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규모 6500억 원의 보험사 최고경영자(CEO) 마리아노는 매일 아침 120억 원짜리 저택에서 눈을 떠 내왕하는 주치의로부터 100만 원짜리 진료를 받고, 가끔 야구장을 찾아 연간 1억5000만 원짜리 스카이 박스(특별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람하며, 1년에 한두 번 165억 원짜리 자가용 요트를 타고 가족여행을 떠난다.
열두 살배기 소년 크리스토퍼는 휴양지 플로리다의 한 원룸모텔에서 부모, 여동생과 함께 산다. 토마토케첩 몇 방울을 떨어뜨린 삶은 국수 몇 가닥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그마저도 없어 굶기 일쑤다. 학교에 가지 않아 점심 급식을 못 먹는 주말에는 자선단체에서 나눠주는 인스턴트음식 패키지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모텔 옆 객실, 가족 6~7명과 한 방에서 생활하는 친구도 금요일마다 모텔을 찾는 자선센터 차량 앞에 줄을 선다. 지난해 11월 방영한 SBS TV 창사특집 대기획 ‘최후의 제국 1부 : 프롤로그, 최후의 경고’에 담긴, 지구 최고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지구의 또 다른 편에선 한 달 수천만 원짜리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푸는 산모 대신 일당 몇천 원을 받는 여성이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부잣집 신생아에게 엄마 젖을 빼앗긴 대리 수유모의 갓난아기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싸구려 분유로 배를 채운다. 그마저도 못 먹어 굶기 일쑤다.
주말 밤만 되면 중국 베이징 중심가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슈퍼카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새파란 젊은 남녀, 이른바 푸얼다이(富二代), 즉 재벌 2세쯤 되는 젊은이들이 친구의 새 차를 가볍게 밟아주며 신고식을 치른다. 중국 상하이 전문직 여성들은 부잣집 남편을 만나려고 몸단장을 하고 바느질을 배우며 비공개 맞선 시장에서 부호들의 ‘간택’을 기다린다. 급속한 시장경제화로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신흥 자본주의국가 중국의 현실은 미국보다 뻔뻔하고 노골적이며 신랄하다. 도대체 이 ‘고장 난 자본주의’의 무지막지한 질주 끝에는 어떤 종착역이 기다릴까.
2031년 인류 최후 생존자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올해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으로 꼽는 ‘설국열차’는 이 질문에 대한 묵시록적 해답이다. 새로운 빙하기를 맞은 지구.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이 멈추는 순간 절멸하는 열차에 올라탄다. 영원히 멈춰선 안 되는 열차의 꼬리칸 인간들은 바퀴벌레를 짓이겨 만든 단백질덩어리로 굶주림을 채우고, 머리칸 인간들은 초호화 식당칸에서 바이올린 연주 소리를 들으며 스테이크를 썬다. 그들은 수영장칸의 물에 몸을 담그고, 식물칸의 정원을 거닐며, 매일 클럽칸에서 술과 마약으로 흥청대는 파티를 연다. 2031년 인류 최후 생존자들이 탑승한 열차는 오늘의 세계를 그린 축도다.
지구는 왜 빙하기에 들어섰을까. 지구온난화가 극심해지자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세계 정상들은 대기 온도를 낮추려고 새롭게 개발한 약품을 지구 전역 상공에 살포한다. 이로 인해 2014년 지구는 새로운 빙하기에 들어섰고, 모든 생명체가 절멸했으며,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만 영원히 달려야 하는 열차에 탑승한다.
열차 출발 17년 후 엔진에 의지한 인류 최후의 사회는 ‘윌포드 인더스트리’라는 회사의 수장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계급사회가 됐다. 꼬리칸 인간들은 매일 군인들에게 인원점검을 받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차출돼 사라지는 아이들을 그저 지켜봐야 할 처지다. 극악한 생존 조건을 견디다 못한 꼬리칸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번스 분)는 반란을 도모하고 머리칸의 엔진룸까지 진격한다. 윌포드를 신격화하며 그를 대리하는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턴 분)의 방해와 저지에도 꼬리칸의 반란자들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마침내 감옥칸에 갇혔던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를 만나 머리칸까지 닫힌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얻는다. 도끼가 난무하고 피와 살이 튀는 살육전 속에서도 반란군은 검역칸, 주방칸, 정수(물공급)칸, 식물칸, 수족관칸, 교실칸, 사우나칸, 미용실칸, 수영장칸, 클럽칸을 지나 마침내 엔진룸이자 ‘열차의 신’ 윌포드가 머무는 칸에 당도한다.
