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식당 비빔밥 상차림.
진주에 화려한 음식문화가 성행한 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그 중심에 꽃보다 고운 화반(花飯), 진주비빔밥이 있다. 1960년대 이후 전주비빔밥이 대세가 되면서 ‘넘버 원’ 명성을 내줬지만, 진주에는 여전히 비빔밥 명가들이 자리한다. 그러나 지금 진주비빔밥은 교방에서 한량이 먹던 화반과는 조금 다르다. 장터를 오가던 장사꾼을 위한 음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1927년 문을 연 ‘천황식당’은 근처 ‘제일식당’과 더불어 외식으로서의 진주비빔밥을 대표하는 곳이다. 창업 당시부터 사용한 오래된 간판, 6·25전쟁 이후 다시 지은 기와집과 빛바랜 탁자, 특히 세월을 흡수해 고운 빛이 감도는 파란색 의자에 앉으면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추억과 분위기로도 먹는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삶거나 데친 고사리, 무채, 숙주나물 같은 나물과 쏙대기(돌김) 무침이 밥알보다 조금 길게 잘려 있고 그 위를 붉은 육회와 ‘엿꼬장’이라 부르는 독특한 고추장이 물들인다. 밥은 국물 간이 약간 돼 있어 비비기 편하다.
잘게 자른 고명, 고추장과 밥이 한 몸처럼 섞이고 쉽게 넘어간다. 짠 김치와 깍두기는 건건한 맛을 돕는다. 육회비빔밥에 빠지지 않는 맑은 선짓국도 오래된 음식의 기품을 보여준다. 피를 한 번 걸러내 회색이 감도는 선지는 부드럽고, 피를 그대로 응고시킨 선지는 검고 거칠다. 심심하고 깊은 맛이 도는 경상도식 쇠고깃국은 선지와 한 몸처럼 어울린다.
‘천황식당’에서 비빔밥을 먹다 보면 경북 안동 헛제삿밥이 떠오른다. 제사 음식을 비벼먹는 문화는 비빔밥의 가장 강력한 기원이다. 경상도 출신인 필자도 어릴 때 제사 후 이런 음식을 자주 먹었다. 음식 맛을 모르던 소년에게 건건한 쇠고기뭇국은 맛없는 음식의 전형이었다. 세월의 인이 몸과 뇌리에 박혀 이 음식을 맛있게 먹는 다른 내가 만들어졌다.
1920년대 외식이 본격화할 무렵 비빔밥은 대표 외식 품목이었다. 당시 서울에도 비빔밥이 흔했는데 진주비빔밥이 특히 유명했다. 29년 12월 1일자 잡지 ‘별건곤’에는 진주 비봉산을 내세운 비봉산인이란 사람이 쓴 비빔밥에 관한 기사가 등장한다. 당시 진주비빔밥 예찬 기사에 등장한 비빔밥과 지금 ‘천황식당’ 비빔밥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하얀 쌀밥 위에 색을 조화시켜 나를 듯한 새파란 야채 옆에는 고사리나물 또 옆에는 노르스름한 숙주나물 이러한 방법으로 가지각색 나물을 둘러놓은 다음에 고기를 잘게 이겨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에 적당할 만큼 그 위에는 유리 조각 같은 황청포 서너 사슬을 놓은 다음 옆에 육회를 곱게 썰어놓고 입맛이 깩금한 고추장을 조금 얹습니다. 여기에 일어나는 향취는 사람의 코를 찌를 뿐 아니라 보기에 먹음직합니다. 값도 단돈 10전. 상하계급을 물론하고 쉽게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소담하고 비위에 맞는 비빔밥으로 길러진 진주 젊은이들은 미술의 재질이 많은 것입니다. 또한 의기의 열렬한 정신을 길러주는 것입니다.’(‘별건곤’ 기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