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책, 신문, 잡지는 사라질 거라는 말이 무성한 시대, 종이로 된 매체인 책, 신문, 잡지는 사라질 거라는 말이 너무나 무성해 식상하기까지 한 시대.’
구독자 24만 명에 이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책벌레’ 페이지에 지난해 올라온 글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렇다. 종이매체가 멸종하고 모든 게 디지털로 대체될 거라는 말은 십수 년 전부터 들었다. 시장 파이도 줄었다. 그렇지만 오늘도 어디선가는 기자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사 내용과 배열, 디자인을 고민하고, 인쇄소는 바쁘게 돌아가며,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는 ‘새로운 잡지’ 창간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그뿐인가. 자금이 부족해 격월간, 계간이 될지언정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는 독립 잡지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종이매체의 멸종을 말하는 시대, ‘잡지’의 매력은 뭘까.
3년간 123편 잡지 창간사 분석
잡지 123편의 창간사를 분석한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사진)의 책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에는 매체가 태동할 때 심혈을 기울여 쓴 ‘창간사’들이 담겨 있다. 천 교수는 3년여 동안 우리나라 전체 잡지사를 훑고, 잡지를 선별하고, 자료를 수합해 해독하고 엮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천 교수 역시 부모가 보는 잡지를 어깨너머로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년동아’로 시작해 학창 시절 ‘신동아’ ‘월간조선’ 등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고, 대학에서는 ‘사회평론’ ‘창비’ ‘문학과사회’ ‘역사비평’ 등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몇몇 잡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책에서 ‘잡지의 제호와 창간사에는 그 잡지의 발행인이나 편집위원 또는 동인들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또 ‘왜’ 그 잡지를 창간(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다’고 적었다. 특히 지식인이 만든 잡지 창간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게 그의 분석. 지식인이 만든 잡지들은 ‘우리가 처한 현재는 전에 없던 위기의 시기라며, 따라서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다’는 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수많은 잡지 창간사 중 123편을 고른 기준을 묻자 “한국 사회에서 그 잡지 자체가 갖는 중요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발간된 잡지의 창간사 위주로 선별했다”고 말했다. 창간사가 없거나 너무 평이하고, 지식인 잡지나 문예지 중 지나치게 중복되는 내용도 제외했다.
“최근 잡지 트렌드는 얇아지고 비주얼이 강해졌다는 겁니다. 서점에서 가장 두꺼운 잡지를 봐도 ‘신동아’ ‘월간조선’ 정도인데 과거에 비해 많이 얇아졌죠. 글 길이도 짧아졌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국계 잡지가 많이 들어와 대중지와 여성지 시장을 많이 점유하고 있고요.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도 트렌드라면 트렌드입니다.”
잡지 창간사로 살펴본 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해방기에 나온 잡지의 창간사는 해방과 자유에 대한 감격과 희망으로 시작했다 점점 실망하고 환멸과 증오로 바뀝니다. 좌우 대립과 분단 문제도 나오고요. 1950~60년대는 우리 잡지가 ‘사회와 민족의 공기(公器)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내용이 여러 군데에서 나옵니다. 50년대 잡지의 창간사는 전쟁을, 60년대 잡지의 창간사는 수난과 오욕에 찬 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는 경향이 눈에 띄죠. 70년대에는 산업화가 심화되고 급속한 경제화가 이뤄지면서 ‘샘터’ ‘샘이깊은물’ ‘주간매경’ 같은 잡지가 나옵니다. 민주화가 최고 과제였던 80년대에는 창간사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90년대에는 그런 분위기가 확 바뀌어 문화잡지가 늘어나고, 잡지의 새로운 모색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시대상에 따라 잡지가 생겨나고 사라졌다면, 특정 시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잡지가 우후죽순으로 느는 등 눈길을 끄는 변화도 있을 법하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가 성장할수록 잡지 수가 늘어나는데, 언론 통제와 검열 때문에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는 잡지 창간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통제가 이뤄지는데 문화는 계속 성장하다 보니 나중에 그게 스프링처럼 다시 튀어나오게 됐죠. 그래서 1980년대 초·중반에 잡지 발행이 늘고, 6월 항쟁 이후로는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예전 같은 방식의 검열은 존재하지 않고, 무한 경쟁과 언론의 자유 보장 등으로 90년대 후반까지 잡지 시장은 호황을 누립니다. 이후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나타나며 이 같은 성장세가 꺾인 거죠.”
