사회적 인격 형성 등 사회적 부작용과 함께 우울증 등 정신병리학적 후유증을 양산해 국가 전체적으로 부담을 준다는 점이다. 실제 50대 이상 세대에선 탈모를 자연스러운 신체적 변화로 받아들이는 이가 많은 반면,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후반의 경우에는 죽고 싶을 정도의 수치심을 느끼고, 취업과 결혼을 목전에 둔 20, 30대는 생존 문제로 인식한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분석이다. 실제 탈모증의 경우 정신병리학적으로 자신감 위축에 따른 우울증, 대인기피증, 자살 충동까지 동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탈모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 ‘대다모(대머리는 다 모여라)’ ‘이마반’ ‘삼탈모’ ‘민두래곤’에는 ‘탈모 때문에 살기 싫다’는 젊은이들의 글이 수시로 올라온다.
대머리는 취직도 못 한다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올라온 탈모 고민 내용. ‘자살하고 싶다’는 내용이 많다.
2030세대 젊은 탈모인이 탈모로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역시 취업과 회사생활이다. 20대 탈모인은 대부분 연이은 취업 실패가 탈모 때문이라 여기고 우울증에 빠져든다. 30대 탈모인은 가까스로 취업은 했지만 주변의 놀림으로 자신감을 잃고 회사생활 적응에 실패한다.
30대 초반의 대기업 영업사원 이모 씨는 평소 남자답고 유머러스한 성격에 리더십이 강한 스타일이었지만, 최근 3년간 탈모가 진행되면서 사람을 대하는 데 점점 어려움을 느껴 퇴사를 고민 중이다. 모발이식을 위해 휴가를 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회사 여건은 이씨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스물일곱 살에 취업에 성공했는데 엄청난 업무 강도와 술, 담배, 스트레스 때문에 3년간 앞과 위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다시피 했습니다. ‘눈이 부신다’거나 ‘이마가 훤해졌다’는 말을 고객이나 지인으로부터 들으면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자신감이 떨어져 과음하면 업무에도 지장을 주고, 혼자 울고 하는 생활이 반복됐죠. 모발이식을 할까 고민 중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네요.”
최근 홍보회사에 입사한 배모(29) 씨는 탈모를 견디다 못해 아예 삭발을 선택한 경우다. 그는 원래 축구선수 베컴의 ‘모히칸’ 스타일(닭 볏처럼 가운데 머리카락을 세우는 스타일)을 할 정도로 미용에 관심이 많고 낙천적 성격이었지만 군대에서 쌓인 스트레스로 머리숱이 비어가기 시작하면서 세상을 비관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군대에서 항상 써야 하는 철모와 군모는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탈모에 불을 붙였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을 준비할 즈음엔 거의 대머리가 되다시피 했다. 그는 궁리 끝에 150만 원 하는 인도산 가발을 쓰고 취업에 응시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운동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히 붙이는 가발이었는데 영 불편했어요. 무거워서 어깨 결림 증상도 생겼고, 잘 때나 머리 감을 때도 벗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 머리가 시원하지 않으니 미치겠더라고요. 취업 면접관들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았지만 스스로 ‘이건 원래 내 모습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자꾸만 마음이 위축되더군요.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제 모습이 더 안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아 ‘아예 머리 빠진 모습 그대로 올걸’ 하고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죠. 예전의 사교적이던 성격도 변하고 이성에게 다가가기도 어려워졌어요. 내 인생에 연애는 이제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했고요.”
하루 종일 거울을 보고 우울해하는 패턴이 반복되자 배씨는 ‘시원한’ 방법을 택했다. 머리를 완전히 삭발한 것. 어중간한 탈모로 고민하느니 자신의 모습을 당당하게 보여주는 쪽이 낫겠다 싶었다. 다행히 직원의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아직까지 남들의 시선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아이들이 “대머리” “아빠 같다”고 놀릴 때면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론 울컥한다.
머리스타일이 취업에 끼치는 불리한 영향은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인터넷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가 기업 인사담당자 3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6.6%가 ‘지원자의 옷차림, 머리스타일 등이 당락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고 답했다. 특히 마음에 들지 않는 면접자의 외양으로 남성은 ‘단정하지 않은 머리’(78%)가 1위로 꼽혔다. 여성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78.2%) 다음으로 ‘단정하지 않은 머리’(57.6%)가 2위에 올랐다. 또한 취업 포털사이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539명을 대상으로 ‘채용 시 지원자의 이력서 사진 평가 여부’를 질문했더니 75.7%가 ‘이력서 사진을 평가에 반영한다’고 응답했다.
5년 차 직장인 권혁준(가명·32) 씨는 급속히 진행된 탈모 증상으로 근심이 많다. 더 큰 회사로 이직을 결심한 후 여러 차례 면접까지 봤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권씨는 탈모 때문에 이직에 실패했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힘들다. 면접 때마다 “또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인다” “머리 관리 좀 해야 되지 않겠어요”라는 식의 말을 꼭 한 번씩은 들었기 때문이다.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 하려고 난생처음 파마도 해봤지만 주변의 반응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여러 방법을 고민하던 권씨는 모발이식술을 받기로 마음먹었다.
머리 더 빠질까 결혼도 당겨
머리숱이 적은 남성은 연애와 결혼에서도 설움을 겪고 있다. 한 케이블방송에서 국내 미혼 여성 716명에게 ‘연인으로 삼기 힘든 대상’을 물어본 결과, 여자의 229명(32%)이 ‘대머리 남성’을 선택해 1위를 차지했다. 이미 탈모가 시작된 20, 30대 직장인이 기를 쓰고 결혼을 서두르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다.
