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모습. 배경 벽면에 세월호 실종자 생환을 염원하는 노란리본이 달려 있다. 이날 황우여 대표는 “4월 16일을 영원히 기억하고 기초부터 하나하나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바라보는 정치권 속내는 복잡하다. 사고 이후 6·4 전국동시지방선거(지방선거)를 위한 당내 경선과 선거운동을 ‘올스톱’하면서 자숙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선거일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 일정을 더는 늦출 수도 없어 고민이다. 사고 전 여야는 공히 ‘민생 프레임’을 앞세웠지만, 사고 수습 과정에서 허술한 재난구조 시스템이 드러나 민생은 꺼낼 수도 없게 됐다.
여 “10%p 하락” vs 야 “강공 땐 역풍”
소속 의원과 선거 입후보자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 유의하고, 음주와 골프 자제령을 내리는 게 지금으로선 최선의 선거 전략이라는 하소연도 나온다.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소속 의원의 말실수가 이어지자 ‘6·4 지방선거는 자책골을 적게 넣는 쪽이 이긴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상자기사 참조).
여야는 현재 추도 분위기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선거 일정 재개를 논의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는 4월 24일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5월 12일, 인천시장과 경기도지사 경선은 각각 5월 9일과 10일 치르기로 결정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새누리당 경선 위탁 시한을 4월 30일로 못 박은 만큼 부산, 대구, 대전, 충남, 강원 등 나머지 5개 광역단체장 경선은 4월 30일 동시에 치르기로 했다(충남은 29일 투표, 30일 발표).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도 전남도지사 경선 후보자 등록 접수를 시작했지만 고민이 크다. 경기, 전남도지사의 경우 ‘공론조사(선거인단을 선정해 후보자 토론을 지켜본 뒤 투표하는 방식)+여론조사’ 방식으로 경선 룰을 정했지만, 지금 같은 추모 분위기로는 공론조사 선거인단 모집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100% 여론조사 경선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경선보다 더 큰 문제는 선거 전략이 확 바뀌었다는 점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강조한 민생 프레임은 세월호 사고로 무색해졌다. 국민적 감정을 고려하면 민생을 꺼내기도 민망하다. 기존 선거구도 역시 크게 흔들리면서 6·4 지방선거의 기본 전략인 민생 프레임이 안전 프레임으로 옮겨가고 있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모든 국민적 관심이 대한민국 안전, 무능한 정부의 재난구조 시스템에 쏠린 상황인 만큼 선거 전략도 각종 재난대책과 국민 안전에 맞추는 게 불가피하다”며 “선거 후보자들도 당선 후 지역의 ‘안전 사령탑’으로서의 구실 등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할 경우 의외의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분석한다.
먼저 새누리당은 ‘안전’을 강조한 박근혜 정부의 재난대응 시스템이 문제점을 실시간으로 노출하는 만큼 지방선거에서의 타격은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비행을 바탕으로 중진 차출론과 순회 경선을 통해 바람몰이를 한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관료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도 오히려 부담이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말실수할까 기자와의 통화도 망설여진다”면서 조심스럽게 현 상황을 설명했다.
4월 23일 김한길,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경기 안산시 올림픽체육관에 마련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여야가 함께 ‘해수부 마피아’ 대책 마련
그의 말처럼 당장 박 대통령은 4월 21일 총체적 안전점검 지시를 내렸고, 국무조정실은 23일 각종 시설물과 철도·항공 등 교통수단, 에너지·유해화학물질 사업장에 대해 일제 점검에 착수했다. 국회도 마찬가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학생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차원에서 여야 이견 없이 ‘학생 안전의 날’ 제정을 추진키로 했고, 여야가 함께 ‘해수부(해양수산부) 마피아’ 대책 마련에 나선 것도 그 연장선상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해운조합과 선박검사를 담당하는 한국선급, 선박 도면 승인 업무를 위탁한 선박안전기술공단의 핵심 보직을 해수부 퇴직관료가 맡고 있는 사실이 알려진 만큼 공직 유관단체 취업을 제한하는 개정안 마련에 나선 것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한 의원의 설명.
“사실 조심스럽다. 해양안전 관련 법안 중에는 1년 넘게 계류 중인 것도 있다. 국민적 관심사인 해양안전 관련 법안들을 이번에 통과시키는 건 당연하지만 ‘뒷북’ 비판을 받을 거다. 박 대통령이 그동안 관료를 중시했는데 관료 병폐를 따지려니 선거를 앞두고 불똥이 옮겨 붙지 않을지도 고민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안전문제로 정면 돌파하는 것 외에는 대안도 없다. 태풍, 산사태 등 각종 재난대책과 국민안전을 위한 정책들을 재점검하고, 안전 관련 법안을 최대한 빨리 통과시킬 생각이다. 새누리당 세월호 사고대책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만, 지금은 사고 수습이 먼저지 대책을 내놓을 때가 아니다.”
여당 초·재선 의원이 중심이 된 혁신연대 등 일각에서 정홍원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 사퇴론을 제기하는 것도 이러한 ‘여당의 지방선거 참패론’ 우려가 깔렸다. 야당의 안전 부실 전면공세와 ‘정권심판론’에 대비해 선제적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 이주영 해수부 장관은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개각 카드를 꺼내 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새정연은 6·4 지방선거 전략이던 ‘정권견제론’에서 ‘정권심판론’으로 전략 수정을 꾀하는 모습이다. 박 대통령이 지지율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정권 초반인 만큼 정권심판론을 제기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지만, 정부의 총체적 미숙 대응이 노출되면서 심판론이 힘을 받는 형국이다. 국민적 애도 기간이 끝나면 정부여당을 겨냥한 책임 추궁 등 고강도 공세를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적 분노와 불신 증폭
새정연 관계자는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이 큰 사고를 일으켰지만, 박근혜 정부는 사고 수습을 제대로 못 해 사고를 더 키운 측면이 있다”며 “한국해운조합 이사 12명 중 10명이 해수부 관료 출신이고 한국선급은 12명 중 8명이 관료 출신이다. 낙하산 관료의 유착으로 안전점검이 부실해진 것을 박근혜 정부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예고했다.
그러나 새정연도 무작정 정부를 ‘안전 무능 정부’로 비판하다가는 자칫 세월호 사건을 정쟁에 이용한다는 역풍을 맞을까 조심스럽다. 김한길 공동대표가 4월 23일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묻는다면서 서둘러 사람들을 문책하고 처벌한다 해도 결코 우리 책임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안철수 공동대표도 유가족의 슬픔을 ‘단장(斷腸)의 슬픔’에 비유하며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마음도 끊어질 듯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우리 정부의 사고 대책에 관한 체계적 준비나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라며 대정부 공세보다 국민과의 공감에 방점을 찍었다.
지방선거와 향후 정국이 ‘안전 프레임’에만 갇힐 경우 자칫 국민 주권을 실현하는 선거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낮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적 분노와 불신이 정치 혐오증을 키워 선거 무관심으로 옮겨갈 경우 2002 한일월드컵에 가려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 제3회 지방선거 투표율(48.9%)보다 낮은 역대 최저 투표율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이 경우 선거가 민의를 담는 데 실패할 수 있다. 이래저래 정치권 속내는 복잡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