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야, 네가 잘못하지 않은 거 다 알아.”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여고생 한공주(천우희 분)는 다니던 학교를 도망치듯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공주는 말한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쳐야 하죠?”
세상은 묵묵부답이지만 삶은 계속돼야 한다. 슬픔과 상처를 꼭꼭 감춘 채 공주는 새 학교에 들어가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다치고 닫혔던 마음을 여는 게 쉽진 않았지만, 같은 반이자 아카펠라 동아리 회원인 은희(정인선 분)의 노력에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어갔다. 기타와 노래는 힘이 됐고,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우정의 ‘다리’가 됐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힘들게 떼어놓은 발길을 다시 잡은 건 악몽 같은 과거였다. 친구들 권유로 온라인에 올린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이 동영상으로 공주 행방을 알게 된 가해 소년들의 부모가 학교까지 찾아온 것. 공주는 끔찍한 소년 범죄 피해자였고, 같은 일을 당한 그의 친구는 자살했으며, 가해 학생들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도망가야 했던 것은 피해자였고, 지옥을 감당해야 했던 것도 악행을 저지른 소년들이 아니라 공주였다.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끔찍한 상처를 안은 소녀가 스스로를 치유해가며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디디려는 안간힘을 그린 작품이다. 분노의 폭발도, 슬픔의 토로도 없이 감독과 배우는 담담한 어조로 극을 이끌어가지만, 모든 장면이 희로애락의 표정을 지으며 관객 마음에 너울을 만들어낸다. ‘써니’ ‘마더’ 등에 출연한 젊은 배우 천우희의 섬세한 연기는 관객에게 조심스러운 희망의 싹을 심기도 하고, 먹물처럼 번지는 절망과 슬픔의 파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공주’는 한국 독립영화의 성취이자 발견으로 꼽히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로테르담, 프리부르, 도빌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하고 있다.
과연 ‘한공주’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소년들일까,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가녀린 소녀에게 덤벼드는 가해 소년들의 부모일까. 공교롭게도 또 다른 한국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는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자살한 여중생이 등장하고 ‘방황하는 칼날’은 소년들의 끔찍한 악행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한 뒤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유대인 학살범 아이히만은 ‘악마적인 심연을 가진 괴물’이 아니었으며 평범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그를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건 ‘순전한 무사유’였다고 했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아렌트의 생각이었다.
악행을 저지르는 순진무구한 얼굴의 소년들, 자기 피붙이에게 흠이라도 갈까 벌벌 떠는 그 부모들,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가혹한 어른들…. 한국 영화 속 풍경에 드리운 것은 ‘무사유’의 사회에 대한 근심이 아닐까.
선생님은 그렇게 말했지만, 여고생 한공주(천우희 분)는 다니던 학교를 도망치듯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공주는 말한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왜 도망쳐야 하죠?”
세상은 묵묵부답이지만 삶은 계속돼야 한다. 슬픔과 상처를 꼭꼭 감춘 채 공주는 새 학교에 들어가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귄다. 다치고 닫혔던 마음을 여는 게 쉽진 않았지만, 같은 반이자 아카펠라 동아리 회원인 은희(정인선 분)의 노력에 마음의 빗장을 조금씩 풀어갔다. 기타와 노래는 힘이 됐고,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우정의 ‘다리’가 됐다.
하지만 세상을 향해 힘들게 떼어놓은 발길을 다시 잡은 건 악몽 같은 과거였다. 친구들 권유로 온라인에 올린 동영상이 화제가 되고, 이 동영상으로 공주 행방을 알게 된 가해 소년들의 부모가 학교까지 찾아온 것. 공주는 끔찍한 소년 범죄 피해자였고, 같은 일을 당한 그의 친구는 자살했으며, 가해 학생들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도망가야 했던 것은 피해자였고, 지옥을 감당해야 했던 것도 악행을 저지른 소년들이 아니라 공주였다.
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는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끔찍한 상처를 안은 소녀가 스스로를 치유해가며 다시 세상으로 발을 내디디려는 안간힘을 그린 작품이다. 분노의 폭발도, 슬픔의 토로도 없이 감독과 배우는 담담한 어조로 극을 이끌어가지만, 모든 장면이 희로애락의 표정을 지으며 관객 마음에 너울을 만들어낸다. ‘써니’ ‘마더’ 등에 출연한 젊은 배우 천우희의 섬세한 연기는 관객에게 조심스러운 희망의 싹을 심기도 하고, 먹물처럼 번지는 절망과 슬픔의 파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한공주’는 한국 독립영화의 성취이자 발견으로 꼽히며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로테르담, 프리부르, 도빌 등 유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수상 행진을 하고 있다.
과연 ‘한공주’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무엇일까. 아무 죄책감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소년들일까, ‘새끼’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가녀린 소녀에게 덤벼드는 가해 소년들의 부모일까. 공교롭게도 또 다른 한국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는 학교 친구들의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자살한 여중생이 등장하고 ‘방황하는 칼날’은 소년들의 끔찍한 악행으로 딸을 잃은 아버지가 살인자가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 과정을 취재한 뒤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에서 유대인 학살범 아이히만은 ‘악마적인 심연을 가진 괴물’이 아니었으며 평범하고 성실하기까지 한 그를 엄청난 범죄자로 만든 건 ‘순전한 무사유’였다고 했다.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대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아렌트의 생각이었다.
악행을 저지르는 순진무구한 얼굴의 소년들, 자기 피붙이에게 흠이라도 갈까 벌벌 떠는 그 부모들, 피해자에게 죄를 묻는 가혹한 어른들…. 한국 영화 속 풍경에 드리운 것은 ‘무사유’의 사회에 대한 근심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