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최대 어젠다를 들라고 하면 바로 ‘창조경제’다. 그 키워드는 ‘창의적 도전’ ‘글로벌 지향’ ‘미래 성장동력 발굴’. 이 중에서 ‘글로벌 지향’은 문민정부에서 시작돼 지난 30여 년 동안 우리 경제계에서 화두가 돼온 해묵은 명제다. 과연 ‘글로벌’을 ‘지향’하려면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기업 리더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이 질문에 허준(54·사진) 메드트로닉(Medtronic) 아시아·태평양 지역(아태지역) 총괄사장은 “수직적 사고를 버리고 쉼 없이 도전하면 된다”고 답한다.
메드트로닉은 연매출 18조 원 규모를 가진 세계 최대 의료기 생산 및 판매 회사로 제너럴일렉트릭(GE), 존슨앤드존슨 등 다른 부문을 겸한 기업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미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시장가치 기준 60위(약 60억 달러·2013년 기준)에 올라 있다. △인공심박동기 △이식형 제세동기(부정맥 치료) △심혈관 스텐트 △척추고정술 관련 기기 △수술용 네비게이션 등 의료기기를 광범위하게 다루는 회사다. 제품 대부분이 중증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분야에 집중돼 있고, 이 중 많은 수를 이 회사가 최초로 개발했다.
글로벌 마인드는 수평적 관계
허 사장은 1985년 25세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여러 글로벌 회사의 중역을 거쳐 2004년 메드트로닉 아세안(ASEAN) 및 한국 대표를 맡았다. 2008년 한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국가를 아우르는 아태지역 총괄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2012년 아태지역이 세분화되기 전에는 일본과 인도까지 담당했다.
허 사장은 메드트로닉 역사상 한국인 최초 본사 최고경영위원회(Executive Committee) 일원이며, 2007년에는 이 회사 경영자에게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월린 리더십 어워드(Wallin Leadership Award)를 수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명실상부 가치를 인정받고 우뚝 선 한국인이자 글로벌 리더인 셈이다.
글로벌화(化)에 대한 허 사장의 생각은 ‘사장님’이란 호칭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기업대표에게 의례적으로 붙는 이 호칭에 대해 그는 강한 의문을 표한다.
“내가 회사에서는 ‘사장’이지만, 그건 내 삶의 한 부분일 뿐이죠. 사실 직장에서의 내 구실 외에 나에겐 가족의 일원, 혹은 누군가의 친구인 ‘자연인 허준’이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2004년 메드트로닉 코리아 대표로 처음 부임한 그는 직원 간 호칭부터 정리했다. 직급을 부르지 않고 이름에 ‘님’을 붙이도록 통일한 것. 이는 사장인 자신에게도 물론 해당됐다. 허준 사장이 아니라 그냥 ‘허준님’이다.
“언론에서 ‘사장’이라고 쓰는 거야 사회적 통념상 어쩔 수 없지만, 회사에서 서로를 직급만으로 부르면 그 사람의 한 부분만 보고 대화하게 되는 셈이고, 그런 문화는 곧 수직적인, 다시 말해 위계 중심의 사고로 이어진다”는 게 허 사장의 생각. 그는 “수직적 관계는 조직원에게 피로감을 주고 이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며 “우리나라에 ‘야자 타임’이 있는 것도 그 폐해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각자 회사에서 하는 일은 결국 ‘롤 플레이(role play)’고, 조연 없는 주연이 없듯 각자 롤에서는 모두가 리더라는 얘기다.
“수직적 조직은 침묵을 강요하고, 침묵은 사고의 교류를 막아 성취 동기를 떨어뜨리죠. 이는 성과 감소 혹은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글로벌 마인드는 ‘수평’적 사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위험 감수하는 마음가짐
하지만 허 사장 또한 처음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1985년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을 당시 글로벌 기업은 한국인 유학생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국내 대기업들의 오퍼를 뿌리치고 글로벌 기업의 채용 설명회를 무수히 쫓아다닌 결과 글로벌 회사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를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회사의 중역으로 성장해가면서 1998년 외환위기 시절에는 아주 잠시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도 겪었지만 허 사장은 이를 도전정신으로 이겨냈다. 그는 자신이 글로벌 리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도전과 위험 감수(risk taking)”라고 했다. 90년대 중반 유명 외국계 의료기 회사의 국내 법인대표로 있을 때는 ‘사장’이라는 안정적 지위를 박차고 미국 본사로 들어가 제품 담당 마케팅 매니저를 자원했다.
“막상 가서 후회도 많이 했어요. 그곳엔 나이와 남성이라는 ‘한국적 특권’이 전혀 없었죠. 비서조차 같은 직원 대접을 했으니까요. 그때 ‘내가 정말 우수 인재인가’라고 끊임없이 자문(自問)하며 스스로 ‘발가벗은 아기’라고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그때의 선택 덕분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허 사장이 의료기 회사인 메드트로닉을 선택한 이유도 이 회사가 항상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가 됐지만 이 회사도 처음에는 작은 창고형 의료기기 수리점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의 경영철학 또한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메드트로닉의 미션(mission)으로 대표되는 경영철학은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가치라 생각했어요. 그 미션은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선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높이며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이어서 사실 큰 자긍심이 되기도 합니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허 사장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은 이렇다.
“도전하되, 그 위험 감수는 명확한 계산과 분석에 기반을 둬야겠죠. 그리고 지금의 성과보다 더 나은 가치를 쉼 없이 찾아나서는 겁니다. 이것은 비단 큰 회사만이 아니라, 개인 혹은 소규모 회사, 그리고 국가 전체에도 해당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에서 시작한다면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겁니다.”
