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마친 뒤 나서는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그는 이날 청와대의 만류에도 사퇴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양심 문제’라는 애매한 말을 남기고 보건복지부 장관직에서 사퇴한 진영 의원을 두고 말이 많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두 번이나 사의를 반려했지만 결국 그는 집을 나갔다. ‘친박(친박근혜)계 황태자’ 소리를 듣던 진 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항명으로 비치면서까지 사의를 고집한 이유는 뭘까.
초선 때부터 진 의원을 보좌한 A씨도 “사퇴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SMS)를 보냈지만 답변이 없다.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었겠지만, 나도 진 의원이 왜 그렇게 했는지 궁금하다”며 고개를 갸웃한다.
진 의원이 기자들에게 말한 사퇴 배경은 간단하다. 자신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과 연계하는 방안에 반대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진 의원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부위원장 시절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 방안을 발표했다가 가입자들이 줄줄이 탈퇴하는 현상을 보고 기초연금을 소득 수준에 연계해 차등 지급하는 안을 고집하다 물러났다는 관측도 있다.
청와대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대통령선거(대선) 공약과 인수위 안으로 국민연금 연계 방안을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다른 안을 고집하는 게 무책임하다는 주장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대선 공약 가운데 가장 민감한 현안을 다뤄야 할 주무장관이 기초연금법 개정과 국정감사 등을 앞두고 무책임하게 사퇴했다. 국민과 국회를 설득하고 취지를 설명해야 할 장관이, 그것도 두 번이나 사의를 반려했는데도 아무런 대꾸 없이 가출하듯 집을 나간 모양새를 연출했다. 취임 초부터 박 대통령은 인사문제로 곤욕을 치렀는데 이번 일도 또 인사문제로 비친다. 이 때문에 청와대에선 ‘기자 접촉을 피하고 함구하고 긴장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부글부글 끓는 청와대
또 다른 분석은 8월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과 최원용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등 청와대 2기 체제가 출범하면서 진 의원이 청와대의 높은 벽에 막혔기 때문에 물러났다는 것. 새누리당 한 재선의원은 이렇게 설명했다.
“현 정부가 강조한 책임장관제가 되려면 부처장관에게 전권을 줘야 하는데, 기초연금 방안은 사안의 중요성 때문에 청와대가 진두지휘하면서 주무장관 의견이 배제됐다고 들었다. 특히 청와대 2기 체제가 출범하면서 힘이 참모들에게로 쏠렸고, 진 장관은 배제된 채 수정안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그렇더라도 3선(選)의원이 자기 소신을 지키려고 대통령을 약속 안 지키는 사람으로 비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았나.”
청와대 참모들과의 마찰은 국무위원이라면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번 사퇴 파문은 진 의원 개인 스타일이 크게 작용해 생긴 일이라는 시각도 있다. 진 의원을 잘 아는 정부 고위관계자의 설명이다.
“진 장관은 2004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내 친박으로 통하다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는 ‘현역 의원의 캠프 참여는 부적절하다’는 논리로 선거운동을 돕지 않았다. 2010년에는 친이(친이명박)계 좌장인 이재오 의원 선거를 지원했고, 세종시 수정안에 찬성표를 던지면서 친박 의원들의 십자포화를 받았다. 친박 의원 사이에선 ‘진 의원은 상황이 어려울 때 자기희생이 부족하고 자기 스타일을 고집한다’는 비난이 많았다. 그런데 대선 전후 진 의원이 다시 부름을 받는 걸 보고 ‘대통령만 진 의원을 친박으로 여기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진 의원은 판사 출신이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합리적이며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다. 내가 볼 때 90%는 그렇다. 그러나 숨겨진 10%, 상황이 어려울 때는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성향이 작용하는데, 이번 사퇴 파문이 그렇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