심층보도와 보는 재미 쏠쏠
그가 생각하는 잡지 매체의 매력은 무엇일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심층보도를 할 수 있다는 것. TV 뉴스는 직접성과 속보성이 있지만 실제로 글로 써놓으면 A4 한 장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잡지는 글 보는 재미가 있는데, 심층적인 부분을 파고들 수 있고, 여전히 그런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잡지사 기자들이 사명감을 가져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전문성입니다. 어떤 취향이나 지향성을 가진 특정 계층, 직업군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와 네트워크가 있다는 거죠. 일정 부분은 인터넷으로 옮아가기도 했지만, 그런 정보를 얻는 데는 잡지만한 게 없는 셈입니다.”
글이 사진과 결합하면서 잡지라는 현대의 매스미디어가 생겨났고, 특히 사진은 인쇄 미디어를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진화하게 한 결정적 요소였다. 따라서 그는 읽을거리보다 상대적으로 화려한 비주얼이 돋보이는 여성지나 패션지만이 갖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미국 ‘라이프’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의 최고급 사진은 잡지 역사나 사진 역사에서 획기적 역할을 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주얼이 부각되는 잡지를 보면 당대 인쇄문화, 사진 수준을 알 수 있죠.”
종이매체 시장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잡지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는 “재밌는 현상이고, 권장해야 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잡지는 최소한의 네트워크와 피드백, 최소한의 재원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어요. 전문적인 작은 영역에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분화 정도가 심해지고 복잡해질수록 많은 잡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잉여인간이나 1인 생활자가 늘어나면서 독립 잡지인 ‘월간잉여’ ‘계간홀로’ 등도 생겨나게 된 거죠.”
그는 잡지가 살아남으려면 온라인, 오프라인 병행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기사 콘텐츠는 무료라는 관념이 번져 있다. 포털사이트에 너무 싼값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상황이 이런 문화를 만든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사가 프리미엄 페이지 등을 만들어 유료화 기획을 하고 있는데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구독자 24만 명에 이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의 ‘책벌레’ 페이지에 지난해 올라온 글이다. 실제로 우리가 사는 시대가 그렇다. 종이매체가 멸종하고 모든 게 디지털로 대체될 거라는 말은 십수 년 전부터 들었다. 시장 파이도 줄었다. 그렇지만 오늘도 어디선가는 기자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사 내용과 배열, 디자인을 고민하고, 인쇄소는 바쁘게 돌아가며, 한 출판사 편집부에서는 ‘새로운 잡지’ 창간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다. 그뿐인가. 자금이 부족해 격월간, 계간이 될지언정 ‘하고 싶은 말’은 하겠다는 독립 잡지도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종이매체의 멸종을 말하는 시대, ‘잡지’의 매력은 뭘까.
3년간 123편 잡지 창간사 분석
잡지 123편의 창간사를 분석한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학과 교수(사진)의 책 ‘시대의 말 욕망의 문장’에는 매체가 태동할 때 심혈을 기울여 쓴 ‘창간사’들이 담겨 있다. 천 교수는 3년여 동안 우리나라 전체 잡지사를 훑고, 잡지를 선별하고, 자료를 수합해 해독하고 엮어내는 과정을 거쳤다. 천 교수 역시 부모가 보는 잡지를 어깨너머로 읽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소년동아’로 시작해 학창 시절 ‘신동아’ ‘월간조선’ 등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혔고, 대학에서는 ‘사회평론’ ‘창비’ ‘문학과사회’ ‘역사비평’ 등을 읽으며 지식을 쌓았다. 몇몇 잡지의 편집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책에서 ‘잡지의 제호와 창간사에는 그 잡지의 발행인이나 편집위원 또는 동인들이 시대와 사회를 어떻게 보는지, 또 ‘왜’ 그 잡지를 창간(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집약된다’고 적었다. 특히 지식인이 만든 잡지 창간사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게 그의 분석. 지식인이 만든 잡지들은 ‘우리가 처한 현재는 전에 없던 위기의 시기라며, 따라서 우리는 지금 당장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다’는 게 공통적인 특징이다.
수많은 잡지 창간사 중 123편을 고른 기준을 묻자 “한국 사회에서 그 잡지 자체가 갖는 중요성과 지속성을 가지고 발간된 잡지의 창간사 위주로 선별했다”고 말했다. 창간사가 없거나 너무 평이하고, 지식인 잡지나 문예지 중 지나치게 중복되는 내용도 제외했다.