할리우드 드림팀도 ‘설국열차’ 탑승
여기서 인류 최후 세계의 마지막 비밀이 드러난다. 아침마다 차출돼 사라지는 아이들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꼬리칸의 반란과 폭동,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의 힘 등 모든 수수께끼, 즉 악랄한 통제와 억압에도 인류 최후의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생존해갈 수 있었던 마지막 비밀이 풀리는 것이다. 꼬리칸 지도자 커티스가 대면한 진실은 끔찍하고 잔인하며 절망적이다. 하지만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 그 ‘판도라의 상자’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의 히어로 크리스 에번스와 소름끼치는 얼음공주 이미지를 가진 관록의 여배우 틸다 스윈턴, 현자로서 기품 있는 연기를 보여준 명배우 존 허트, ‘헬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옥타비아 스펜서, ‘빌리 엘리어트’의 히어로 제이미 벨,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모든 비밀을 간직한 윌포드로 등장하는 에드 해리스까지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드림팀’을 이뤄 탑승한 ‘설국열차’의 캐스팅은 화려하고, 앙상블은 훌륭하다. ‘괴물’에 이어 다시 한 번 부녀로 호흡을 맞춘 송강호와 고아성은 이들과 거침없이 대거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봉 감독의 ‘설국열차’는 매우 제한된 공간이지만, 반란군이 진격하는 기차 칸마다 서로 다른 액션과 정조, 미술, 화면구도, 에피소드를 배치해 놀라운 속도감과 박진감을 보여준다. 원작인 동명의 프랑스 만화(자크 로브·뱅자맹 르그랑 글/ 장마르크 로셰트 그림)는 참조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전혀 다른 작품이 됐다. 원작보다 훨씬 직선적이고, 비극적이며, 파워풀하다.
’설국열차’는 반란군이 열차 심장인 엔진룸을 향해 진격하듯, 새로운 계급사회라 할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에두를 것 없는 ‘돌직구’를 던지는 묵시록이다. 봉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관객이라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의 공간적, 시대적, 사회적 경계를 뛰어넘어, 한국 영화가 세계의 보편적 이슈를 정면에서 다국적 프로젝트로 다룬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데 대해선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
열두 살배기 소년 크리스토퍼는 휴양지 플로리다의 한 원룸모텔에서 부모, 여동생과 함께 산다. 토마토케첩 몇 방울을 떨어뜨린 삶은 국수 몇 가닥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그마저도 없어 굶기 일쑤다. 학교에 가지 않아 점심 급식을 못 먹는 주말에는 자선단체에서 나눠주는 인스턴트음식 패키지로 끼니를 해결해야 한다. 모텔 옆 객실, 가족 6~7명과 한 방에서 생활하는 친구도 금요일마다 모텔을 찾는 자선센터 차량 앞에 줄을 선다. 지난해 11월 방영한 SBS TV 창사특집 대기획 ‘최후의 제국 1부 : 프롤로그, 최후의 경고’에 담긴, 지구 최고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지구의 또 다른 편에선 한 달 수천만 원짜리 산후조리원에서 몸을 푸는 산모 대신 일당 몇천 원을 받는 여성이 갓난아기에게 젖을 물린다. 부잣집 신생아에게 엄마 젖을 빼앗긴 대리 수유모의 갓난아기는 성분을 알 수 없는 싸구려 분유로 배를 채운다. 그마저도 못 먹어 굶기 일쑤다.
주말 밤만 되면 중국 베이징 중심가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슈퍼카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스무 살이나 됐을까 싶은 새파란 젊은 남녀, 이른바 푸얼다이(富二代), 즉 재벌 2세쯤 되는 젊은이들이 친구의 새 차를 가볍게 밟아주며 신고식을 치른다. 중국 상하이 전문직 여성들은 부잣집 남편을 만나려고 몸단장을 하고 바느질을 배우며 비공개 맞선 시장에서 부호들의 ‘간택’을 기다린다. 급속한 시장경제화로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진 신흥 자본주의국가 중국의 현실은 미국보다 뻔뻔하고 노골적이며 신랄하다. 도대체 이 ‘고장 난 자본주의’의 무지막지한 질주 끝에는 어떤 종착역이 기다릴까.
2031년 인류 최후 생존자들
봉준호 감독의 신작이자 올해 한국 영화 최고 기대작으로 꼽는 ‘설국열차’는 이 질문에 대한 묵시록적 해답이다. 새로운 빙하기를 맞은 지구. 인류 최후의 생존자들이 멈추는 순간 절멸하는 열차에 올라탄다. 영원히 멈춰선 안 되는 열차의 꼬리칸 인간들은 바퀴벌레를 짓이겨 만든 단백질덩어리로 굶주림을 채우고, 머리칸 인간들은 초호화 식당칸에서 바이올린 연주 소리를 들으며 스테이크를 썬다. 그들은 수영장칸의 물에 몸을 담그고, 식물칸의 정원을 거닐며, 매일 클럽칸에서 술과 마약으로 흥청대는 파티를 연다. 2031년 인류 최후 생존자들이 탑승한 열차는 오늘의 세계를 그린 축도다.