패션기획 일을 하는 윤모(37) 씨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탈모 증세가 심각해질 조짐이 보이자 일찌감치 결혼을 서두른 것. 결혼 당시 그는 30세였다. 윤씨의 집안에 큰아버지만 탈모 증상이 있고 사촌들은 탈모 증상이 없었지만 20대 중반부터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다. 고교생 때부터 피운 담배는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 한 갑 이상으로 늘었고 업무상 회식이 잦아지면서 소주 2병 이상을 주 4~5회 마셨다. 하루 40~50개씩 빠지던 머리카락은 100개 이상씩 빠졌다. 걸핏하면 “대여섯 살 더 많은 줄 알았다”는 말을 들었고 점차 자격지심이 생겼다.
“요즘은 서른 중반에 장가가는 사람도 흔하지만 저는 ‘더 늙어 보이기 전에 결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외모도 ‘스펙’인 시대에 능력이 좋아도 대머리가 되면 결혼하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최근 모발이식술을 받은 그는 예전의 모발 상태와 자신감을 되찾았다. 수술로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됐다는 윤씨는 “모발이식술에 성공하고 나니 여성들이 더 나은 삶을 위해 성형수술을 하는 이유가 십분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탈모 남성은 결혼하고도 고통을 겪는다. 올해 초 결혼한 김현식(가명·31) 씨는 아내로부터 머리숱이 너무 없어진 것 아니냐는 말을 거의 매일 듣는다. 김씨는 결혼 전부터 가벼운 탈모 증상이 있었지만 크게 의식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 후 심해진 탈모 때문에 아내가 은근히 핀잔을 주거나 속상해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그것이 점점 스트레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부부동반 모임에 가거나 아내와 함께 친구들을 만날 때면 또래의 다른 남편들을 보고 부러워하는 느낌까지 받았다.
유전적 영향을 받지 않는 2030세대 여성의 탈모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심평원의 성별 탈모 진료 인원 집계에 따르면 남성은 2009년 9만3463명에서 2013년 11만2898명으로 21% 늘어났고, 여성은 8만9395명에서 9만7861명으로 연평균 10% 증가했다. 총 진료비는 남성의 경우 약 62억7000만 원에서 94억7000만 원으로 51% 증가한 반면, 여성은 약 59억6000만 원에서 85억1000만 원으로 43% 증가했다.
여성은 직업상 ‘올백’(앞머리를 뒤로 완전히 넘기는 스타일)을 고수하거나 오랫동안 똑같은 가르마를 탈 경우 탈모가 촉진된다. 3년 전 모발이식술을 받은 여성 서모(26) 씨는 원래 넓은 이마가 콤플렉스라 긴 앞머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스튜어디스 취업을 준비하면서 승무원처럼 머리를 뒤로 넘겨 바짝 조여야 했다. 스스로 예쁘다고 생각할 정도로 외모에 자신이 있었지만 이마를 드러내자 얼굴이 2배로 커 보였다. 하지만 엄하게 진행되는 수업에서 머리를 안 묶을 수도 없었다.
“꿈을 찾고자 스튜어디스에 도전했는데 생각보다 훈련이 너무 엄격했어요. 스타일링을 위해 앞머리에 왁스를 잔뜩 바르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머리를 풀어 헹구는 걸 반복했죠. 두피 상태가 점차 나빠지더니 이마 경계선 부근이랑 가르마를 중심으로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스트레스를 받아 대학생활에 적응을 잘 못 하고 머리카락은 더 많이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돼 괴로웠죠.”
서씨의 방황은 대학 제적과 재입학으로 이어졌다. 모발이식술을 받고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3년 전 탈모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방황했을 것”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젊은 탈모인 속이는 상술
서씨와 같은 경우의 여성은 모근(두피 쪽 머리 뿌리) 부분만 파마를 시도해 탈모증을 감추려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탈모를 더욱 촉진할 뿐이다. 이철헤어커커 프리미엄 브랜드 ‘마끼에’ 본점 선우 부원장은 “탈모로 고민하는 20, 30대 여성이 전체 여성 고객의 30%로 부쩍 늘었다”며 “탈모를 숨기려 모근 부분만 파마를 원하는 고객이 많은데 오히려 머리를 잡아당겨 생기는 ‘결발성 탈모’를 유발한다. 차라리 무게가 가볍고 두피에 부담을 주지 않는 단발머리가 낫다”고 조언했다.
탈모로 취업과 연애에 실패했거나 실패할까 봐 걱정하는 20, 30대 청년이 폭증하면서 포털사이트에는 말만 ‘약물’ 또는 ‘치료제’라고 쓰지 않을 뿐 ‘탈모를 방지한다’거나 심지어 ‘모발이 새롭게 나온다’는 식품과 도포제 광고가 넘쳐난다. 심지어 임상실험까지 거쳤다며 선전하는 제품도 있다. 이 때문에 “돈만 날리고 머리는 다 빠졌다”고 피해를 호소하는 2030세대 탈모인의 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탈모 방지와 모발 재생 기능이 일부 확인된 약품(전문의약품)은 2~3개에 불과하다. 병·의원 방문이 어려워 탈모 예방에 좋은 건강기능식품이나 건강보조제를 선택해야 할 경우에는 꼭 식품의약품안전처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식 인증(허가)을 받은 제품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