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등산열차를 타고 해발 3089m 고르너그라트로 오르면 높이 4000m 이상 되는 스위스 29개 명봉 전망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스위스의 상징이며 알프스의 혼으로도 부르는 마터호른(Matterhorn). 그곳에 가려면 스위스 최고 청정도시 체어마트를 거쳐야 한다. 마터호른의 관문 격인 체어마트에 들어서면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맑고 깨끗한 공기가 생활에서 찌든 폐를 씻어낸다. 이곳은 스위스 현지인이 최고로 꼽는 설경 1번지로, 알프스 협곡과 교량을 누비는 빙하특급열차의 기착지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느린 빙하특급열차를 타면 마치 영화 ‘설국열차’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스위스 최고 청정도시 체어마트
2 절벽과 빙하로 둘러싸인 마터호른을 즐기는 최상의 방법은 주변 봉우리에 오르는 등산열차와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다. 3 체어마트는 여름이면 마터호른의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로, 겨울에는 스키와 보드 등 겨울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청정도시다.
체어마트 중앙역에 내리면 스위스 전통가옥인 샬레 스타일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중앙역에서 시내로 이어지는 반호프 거리를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과 호텔, 그리고 레스토랑들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데,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으로 항상 붐빈다. 체어마트에 도착했다면 꼭 들러야 할 곳이 두 군데 있다. 알프스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에메랄드빛 마터비스파 강과 노아의 방주를 묘사한 천장화로 유명한 가톨릭 성 마우리티우스 교회가 그곳이다.
하지만 체어마트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눈앞에 웅대하게 펼쳐진 알프스 산들이다. 봄부터 가을까진 에델바이스를 비롯해 지천에 깔린 야생화를 보면서 하이킹을 하고, 겨울에는 최상의 설질을 즐길 수 있는 스키를 타는 것이다. 그 산들 중 최고 위용을 자랑하는 핵심은 마터호른. 하지만 높이 4478m나 되는 이 산의 완전한 자태를 보기에는 많은 운이 따라야 한다. 거의 대부분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등반가 에드워드 휨퍼가 1865년 첫 등정에 성공한 이래 매년 많은 전문 등반가가 찾는데, 일반 관광객은 주변 봉우리에 오르는 등산열차를 이용하면 좀 더 가까이서 마터호른을 볼 수 있다. 만약 등반열차를 타려는 이들이 있다면 고르너그라트(3089m)로 오르는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유럽 최고 높이의 트랙인 이 구간에는 스위스 최초의 전기 톱니바퀴 열차가 다닌다. 그라트(Grat)는 독일어로 산등성이라는 뜻으로, 고르너그라트는 슈토크호른까지 이어지는 산등성이를 의미한다.
4 스위스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높이 4478m의 마터호른은 미국 영화사 ‘파라마운트 픽처스’ 로고에도 사용됐다.
좀 더 가까이서 마터호른의 황홀경을 보고 싶다면 케이블카를 타고 해발 3883m에 위치한 마터호른 글라시어 파라다이스 전망대에 오르면 된다. 융프라우 스핑크스 전망대보다 310m가 더 높은 이 전망대에 가려면 체어마트에서 케이블카를 2번 갈아타고 내린 후 빙하를 뚫어 만든 터널을 지나야 한다. 전망대에 서면 마터호른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서 보이고 4000m 넘는 알프스 봉우리 38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풍경을 볼 수 있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체어마트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수네가 파라다이스 전망대(2288m)에 오르길 권한다. 1980년대 제작된 지하 케이블카로 3분만 이동하면 전망대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마터호른 전망이 최고라는 이도 적잖다. 글라시어 전망대처럼 이곳에도 파라다이스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으로 미뤄 허언은 아닌 듯하다.
체어마트 인근 핀델렌 마을을 찾으면 마터호른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다. 특이하게 생긴 집이 많고 마터호른 모습도 더 잘 볼 수 있다. 핀델렌 마을은 낡은 판잣집을 배경으로 한 마터호른 사진으로 유명하다. 체어마트 역사와 마터호른의 기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각종 자료는 물론, 마터호른 등반과 관련한 물건 및 사진들을 전시해놓은 마터호른 박물관도 여행의 필수 코스다. 그곳에 가면 마터호른에 서식하는 야생동물 박제와 전통 가옥 등 전시품들을 직접 만지고 볼 수 있다.