메드트로닉은 연매출 18조 원 규모를 가진 세계 최대 의료기 생산 및 판매 회사로 제너럴일렉트릭(GE), 존슨앤드존슨 등 다른 부문을 겸한 기업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미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 중 시장가치 기준 60위(약 60억 달러·2013년 기준)에 올라 있다. △인공심박동기 △이식형 제세동기(부정맥 치료) △심혈관 스텐트 △척추고정술 관련 기기 △수술용 네비게이션 등 의료기기를 광범위하게 다루는 회사다. 제품 대부분이 중증환자의 생존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분야에 집중돼 있고, 이 중 많은 수를 이 회사가 최초로 개발했다.
글로벌 마인드는 수평적 관계
허 사장은 1985년 25세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 후 여러 글로벌 회사의 중역을 거쳐 2004년 메드트로닉 아세안(ASEAN) 및 한국 대표를 맡았다. 2008년 한국을 비롯해 호주, 뉴질랜드, 아세안 국가를 아우르는 아태지역 총괄사장 자리에 올랐으며, 2012년 아태지역이 세분화되기 전에는 일본과 인도까지 담당했다.
허 사장은 메드트로닉 역사상 한국인 최초 본사 최고경영위원회(Executive Committee) 일원이며, 2007년에는 이 회사 경영자에게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월린 리더십 어워드(Wallin Leadership Award)를 수상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명실상부 가치를 인정받고 우뚝 선 한국인이자 글로벌 리더인 셈이다.
글로벌화(化)에 대한 허 사장의 생각은 ‘사장님’이란 호칭에 대한 부정적 태도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기업대표에게 의례적으로 붙는 이 호칭에 대해 그는 강한 의문을 표한다.
“내가 회사에서는 ‘사장’이지만, 그건 내 삶의 한 부분일 뿐이죠. 사실 직장에서의 내 구실 외에 나에겐 가족의 일원, 혹은 누군가의 친구인 ‘자연인 허준’이 훨씬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2004년 메드트로닉 코리아 대표로 처음 부임한 그는 직원 간 호칭부터 정리했다. 직급을 부르지 않고 이름에 ‘님’을 붙이도록 통일한 것. 이는 사장인 자신에게도 물론 해당됐다. 허준 사장이 아니라 그냥 ‘허준님’이다.
“언론에서 ‘사장’이라고 쓰는 거야 사회적 통념상 어쩔 수 없지만, 회사에서 서로를 직급만으로 부르면 그 사람의 한 부분만 보고 대화하게 되는 셈이고, 그런 문화는 곧 수직적인, 다시 말해 위계 중심의 사고로 이어진다”는 게 허 사장의 생각. 그는 “수직적 관계는 조직원에게 피로감을 주고 이는 생산성 저하로 이어진다”며 “우리나라에 ‘야자 타임’이 있는 것도 그 폐해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각자 회사에서 하는 일은 결국 ‘롤 플레이(role play)’고, 조연 없는 주연이 없듯 각자 롤에서는 모두가 리더라는 얘기다.
“수직적 조직은 침묵을 강요하고, 침묵은 사고의 교류를 막아 성취 동기를 떨어뜨리죠. 이는 성과 감소 혹은 어느 순간 ‘뜻하지 않은 폭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글로벌 마인드는 ‘수평’적 사고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2012년 6월 베트남에서 진행된 메드트로닉 아세안 시무식(왼쪽). 2013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최우수 직원에게 시상하는 허준 사장.
하지만 허 사장 또한 처음부터 ‘글로벌 마인드’를 가졌던 것은 아니다. 1985년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을 당시 글로벌 기업은 한국인 유학생에게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국내 대기업들의 오퍼를 뿌리치고 글로벌 기업의 채용 설명회를 무수히 쫓아다닌 결과 글로벌 회사에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이를 “도전과 응전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회사의 중역으로 성장해가면서 1998년 외환위기 시절에는 아주 잠시 ‘실업자’로 전락할 위기도 겪었지만 허 사장은 이를 도전정신으로 이겨냈다. 그는 자신이 글로벌 리더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가 “도전과 위험 감수(risk taking)”라고 했다. 90년대 중반 유명 외국계 의료기 회사의 국내 법인대표로 있을 때는 ‘사장’이라는 안정적 지위를 박차고 미국 본사로 들어가 제품 담당 마케팅 매니저를 자원했다.
“막상 가서 후회도 많이 했어요. 그곳엔 나이와 남성이라는 ‘한국적 특권’이 전혀 없었죠. 비서조차 같은 직원 대접을 했으니까요. 그때 ‘내가 정말 우수 인재인가’라고 끊임없이 자문(自問)하며 스스로 ‘발가벗은 아기’라고 생각하면서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그때의 선택 덕분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허 사장이 의료기 회사인 메드트로닉을 선택한 이유도 이 회사가 항상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세계 최고가 됐지만 이 회사도 처음에는 작은 창고형 의료기기 수리점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의 경영철학 또한 그의 마음에 쏙 들었다.
“메드트로닉의 미션(mission)으로 대표되는 경영철학은 누가 봐도 공감할 수 있는 가치라 생각했어요. 그 미션은 바로 우리가 하는 일이 어디선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고 삶의 질을 높이며 생명을 연장한다는 것이어서 사실 큰 자긍심이 되기도 합니다.”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허 사장은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그가 말하는 기업가 정신은 이렇다.
“도전하되, 그 위험 감수는 명확한 계산과 분석에 기반을 둬야겠죠. 그리고 지금의 성과보다 더 나은 가치를 쉼 없이 찾아나서는 겁니다. 이것은 비단 큰 회사만이 아니라, 개인 혹은 소규모 회사, 그리고 국가 전체에도 해당합니다. 이런 마음가짐에서 시작한다면 결과는 분명히 다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