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7일 동북아역사재단 산하 독도체험관의 외국인 역사아카데미 수강생들이 독도를 방문했다.
그런데 집을 나설 때쯤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다. 경기 안산시 단원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려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건이 180도로 바뀌어 ‘무섭게 커져 있는 것’을 휴게소에서 알았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독도는커녕 울릉도로 가는 배가 운항할까.’ 무거운 마음은 숙소에 도착한 다음에도 이어졌다. 다국적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세월호 사건이 주는 엄청난 중압감 탓에 동행인들은 전혀 들뜬 분위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다음 날 아침 강원 동해시 묵호항에 나가자 관광객이 가득했다. 배는 만석이었다. ‘세월호 사건에도 포기하지 않고 계획대로 움직이는 사람이 이렇게 많구나’ 하고 생각했다. 바다는 잔잔했다. 그러나 선실에 켜놓은 TV는 모두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었다.
울릉도 도동항은 붐볐다. 대기하던 많은 이가 우리가 내린 배에 바로 올라탔다. 동행인들은 동북아역사재단 산하 독도체험관이 운영하는 ‘외국인 역사아카데미’의 수강생들이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10만 명에 육박하는데, 학문만 가르쳐줄 뿐 한국을 가르쳐주는 곳은 없었다. 독도체험관은 이 점에 착안해 지난해 하반기 이 아카데미를 열었다. 한국어 능력시험인 토픽((TOPIK)에서 중급(4급) 이상을 받은 유학생을 선발해 15주간 매주 두 시간씩 고교 수준인 ‘동북아 속 한국역사’를 강의하기로 한 것.
크게 홍보하지 않았는데도 주목을 끌어 처음부터 정원(30명)을 넘겼다. 그만큼 한국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외국 유학생이 많은 것이다. ‘단군’에서부터 ‘민주화’까지 길고 긴 한국 통사(通史)는 이들에게도 학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아카데미는 학기 중간에 독도 탐방을 마련했다. 독도는 모든 한국인이 소중하게 여기는 곳이라, 외국인 수강생도 몹시 궁금해한다. 독도에 가보려고 아카데미에 들어온 학생이 있을 정도다.
일본 ‘독도 방문 한국 관할권 따르는 것’
도동항에서 해양경찰(해경)을 만났다. 대한민국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이 울릉도와 독도에 가보는 것을 막지 않는다. 그러나 약간의 예외가 있다. 일본인이다. 독도에 들어간 일본인이 일장기를 펼쳐 “다케시마는 일본 땅”을 외치고, 그것을 찍은 동영상 같은 게 유포되면 대한민국이 시끄러워진다. 한일 간 외교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해경이 신경 쓰는 것이다.
일본은 그 반대를 염려한다. 일본은 일본인이 독도에 다녀오는 것을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를 인정하는 것이라고 본다. 독도 문제를 다루는 일본 외무성 웹사이트에는 ‘한국의 출입국 수속에 따른 다케시마 입도를 자숙하기 바란다’란 제목으로 이런 내용이 실렸다.
‘한국의 다케시마 불법 점거가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일본) 국민이 한국의 출입국 수속에 따라 다케시마에 들어가는 것은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관할권을 따르는 것으로 보일 수 있고,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오해를 줄 수도 있다. 그러니 다케시마에 입도하지 않도록 모든 국민의 양해와 협력을 바라는 바이다.’
해경은 일본인이 울릉도에 왔다는 것만 확인하고 물러났다. 독도 방문은 울릉도 도착 당일에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월 17일엔 동해가 잔잔했으니 독도에 가면 100% 입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독도행 표가 없어 다음 날로 미루고 울릉도 탐방에 들어갔다. 통구미에서 나리분지까지 우리 눈에도 신기한 절경을 보며 그들은 즐거워했다. 나리분지에서는 ‘씨껍데기술’을 마시며 이 술과 막걸리는 어떻게 다른지 물어왔다.
그다음 날 아침 제법 바람이 불었다. 바다는 출렁거렸다. 사동항으로 가자 일종의 ‘독도 지키기’ 현상이 발견됐다. 이른 시간임에도 ‘독도는 우리 땅’임을 알리는 기념물을 파는 상인이 적지 않았던 것. 부두에서 우리를 본 해경 관계자가 다가와 인사하더니 젊은 해경대원을 배에 동승하게 했다. 독도에는 ‘육경(陸警)’인 경북경찰청 산하 독도경비대가 있는데, 해경은 해경대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전날과 달리 배가 많이 흔들려 멀미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파도가 크면 독도 접안이 안 되는데, 정말 운 좋게 접안했다. 배가 멎자 물양장(부두)에 도열해 있던 독도경비대원들이 힘차게 경례를 했다. 그리고 괭이갈매기 떼가 눈사태처럼 쏟아져 내려왔다. 먹이를 달라는 강력한 신호다. 몇몇이 과자 ‘새우깡’을 던져주자 하늘이 하얘졌다. 그 기세에 놀란 여성 관광객들이 비명을 지르자 독도경비대원들이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울릉도 사동항에서 볼 수 있는 독도 지키기 마케팅(왼쪽). 일본인의 독도 방문 자숙을 요구하는 일본 외무성 웹사이트의 다케시마 관련 내용.
사람들은 독도와 물양장 이곳저곳에 있는 기념물을 배경으로 사진 찍기에 바빴다. 과거에는 태극기를 흔들며 애국가를 부르거나 독도경비대원들에게 위문품을 전달하는 단체도 많았는데, 그날은 보이지 않았다. 독도경비대원들은 관광객의 안위를 살피면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요원들처럼 사진 모델이 돼주기도 했다.
외국인 학생들은 독도 그 자체보다 독도에 왔다며 무척 즐거워하는 한국 관광객들을 신기한 듯 구경했다. 잠시 후 뱃고동이 울었다. 파도가 높아지고 있으니 빨리 돌아가자는 뜻이다.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바다가 잔잔했다. 뒤바람 때문이라고들 했다. 울릉도에서 묵호로 돌아오는 뱃길도 마찬가지였다.
외국인 학생들은 독도를 보고 환호하는 우리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독도 방문에 대한 인상을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 사고 와중에 한국인이 환호하는 독도에 다녀왔다는 것은 오래오래 기억할 터이다.
적잖은 독도 전문가는 일본인이 말하는 다케시마는 과거 울릉도라고 주장한다. 조선은 울릉도를 죽도(竹島)라고 부르면서 섬에 사람이 나가 사는 것을 금하는 해금(海禁) 정책을 폈다. 그렇게 비워놓은 죽도에 지금 시마네(島根) 지역에 사는 왜(일본)인이 들어가 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고 고기잡이를 해 떼돈을 벌었다.
그것이 문제가 돼 조선과 왜는 국서(國書)를 주고받았는데, 그때 양쪽은 울릉도를 죽도(竹島)로 표기했다. 죽도는 명백한 조선 영토였으므로 왜는 영유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러한 일본이 1910년 대한제국을 삼키면서 울릉도를 영토화했다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면서 토해놓았다. 그러자 울릉도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한 시마네현 사람들이 그때까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영유권을 외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그렇다면 일본의 본심은 독도를 발판으로 삼아 울릉도를 노리는 것일까. 독도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여전히 냉랭한 이때 판문점과 경주에 집중된 외국인의 한국 관광을 울릉도와 독도로 확대해 한국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조용한 관람’을 조건으로. 그것이 우리의 애국심을 키우면서 독도 영유권을 강화하는 일석이조 방안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