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랴오닝성의 북·중 경제협력 지역 황금평에서 북한 주민들이 작업하고 있다.
일찌감치 북한 관련 사업
이 와중에 필자의 중국 내 취재원들이 흥미로운 소식 두 가지를 전해왔다. 하나는 북·중 접경 지역에 관한 것으로, 중국 최대 갑부로 손꼽히는 인물이 회장으로 재직하는 다롄완다그룹(완다그룹)이 황금평 개발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베이징에서 왔다. 북·중 경제협력 사령탑이라 부르는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 김기석 위원장과 김철진 제1부위원장의 동정에 관한 소식이다.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 사이 압록강 하구에 위치한 섬 황금평의 개발 소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1년 6월 장성택 당시 조선노동당 행정부장과 중국 천더밍 상무부장이 참석한 가운데 황금평 현지에서 개발 착공식이 열렸지만, 이후 장기간 본격적인 착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필자의 취재원은 완다그룹이 황금평 개발 독점권을 차지했다고 전했다. 4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장 건물 신축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라는 설명이다.
완다그룹은 흔히 중국 최대 상업부동산 개발업체로 불린다. 이 회사의 왕젠린 회장은 부동산개발 사업으로 거부가 된 인물로, 지난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와 중국 후룬연구소 조사에서 모두 중국 최고 부자로 뽑혔다. ‘포브스’ 조사 결과 왕 회장은 2013년 현재 우리 돈으로 15조 원이 넘는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에서도 왕 회장은 104억 파운드 상당의 부동산을 보유해 현지 부동산전문지가 선정한 영국 최고 부동산 부자이기도 했다.
완다그룹은 ‘완다 광장’ 등 복합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상업용 부동산개발 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뒀고, 이후 영역에 관계없이 방대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할리우드에서 큰손으로 주목받았다. 2012년 미국 최대 영화관 AMC를 26억 달러에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영화박물관 건립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산둥성 칭다오에 82억 달러를 투입해 ‘중국판 할리우드’ 착공에 들어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1월에는 우리 돈 3050억 원 안팎의 자본을 투자해 영국 프리미어리그 팀 인수를 추진 중이라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완다그룹은 북한 관련 사업에도 일찌감치 관심을 보였다. 2012년 중국은 북한과 국경을 마주하는 백두산 자국 측 코스에 겨울철 관광객을 유치하는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여름철 관광지인 백두산에 스키장과 고급호텔, 온천 등을 갖춘 대규모 리조트를 만들어 ‘4계절 관광지 백두산’으로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완다그룹은 이 사업에 적극 참여했다. 중국과 북한은 현재 북한 쪽 백두산과 연계한 관광 상품을 계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취재원에 따르면 완다그룹이 황금평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미 단둥에서 여러 차례 회의도 가졌다. 완다그룹은 황금평에서 가장 먼저 의류봉제 공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상업용 부동산개발이 주력 사업이긴 하지만, 완다그룹은 의류 분야에서도 연매출 규모가 8억 달러에 이를 정도로 두각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미 성실성을 인정받은 북한 인력을 활용해 의류봉제 공장을 운영하겠다는 계획인 셈이다.
완공을 앞둔, 북한 신의주와 중국 단둥을 잇는 신압록강 대교.
왕젠린 중국 다롄완다그룹 회장.
북한 측 반응도 발 빠르다. 평양이 완다그룹에 어마어마한 인력을 공급할 계획이라고 필자의 취재원은 전했다. 의류봉제 공장 한 곳당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1000명까지, 전체 의류봉제 공장으로 따지면 북한 인력 6000~7000명이 필요하리라는 예상이다. 향후 공장이 늘어날수록 북한 인력 소요 또한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국 기업들이 북한 인력을 달라고 아우성인 상황에서 완다그룹의 황금평 개발 참여는 인력 쟁탈전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앞으로 개성공단의 북한 근로자 수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관측된다. 완다그룹은 기존 어느 지역보다 좋은 조건으로 북한 근로자를 고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근로자 개인이 가져가는 금액이 개성공단 근로자에 비해 훨씬 많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이 때문에 황금평이 북한에서 인력 송출 선호도 1순위 지역으로 떠올랐다는 소식도 들린다.
