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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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베이비’ 효과 호들갑 왜?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 탄생 영국 들썩…유럽 경기불황 깊은 그늘 반증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raphy@donga.com

    입력2013-08-05 13: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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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영국 왕실의 새로운 ‘로열 베이비’ 탄생에 전 세계가 들썩였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이 입원했던 런던 세인트메리 병원 앞에는 폭염에도 3주 넘도록 전 세계 취재진과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스카이뉴스, BBC, CNN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병원 정문 부근에서 일어나는 일을 생중계하는 웹캠이 설치되기도 했다.

    유럽 재정위기, 중동 유혈사태, 열차 사고 같은 어두운 뉴스 속에서 로열 베이비의 탄생은 모처럼 ‘굿 뉴스’로 받아들여졌다. 여성들은 미들턴 왕세손빈이 분만 하루 만에 부종도 하나 없이 날씬한 몸매를 되찾은 점을 부러워했다. 또한 미들턴 왕세손빈의 자연분만법과 모유 수유부터 포대기와 카시트 같은 왕실 육아용품까지 시시콜콜하게 기사화됐다. 대중은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현대판 동화 속 가족의 일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즐거움을 맛보려 했다.

    로열 베이비에 대한 과도한 열기에 반감도 생겨났다. 영국의 대표적인 진보성향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는 영국에서 매일 태어나는 아이 200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그가 영국 아이 3명 중 1명이 겪는 가난을 알까”라고 물었다.

    ‘베이비노믹스’가 영국 구할까

    로열 베이비 관련 뉴스가 일반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로열 베이비가 4000억 원 이상의 경제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면서부터다. 이른바 ‘베이비노믹스(Babynomics)’가 영국 경제를 구한다는 시나리오다.



    영국 소비연구센터(CRR)는 6월 로열 베이비의 탄생으로 2억4300만 파운드(약 4146억 원)의 소비 증가 효과가 나타나리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는 2011년 윌리엄 왕세손 부부 결혼식 때의 1억6300만 파운드(약 2781억 원)를 뛰어넘는 소비 유발 기대효과다.

    경제분석업체 IHS 글로벌 인사이트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하워드 아처도 “로열 베이비 탄생에 따른 ‘기분 좋은 효과’가 경기침체에서 탈출하는 카타르시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그 효과는 압도적으로 긍정적”이라고 거들었다.

    실제로 미국 ABC 뉴스는 로열 베이비 탄생 이후 서구국가에 일시적으로 베이비붐이 일어날 조짐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출산율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8%나 하락했으며, 올해 처음으로 하락세가 멈췄다. 영국, 호주, 캐나다, 아일랜드 등에서는 최근 출산율이 크게 늘었다.

    그러나 로열 베이비의 경제 효과에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그만큼 유럽 경기불황의 그늘이 깊다는 뜻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요란하게 거론되는 ‘로열 베이비 효과’는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보잘것없는 규모”라고 평가절하했다. 이는 최근 3개월간 영국 내 소매 판매 규모 870억 파운드의 0.3%에도 못 미치며, 영국 국내총생산(GDP)을 분기당 0.06% 늘릴 정도라는 것. FT는 “새로 태어난 왕손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아기인 건 맞지만, 아기한테 경제 회복을 기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영국 왕실은 평균 80%대 지지도를 유지해왔으나, 1990년대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이혼한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그러다 97년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동정여론에 힘입어 인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2011년 4월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의 ‘로열 웨딩’에 관람 인파 100만 명이 몰렸고, 전 세계에서 20억 명이 ‘세기의 결혼식’을 TV로 지켜봤다. 이어 201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60주년, 2013년 로열 베이비 탄생이 이어지면서 왕실은 다시 대중에게 다가서기 시작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브랜드 파이낸스는 영국 왕실의 브랜드 가치를 1800만 파운드(약 307억 원)라고 평가했다. 원래 1700만 파운드(약 290억 원)였던 것이 ‘케임브리지 조지 왕자 전하’의 탄생으로 하룻밤 사이 100만 파운드(약 17억 원)가 뛰어올랐다.

    ‘선데이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영국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 결과 “조지 알렉산더 루이스가 영국 왕이 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74%로 군주제 유지에 호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지가 왕이 되지 못하리라는 응답은 9%에 그쳤다. 이는 2011년 조사에서 50년 안에 영국이 공화제로 바뀔 것이라는 의견이 25%를 차지했던 것보다 군주제 호감도가 상승한 수치다.

    ‘로열 베이비’ 효과 호들갑 왜?
    영국 왕 등극까지 수많은 변수

    그러나 이번에 태어난 조지가 실제 영국 국왕이 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 64세인 찰스 왕세자는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위 계승을 기다리고 있고, 윌리엄 왕세손이 50대 후반 즈음에 왕위에 오를 경우 로열 베이비는 2070년쯤에나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61년간 권좌를 지켜온 엘리자베스 2세(87) 여왕이 양위를 해야 한다는 여론도 나온다. 시기는 전임 빅토리아 여왕의 최장수 재임기록(63년)을 뛰어넘는 90세가 되는 해로 예상된다. 올해 들어 네덜란드 베아트릭스(75) 여왕, 벨기에 앨버트(79) 국왕이 양위를 선언했고, 베네딕트 16세(85) 교황이 사임한 것도 이런 여론을 부추긴다.

    또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수당 정부가 틈만 나면 재정 긴축, 복지 축소를 부르짖는 상황에서 해마다 늘어나는 왕실 지원 예산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다. 영국 왕실이 국가예산에서 지원받는 운영비는 지난해 3100만 파운드(530억 원)에서 올해 3610만 파운드(617억 원)로 늘었다. 국민세금에서 나오는 왕실 운영 예산이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응답은 43%,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40%로 상반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선다.

    ‘워싱턴포스트’는 영국 왕실의 재정 악화로 ‘케임브리지 조지 왕자 전하’의 옥좌 예약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임을 예고했다. 이 신문은 “네덜란드 왕실의 가족은 시내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며 “영국 왕실 운영 비용이 계속 늘어나고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는다면 로열 베이비가 왕이 될 즈음에는 네덜란드는 물론 노르웨이, 스페인 왕실보다 못한 대우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조지가 스코틀랜드 왕이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내년 9월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예스 스코틀랜드’의 데니스 카나반 의장은 7월 28일 “국가원수직을 세습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이고 시대착오적”이라면서 ‘국왕 조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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