지구는 왜 빙하기에 들어섰을까. 지구온난화가 극심해지자 환경단체들의 반대에도 세계 정상들은 대기 온도를 낮추려고 새롭게 개발한 약품을 지구 전역 상공에 살포한다. 이로 인해 2014년 지구는 새로운 빙하기에 들어섰고, 모든 생명체가 절멸했으며,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만 영원히 달려야 하는 열차에 탑승한다.
열차 출발 17년 후 엔진에 의지한 인류 최후의 사회는 ‘윌포드 인더스트리’라는 회사의 수장 윌포드(에드 해리스 분)가 엄격하게 통제하는 계급사회가 됐다. 꼬리칸 인간들은 매일 군인들에게 인원점검을 받고 이유를 알 수 없이 차출돼 사라지는 아이들을 그저 지켜봐야 할 처지다. 극악한 생존 조건을 견디다 못한 꼬리칸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번스 분)는 반란을 도모하고 머리칸의 엔진룸까지 진격한다. 윌포드를 신격화하며 그를 대리하는 메이슨 총리(틸다 스윈턴 분)의 방해와 저지에도 꼬리칸의 반란자들은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들은 마침내 감옥칸에 갇혔던 열차의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를 만나 머리칸까지 닫힌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얻는다. 도끼가 난무하고 피와 살이 튀는 살육전 속에서도 반란군은 검역칸, 주방칸, 정수(물공급)칸, 식물칸, 수족관칸, 교실칸, 사우나칸, 미용실칸, 수영장칸, 클럽칸을 지나 마침내 엔진룸이자 ‘열차의 신’ 윌포드가 머무는 칸에 당도한다.
할리우드 드림팀도 ‘설국열차’ 탑승
여기서 인류 최후 세계의 마지막 비밀이 드러난다. 아침마다 차출돼 사라지는 아이들과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꼬리칸의 반란과 폭동, 영원히 움직일 수 있는 엔진의 힘 등 모든 수수께끼, 즉 악랄한 통제와 억압에도 인류 최후의 사회가 질서를 유지하고 생존해갈 수 있었던 마지막 비밀이 풀리는 것이다. 꼬리칸 지도자 커티스가 대면한 진실은 끔찍하고 잔인하며 절망적이다. 하지만 보안설계자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을 발견한다. 그 ‘판도라의 상자’는 과연 어디서 왔을까.
‘캡틴 아메리카’와 ‘어벤져스’의 히어로 크리스 에번스와 소름끼치는 얼음공주 이미지를 가진 관록의 여배우 틸다 스윈턴, 현자로서 기품 있는 연기를 보여준 명배우 존 허트, ‘헬프’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옥타비아 스펜서, ‘빌리 엘리어트’의 히어로 제이미 벨, 그리고 마지막에서야 모든 비밀을 간직한 윌포드로 등장하는 에드 해리스까지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드림팀’을 이뤄 탑승한 ‘설국열차’의 캐스팅은 화려하고, 앙상블은 훌륭하다. ‘괴물’에 이어 다시 한 번 부녀로 호흡을 맞춘 송강호와 고아성은 이들과 거침없이 대거리를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봉 감독의 ‘설국열차’는 매우 제한된 공간이지만, 반란군이 진격하는 기차 칸마다 서로 다른 액션과 정조, 미술, 화면구도, 에피소드를 배치해 놀라운 속도감과 박진감을 보여준다. 원작인 동명의 프랑스 만화(자크 로브·뱅자맹 르그랑 글/ 장마르크 로셰트 그림)는 참조에 불과하다고 할 만큼 전혀 다른 작품이 됐다. 원작보다 훨씬 직선적이고, 비극적이며, 파워풀하다.
’설국열차’는 반란군이 열차 심장인 엔진룸을 향해 진격하듯, 새로운 계급사회라 할 수 있는 현대 자본주의에 에두를 것 없는 ‘돌직구’를 던지는 묵시록이다. 봉 감독의 최고작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관객이라도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의 공간적, 시대적, 사회적 경계를 뛰어넘어, 한국 영화가 세계의 보편적 이슈를 정면에서 다국적 프로젝트로 다룬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데 대해선 이견을 달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