북한은 황금평에 배치하는 인력을 주로 평양 출신으로 선발하려고 추진 중이다. 지금까지 중국에 파견한 인력은 대부분 신의주와 해주 등 지방 출신이 많았다. 2012년 5월 북한 인력이 처음 중국에 공식 송출될 당시만 해도 평양 출신이 대부분이었지만, 이후 인력 송출이 늘면서 사정이 변해 지방 출신이 다수를 차지했다.
이는 개성공단 근로자도 마찬가지다. 필자의 취재원은 “일을 시켜보면 평양 인력이 훨씬 낫다. 지방 인력은 머리는 쓸 줄 모르고 무조건 힘만 쓰려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실제로 평양 출신 우수 인력을 대거 황금평으로 보낸다면, 이는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한 완다그룹과 손잡고 황금평 개발에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가시적 성과를 거두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북·중 접경 지역에서 포착되는 흐름과 달리 베이징에서는 아직 경제협력 움직임이 활발하지 않은 분위기다. 필자의 취재원은 “현재 베이징 경제계에서는 장성택 처형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아 북·중 경제협력이 답보 상태”라고 전해왔다. 예컨대 2월 국내 언론에는 북·중 경제협력 사령탑으로 불리는 두 인물이 장성택 사건에 연루돼 조사받았고 이후 업무에 복귀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경제개발구 창설과 운영을 전담하는 국가경제개발위원회 김기석 위원장과 김철진 부위원장이 그들이다. 하지만 필자가 3월 중국 내 취재원으로부터 취재한 내용은 국내 언론보도와 다소 차이가 있다.
김기석 위원장과 김철진 부위원장은 장성택 처형 직후인 지난해 12월 말 평양으로 소환돼 조사받았다. 장성택 측근 대부분이 조사받던 시점이다. 김 위원장은 조사 결과 장성택 비리와 연관성이 크지 않아 사상교육만 받고 풀려나 2월 초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 이후 베이징도 몇 차례 방문했다. 하지만 김 부위원장은 상황이 달랐다. 비리와 꽤 연관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와 임업연구소에 감금된 채 고된 노동을 하는 노동교화형이 선고됐다는 것이다.
김기석과 김철진의 운명
북한 사법체계상 형벌은 죄과에 따라 총살, 교도소 복역, 노동교화, 사상교육 순이다. 노동교화형은 살인이나 강도 같은 형사범, 사기와 횡령 같은 경제범 가운데 2년 이상 형량을 받은 중범죄자에게 선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지난해 억류한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에게 ‘반공화국 적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노동교화형 15년을 선고했다. 2010년에는 체포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 씨에게 노동교화형 8년을, 2009년에도 체포된 미국 여기자 2명에게 각각 노동교화형 12년을 선고한 바 있다. 외국인에게 내린 노동교화형은 통상 해당 국가와 협상 카드용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대외 경제무역의 핵심 일꾼이던 김철진 부위원장의 운명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김기석 위원장과 달리 죄가 중하므로 업무 복귀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한다. 다른 일각에서는 김 부위원장이 이르면 6월쯤 업무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김 부위원장 없이는 주요 대외 경제협력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최근 베이징에서는 그의 공석으로 대북 경제협력 업무가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2월 초 국내 언론은 일제히 엉뚱한 인물을 김철진 부위원장으로 잘못 소개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최근 북한 경제개발 핵심 인물로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와 함께 김 부위원장이 지난해 평양 문수물놀이장 건설 현장과 마식령 스키장에서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를 지근거리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담았다는 사진을 소개한 것. 하지만 사진 속 인물은 김 부위원장이 아니었다. 한국 언론의 취약한 대북 정보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