“최근 잡지 트렌드는 얇아지고 비주얼이 강해졌다는 겁니다. 서점에서 가장 두꺼운 잡지를 봐도 ‘신동아’ ‘월간조선’ 정도인데 과거에 비해 많이 얇아졌죠. 글 길이도 짧아졌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외국계 잡지가 많이 들어와 대중지와 여성지 시장을 많이 점유하고 있고요. 전반적으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도 트렌드라면 트렌드입니다.”
잡지 창간사로 살펴본 현대사는 어떤 모습일까.
“해방기에 나온 잡지의 창간사는 해방과 자유에 대한 감격과 희망으로 시작했다 점점 실망하고 환멸과 증오로 바뀝니다. 좌우 대립과 분단 문제도 나오고요. 1950~60년대는 우리 잡지가 ‘사회와 민족의 공기(公器)가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내용이 여러 군데에서 나옵니다. 50년대 잡지의 창간사는 전쟁을, 60년대 잡지의 창간사는 수난과 오욕에 찬 민족의 역사를 언급하는 경향이 눈에 띄죠. 70년대에는 산업화가 심화되고 급속한 경제화가 이뤄지면서 ‘샘터’ ‘샘이깊은물’ ‘주간매경’ 같은 잡지가 나옵니다. 민주화가 최고 과제였던 80년대에는 창간사에서 적극적으로 정치적 신념을 드러내는 걸 중요하게 여깁니다. 90년대에는 그런 분위기가 확 바뀌어 문화잡지가 늘어나고, 잡지의 새로운 모색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시대상에 따라 잡지가 생겨나고 사라졌다면, 특정 시기나 특정 분야에 대한 잡지가 우후죽순으로 느는 등 눈길을 끄는 변화도 있을 법하다.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가 성장할수록 잡지 수가 늘어나는데, 언론 통제와 검열 때문에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설 때는 잡지 창간이 확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적으로는 통제가 이뤄지는데 문화는 계속 성장하다 보니 나중에 그게 스프링처럼 다시 튀어나오게 됐죠. 그래서 1980년대 초·중반에 잡지 발행이 늘고, 6월 항쟁 이후로는 급속도로 늘어납니다. 예전 같은 방식의 검열은 존재하지 않고, 무한 경쟁과 언론의 자유 보장 등으로 90년대 후반까지 잡지 시장은 호황을 누립니다. 이후에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이 나타나며 이 같은 성장세가 꺾인 거죠.”
심층보도와 보는 재미 쏠쏠
그가 생각하는 잡지 매체의 매력은 무엇일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심층보도를 할 수 있다는 것. TV 뉴스는 직접성과 속보성이 있지만 실제로 글로 써놓으면 A4 한 장이 안 되지 않습니까. 잡지는 글 보는 재미가 있는데, 심층적인 부분을 파고들 수 있고, 여전히 그런 부분이 필요하기 때문에 잡지사 기자들이 사명감을 가져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전문성입니다. 어떤 취향이나 지향성을 가진 특정 계층, 직업군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와 네트워크가 있다는 거죠. 일정 부분은 인터넷으로 옮아가기도 했지만, 그런 정보를 얻는 데는 잡지만한 게 없는 셈입니다.”
글이 사진과 결합하면서 잡지라는 현대의 매스미디어가 생겨났고, 특히 사진은 인쇄 미디어를 ‘읽는 것’에서 ‘보는 것’으로 진화하게 한 결정적 요소였다. 따라서 그는 읽을거리보다 상대적으로 화려한 비주얼이 돋보이는 여성지나 패션지만이 갖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미국 ‘라이프’나 ‘내셔널지오그래픽’ 같은 잡지의 최고급 사진은 잡지 역사나 사진 역사에서 획기적 역할을 하며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비주얼이 부각되는 잡지를 보면 당대 인쇄문화, 사진 수준을 알 수 있죠.”
종이매체 시장이 줄어드는 와중에도 잡지가 계속 나오는 이유는 뭘까. 그는 “재밌는 현상이고, 권장해야 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잡지는 최소한의 네트워크와 피드백, 최소한의 재원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어요. 전문적인 작은 영역에서 심도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분화 정도가 심해지고 복잡해질수록 많은 잡지가 생겨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잉여인간이나 1인 생활자가 늘어나면서 독립 잡지인 ‘월간잉여’ ‘계간홀로’ 등도 생겨나게 된 거죠.”
그는 잡지가 살아남으려면 온라인, 오프라인 병행은 필수적이라고 봤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기사 콘텐츠는 무료라는 관념이 번져 있다. 포털사이트에 너무 싼값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상황이 이런 문화를 만든 것이다. 최근 일부 언론사가 프리미엄 페이지 등을 만들어 유료화 기획을 하고 있는데 귀추가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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