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지네이블’ 칵테일.
‘슈렉’은 상업적 성공과 함께 200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애니메이션 부분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후 ‘슈렉 2’(2004), ‘슈렉 3’(2007), ‘슈렉 포에버’(2010) 등이 연속으로 제작, 상영됐다. 슈렉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슈렉 3’은 크리스 밀러 감독이 만들었으며 마이크 마이어스, 캐머런 디아즈, 에디 머피, 안토니오 반데라스 등 인기 배우들이 캐릭터 목소리를 맡았다.
‘겁나 먼 왕국(Far Far Away)’의 슈렉은 중병에 걸린 해럴드 왕의 직무를 대행하고 있다. 피오나 공주는 이런 그를 곁에서 정성껏 돌보고, 당나귀 동키와 장화 신은 고양이도 슈렉을 보좌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슈렉은 왕으로서의 업무를 구속으로만 여긴다. 그의 바람은 오로지 피오나와 함께 정든 숲으로 돌아가 둘만의 달콤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복숭아 슈냅스+오렌지주스
이윽고 해럴드 왕이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무렵, 그는 슈렉에게 그렇게 왕이 하기 싫다면 다음 왕위 계승자인 조카 아서를 찾으라고 말한다. 왕위를 피하려는 일념에 슈렉은 동키, 장화 신은 고양이와 함께 배를 타고 아서를 찾는 머나먼 여정에 나선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16세 된 아서를 찾아 ‘겁나 먼 왕국’으로 되돌아온다.
한편 슈렉의 앙숙인 차밍 왕자는 그동안 후크 선장 등 동화 속 악당들을 자기 편으로 규합해 ‘겁나 먼 왕국’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대대적인 공격을 시작한다. 왕국에 남아 있던 피오나 등 다섯 공주(백설공주,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라푼젤)와 릴리안 왕비는 힘을 합쳐 차밍 왕자에 맞서나 역부족이다. 이때 ‘겁나 먼 왕국’으로 돌아온 슈렉은 차밍 왕자에게 맞서지만 역부족으로 체포되고 만다. 차밍 왕자는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연극 공연장에서 슈렉을 처형할 계획을 세운다. 슈렉은 과연 절체절명 순간에서 벗어나 아서를 왕위에 앉히고 피오나 공주와 함께 숲 속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 ‘슈렉 3’ 포스터.
반면 두 번째 칵테일인 ‘퍼지네이블(Fuzzy Navel)’은 매우 인상 깊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칵테일은 차밍 왕자가 악당들을 규합하려고 독사과 선술집에 들어갔을 때 주문하면서 등장한다. 차밍 왕자는 선술집 안 모든 악당에게 이 술을 한 잔씩 돌리라고 말한다. 이어서 그의 손에 들린 매력적인 모습의 퍼지네이블 칵테일이 보인다. 퍼지네이블은 복숭아 슈냅스와 오렌지주스를 재료로 얼음을 섞어주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레시피의 칵테일이다. 냉장 보관한 오렌지주스를 사용하는 경우엔 굳이 얼음을 넣지 않아도 되며 특별한 장식도 필요하지 않다. 꼭 장식하고 싶다면 오렌지 조각을 이용하면 된다.
그런데 영화에선 칵테일 잔 위에 오렌지와 함께 체리로 보이는 과일까지 동원돼 비교적 화려하게 장식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마 감독 처지에서는 이왕 칵테일을 등장시킬 바에야 가급적 예쁜 과일로 장식해 화려하게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퍼지네이블에서 복숭아 슈냅스와 오렌지주스를 섞는 비율은 일대일을 기준으로, 개인 취향에 맞게 조절해 나가면 된다. 이때 상점에서 파는 일반 오렌지주스보다 갓 짠 신선한 오렌지주스를 사용하면 당연히 맛이 더 좋아진다.
그런데 퍼지네이블 재료 가운데 하나인 복숭아 슈냅스에서 슈냅스(schnapps)라는 용어에 관해서는 약간의 설명이 필요하다. 슈냅스는 원래 독일어에서 유래한 말로, 독일에선 강한 증류주의 일종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 용어가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리큐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즉 주정에다 과일 향이나 기타 향을 혼합한 것에 설탕을 가미한 술을 말하는 것이다. 미국 슈냅스에는 실로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 중 복숭아 향을 넣은 것을 복숭아 슈냅스라 부른다. 다른 말로 복숭아 리큐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술보다는 음료 쪽 이미지
영화 ‘우주전쟁’ 포스터(왼쪽)와 복숭아 슈냅스.
어쨌든 퍼지네이블 칵테일의 독특한 이름은 재료가 되는 두 가지 과일인 복숭아와 오렌지에서 유래했다. 먼저 ‘보풀 또는 솜털 같은’이라는 뜻의 영어 퍼지(fuzzy)는 복숭아 껍질의 특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배꼽이라는 뜻의 네이블(navel)은 배꼽 모양 꼭지를 가진 네이블오렌지 모습에서 따왔다.
퍼지네이블은 1980년대 미국 사회를 휩쓴 새로운 혼합 음료의 유행 속에서 등장한 칵테일이다. 당시 젊은이를 중심으로 형식에 그리 얽매이지 않는 부담 없는 칵테일이 붐이었다. 퍼지네이블은 이 유행의 대표 주자 중 하나로 소개된 칵테일이며, 재료 성격상 가볍게 즐길 수 있어 한낮 파티 석상에서도 많이 음용된다.
퍼지네이블은 한때 인기를 반영하듯 여러 변형 칵테일이 등장했다. 그중 가장 알려진 칵테일은 퍼지네이블에 보드카를 넣은 것이다. 이 칵테일은 보드카 첨가에 따른 강한 이미지를 살려 솜털이 아닌 털투성이라는 의미로 헤어리네이블(Hairy Navel)이라고 부른다. 이 밖에도 퍼지네이블에 블루 퀴라소를 넣은 퍼지샤크(Fuzzy Shark)를 비롯해 퍼지스크루(Fuzzy Screw), 퍼지덕(Fuzzy Duck), 퍼지리타(Fuzzy Rita) 같은 다양한 변형 칵테일이 있는데, 이처럼 칵테일 이름에 퍼지라는 말이 들어간 경우 일반적으로 복숭아 슈냅스가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슈렉 3’에서 차밍 왕자를 통해 퍼지네이블 칵테일을 선보인 정확한 이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칵테일이지만 술보다 음료 쪽 이미지에 더 가까운 데다, 재미있는 이름 때문에라도 퍼지네이블은 이 훌륭한 애니메이션 작품의 한 배경을 장식할 만한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