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X(한국형 전투기) F-15K.
단발파는 T-50 시리즈를 제작하는 KAI(한국항공우주산업)와 KIDA로 부르는 한국국방연구원이 주축이다. 쌍발파는 신무기 개발을 담당하는 ADD(국방과학연구소)와 ROKAF로 약칭되는 대한민국 공군이다. 양측 기 싸움이 팽팽하기에 결정권을 쥔 방위사업청(방사청)은 결정 시기를 늦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쌍발파 측 주장부터 들어보자. 이들은 “엔진이 2개인 것이 1개인 것보다 안전하다. 비행 중 1개가 꺼져도 다른 엔진으로 기지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2개 엔진을 탑재하면 여력(餘力)이 있어 전투기를 더 확장할 수도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전투기도 발전시켜야 하는데, 쌍발기는 그럴 여지가 있다”고 말한다.
단발파는 “2개 엔진이 안전하다는 것은 옛말이다. 기술 발전으로 비행 중 엔진이 꺼지는 일은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단발기와 쌍발기가 엔진 문제로 사고를 낸 비율은 별 차이가 없다. 따라서 미 공군도 중형전투기는 전부 단발기를 채택했다. 단발기는 쌍발기보다 값이 싸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한다.
보라매 사업은 ADD가 주도했다. 공군은 전통적으로 쌍발기를 선호하니 ADD는 보라매의 심장을 2개로 그려놓았다. 그리고 비용을 줄이려고 인도네시아를 공동 투자국으로 끌어들였다. 영국 등 네 나라가 유로파이터를 공동 제작 및 생산해 비용을 낮춘 것처럼, 보라매 사업도 공동으로 하기로 한 것. 이들은 최신형 F-18인 FA-18EF와 유로파이터, 라팔 등 현재 제작되는 중형전투기가 모두 쌍발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방위사업청 결정 시기 늦춰
그러나 보라매를 제작할 KAI 측 생각은 전혀 다르다. KAI는 중형 쌍발전투기는 시장 확보에 실패해왔다고 지적한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단발기 F-16과 쌍발기 F-18이 중형전투기 선정을 놓고 경쟁한 결과 F-16이 승리했다. 1991년 한국이 펼친 KFP 사업에서도 엎치락뒤치락하다 F-16이 승리했다.
그때도 쌍발기가 안전성과 확장성이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채택되지 못한 것. KFP 사업에서는 한국이 F-18을 선택하면 80대, F-16을 고르면 120대를 살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3대 2 비율로 F-18이 비싼 것이 확인된 셈인데, 이러한 가격 차이는 지금도 엇비슷하게 유지된다.
공중전은 대형전투기가 우세를 결정짓는다. 따라서 미 공군도 대형전투기만큼은 반드시 쌍발을 선택한다. 중형전투기는 대형전투기가 확보한 우세를 이용해 막대한 공격을 퍼붓는 것이라, 같은 값이면 수가 많은 게 좋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가격 면에서 우세를 점한 단발파는 이러한 주장을 덧붙인다.
“전투기 하나를 놓고 확장성을 따지면 쌍발기가 우세하다. 그러나 같은 가격대인 쌍발기 2대와 단발기 3대를 놓고 따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단발기 3대는 쌍발기 2대보다 훨씬 더 많은 장비와 무장을 탑재한다. 전투력도 2대보다 3대가 유리하다.”
한국이 개발한 T-50 고등훈련기는 비싼 가격 탓에 시장 창출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를 개조한 FA-50은 뜻밖에도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FA-50은 소형전투기로 분류되는데, 같은 급의 대표가 F-5였다.
F-5는 친미(親美) 성향의 약소국에 많이 보급돼 있다. 작전 수명이 지났기에 퇴역시키고 새로운 것을 구해야 하는데, 미국 등 항공 선진국은 소형전투기를 개발하지 않았다. 유일한 것이 스웨덴이 개발한 그리펜인데, 그리펜은 작아도 성능은 중형에 필적할 만하기에 값이 비싸다. 그러나 FA-50은 훈련기에 전투 장비를 추가한 것이라 그리펜에 비하면 상당히 헐하다.
2013년 1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F-X와 KF-X 관련 최신 장비 전시장에 유승민 국방위원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김형태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 등 관계자들이 보라매 체계 교전 모의 시스템을 돌아보고 있다.
KIDA는 F-50을 제작해 우리 공군에 납품한 후 세계 시장을 공략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사시 작전을 의식한 공군은 장거리 침투가 불가능한 F-50 도입에 극렬히 반대한다. 그러나 공개적으로 반대할 수 없어 “단발기는 보라매가 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만 제시하고 있다.
FA-50이 값이 싸서 인기라면 보라매도 값싸게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 KAI 측 주장이다. 그래야 수출이 이뤄진다는 것. 한국 전장(戰場)에서 공중 우세는 F-15K와 차기전투기(FX) 사업으로 도입할 F-35 스텔스기로 결정짓고, 그 틈을 파고 들어가 승리를 확정하는 공격은 대량으로 확보한 보라매로 하자는 것이다.
노후 전투기 퇴역 전력 공백
KAI는 최소한이긴 하지만, 공군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수출도 하려면 기존 중형전투기인 F-16이나 F-18, 유로파이터, 라팔보다 성능이 떨어져도 가격은 훨씬 저렴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유해서 설명하면, 가격은 그리펜급인데 중형전투기를 만들자는 것이다. 지갑이 얇은 제3국 수출을 의식하니 스텔스 기능 등 최첨단은 배제한다. 원하는 경우에만 추가하게 할 계획이다.
보라매 사업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는 기획재정부(기재부)도 일정 구실을 한다. 기재부가 산정한 예산 범위 내에서만 사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세수(稅收) 부족에 직면했다. 따라서 여러 차례 비용이 덜 드는 보라매 사업을 요구해왔다. 그 연장선상에서 논의된 것이 F-50이었다. 예산 문제는 공군도 직면한 사항이다. 요즘 전투기는 아군이 확보한 모든 정보를 모니터에 띄우는 데이터 링크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KFP 사업으로 확보한 KF-16은 수적으로는 가장 많은 전투기인데도 이 시스템을 탑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추가하는 개조 작업을 하고자 하는데, FX 사업과 보라매 사업에 대한 지출이 늘어나면 이를 할 수 없게 된다. FX 사업도 은근히 골칫거리다. F-35의 가격이 높을 것 같아 40대만 도입하기로 했는데도 준비한 예산을 초과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국방부는 한국방공식별구역을 이어도까지 넓혔다. 그 때문에 감시 영역이 크게 늘어나 조기경보기를 2~4대 더 구매해야 한다. 공중급유기 도입도 서둘러야 한다. 해야 할 사업이 줄줄이 대기한 상태인데 예산은 한정돼 있으니 쌍발기를 원하지만 공군은 목소리를 내기 힘든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조치를 기대하며 시간만 보낸다면 노후 전투기의 퇴역으로 전력 공백만 커진다. 그래서 보라매 사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보라매의 심장 수를 몇 개로 할 것인지 방사청은 속히 결단을 내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