알프스에 오르려면 덜컹거리는 산악열차를 타야 한다(왼쪽). 쉴트호른 정상에 자리 잡은 회전식당 ‘피츠글로리아’. 영화 ‘007 제6탄-여왕 폐하 대작전’ 촬영지다.
마터호른으로 가는 관문이 체트마트라면 인터라켄은 유럽의 지붕 융프라우(4158m)로 가는 시발점이 되는 작은 마을이다. 베른 남동쪽 26km에 자리 잡은 인터라켄은 아름다운 툰 호수와 브리엔츠 호수 사이에 위치해 있다. 스위스의 다른 산악 지역에 비해 도시적인 분위기가 많이 풍기는 곳이기도 하다. 알프스 각 전망대로 올라가는 등산열차의 기점이 되는 스위스의 대표 여행지다.
인터라켄까지는 야간열차를 타고 가길 권한다. 기차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기차가 내는 독특한 소음도 즐겁고, 특유의 냄새는 왠지 오래된 추억으로 다가온다. 달리는 내내 바뀌는 창밖 풍경도 정겹다. 평지를 달리던 기차는 산과 산 사이를 통과하며 하늘에 점점 가까이 다가간다. 창밖 풍경에 빠져 있다 잠깐 잠이 들면 도착 안내 방송이 여행객을 깨운다. 옆자리 할머니의 어깨에 기대 자다 깨면 어느새 담요가 덮여 있다. 어쩌면 이국 만리 알프스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터라켄에 가면 누구나 융프라우를 자기 발로 밟고 싶어진다. 나 또한 융프라우에 올랐고 그 웅장한 대자연 앞에 감탄도 했지만, 현지인은 오히려 융프라우 반대편에 있는 쉴트호른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융프라우 정상 부근은 기상 상태가 좋은 날이 손에 꼽을 만큼 적어 제대로 된 경치를 볼 확률이 적다는 이유에서였다. 융프라우를 비롯한 알프스의 수많은 봉우리를 제대로 보려면 그 반대편 봉우리에 올라야 한다는 논리였다. 일정이 빠듯한 여행객에겐 충분히 일리 있는 설명이다. 우리의 백두산보다 조금 높은 쉴트호른은 알프스의 다른 준봉들보다는 낮지만 각종 레스토랑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인터라켄에서 쉴트호른으로 가는 길은 좀 복잡하다. 라우터브루넨과 푸니쿨라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그뤼트샬프에 도착한 후 뮈렌행 등반열차에 다시 올라야 한다. 뮈렌에 도착해서도 고생이다. 케이블카로 비르크로 이동한 후 다시 쉴트호른 정상까지 케이블카를 갈아타야 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곳에 살았으면…
산타할아버지가 사는 마을 같은, 융푸라우 산봉우리 아래에 자리한 뮈렌.
쉴트호른은 영화 ‘007’ 시리즈를 촬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007 제6탄-여왕 폐하 대작전’에서 주인공 제임스 본드가 식사한 회전식당 ‘피츠글로리아(Piz Gloria)’에 앉아 자연이 만든 웅장한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도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 가운데 하나다. 식당 밖 테라스에선 알프스 만년설 아래로 모형같이 손에 잡힐 듯한 예쁜 산간 마을과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을 감상할 수 있다. 하얀 눈이 가득 쌓인 회색 지붕 아래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산간 마을의 정취는 추운 가슴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해발 3454m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 융프라우 역과 얼음 궁전, 그리고 스핑크스 전망대도 중요한 볼거리다. 그곳에서 ‘유럽의 지붕(Top of Europe)’이라는 스탬프가 찍힌 엽서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우체통에 넣는 것도 좋은 추억거리로 남는다.
융프라우를 내려와서는 놓치지 말아야 할 여행 코스가 있다. ‘두 개의 호수’ 유람선 여행. 브리엔츠 호수와 툰 호수가 만나는 인터라켄에서 유람선을 타면 에메랄드빛 호수와 그림같이 예쁜 집들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풍광을 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색을 흡수해버린 듯한 은빛 세상과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 예쁜 풍경을 만들어내는 집들, 그 지붕들 아래서 투박하고 소박하지만 자연 그대로 삶을 즐기는 알프스 사람들…. 대자연이 주는 벅찬 감동 앞에서 혼잣말로 중얼거려 본다. “나도 이곳에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