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한가로운 몽골 여행에서 삶의 에너지를 충전했다.
“요즘 애들 다 그렇지.” 입사 초, 내 뒤에서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고작 수습 딱지를 막 뗐을 때, 아니 어쩌면 수습 때부터일지도 모른다. ‘나 이 회사에 왜 들어왔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그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뒤숭숭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휘발되지 못한 기체처럼, 얼었다 녹았는데 다시 냉동실로 들어가게 된 먹다 만 떡조각처럼 부서 내에서 자리 잡지 못하고 미끄덩거렸다.
특히 상사와의 심각한 불화로(이 글을 그가 보지 않길 바란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장이 3명이었다는 사실) 108배 명상까지 도전했던 어느 날 ‘차라리’ 놀게 됐다. 그 무렵 숨을 쉬려면 재미있는 것을 찾아야 했는데, 그렇게 두리번거리던 중 간단한 기타 코드만으로 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아마추어 뮤직증폭’ 수업을 듣게 됐다. 물론 어마어마한 건 아니었다. 기타를 잡고 간단한 코드를 익힌 뒤 징~ 한 번 긁고, 내 속에 자리한 너무 많은 나를 하나씩 꺼내면 됐다.
싱거운 애호박 같은 놀이
시에 멜로디를 입히거나, 전봇대에 붙은 광고 문구에 멜로디를 덧붙이는 훈련도 거쳤다. 중간에 만든 나의 가작 제목은 ‘매주 수요일은 대중교통 이용의 날’이었다. 회사생활 부적응에도 모자라 3년이나 사귀던 친구와도 헤어졌다. 내 음악은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부장 쏭’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들이닥치는 피로와 인고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논다는 것이 그토록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직 나를 재료로 한 탄생의 희열. 이는 내게 불로초도 주지 못할 정력을, 그리고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전까지 내게 놀이는 의무적인 것, 방탕한 것을 의미했다. 하얀 재가 될 때까지 밤을 새우며 ‘흥청망청’이라는 수식어에 부합하도록 몸을 흐느적거려야 할 것 같은 느낌. 하지만 밑바닥 에너지까지 쏟아붓는 유흥은 내 인생에서 20대 초반에 잠깐 빛났을 뿐이다.
그 뒤 잠시 멈춰 있었다. 하지만 놀이가 그토록 간지러운 것임을 서툰 연주를 통해 깨달았다. 심장 한쪽이 간질간질하고 자꾸자꾸 더하고 싶어졌다. 잘 살기 위한 놀이는 소박한 것과 닮아 있었다. 싱거운 애호박된장국처럼, 담백한 가지무침처럼 자주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고유한 질감을 간직한 것 말이다. 일상의 놀이란 그만큼 강인하다.
물론 그런 놀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창조다. 사회생활 부적응을 곡조로 창조했듯(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다. 나는 조용필도, 지드래곤도 아니다), 나는 ‘적응 이후’ 직장생활에서도 새로운 놀이를 찾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즐길 것을 잉태한다. 청취자 사연을 받아 매거진 작업을 해보거나, 직접 디자인한 프로그램 머그컵을 만들어보거나, 밑도 끝도 없이 전국투어 기획을 해보거나, 월간 ‘라디오국 찌라시’를 발행(이것은 비밀리에 진행 중인 예정 프로젝트다)해보는 식이다. 우리의 이상한 습관이나 잔재주도 놀이의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여기에 한 줌의 부지런함과 한 줌의 영감만 더하면 된다.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너무 거창하지 않느냐고? 재탄생이 아니라 재발견 역시 새로운 만남이란 점에서 만들기 놀이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재발견에 대해 얘기해보려 한다. 얼마 전 다녀온 몽골 여행에서의 일이다. 동행한 친구에게 몽골 지인이 있어 유목민이 사는 게르부터 울란바토르의 물 좋은 클럽까지 몽골의 낮과 밤을 제대로 즐겼다. 백미는 게르 생활이었다. 2박3일간 지인 친척집인 하르허링 초원의 게르에서 묵었다. 그러다 이튿날 말 젖을 먹고 이방인답게 설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1 뮤직증폭 마지막 수업과제로 남긴 곡의 제목은 ‘인 마이 메모리’로, 이별의 아픔을 담았다. 2 바로 저 몽골 초원 어딘가에 나의 흔적이 있다. 3 사운드 강의를 듣기도 했다. 그냥 재미로.
그곳엔 화장실이 없다. 즐겁게 공놀이하는 그들을 두고 나는 급하게 엉덩이를 숨길 수 있는 곳을 찾아 나섰다. 언덕이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작은 골을 찾아 아픈 배를 쥐었다. 한가롭게 튀어 오르는 공의 포물선을 보며 쪼그려 앉은 나는 비극적인 운명을 생각했다. 웬만한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고통을. 주위에 있는 소와 염소, 양이 나를 지긋이 쳐다봤다.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까놓고’ 뒷일을 해결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다.
그 무수한 눈앞에서 왠지 모를 굴욕감을 느끼던 차, 배가 가벼워짐에 따라 굴욕감은 자유로움으로 변했다. 이는 농담이 아니다. 무한의 자연 앞에서 엉덩이를 내보이는 천연덕스러움이 나를 편하게 만들었다. 레버만 내리면 내가 뭘 뱉어냈는지 확인할 길 없을 정도로 깨끗해지는 변기가 아니라, 내가 뱉은 것을 올곧게 두 눈으로 확인하며 깨닫는 자아 증명. 너무 거창한가. 하지만 그것은 분명 나를 재료로 한 새로운 뭔가의 출현이었다. 자연에 안겨 비로소 드러낸 말간 얼굴의 발견,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다 희미하게 사라져버린 나 자신과의 조우(아니, 그저 더러운 쪽으로만 생각지 마시고요). 정말 시원~하게 초원에서 낳은 것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요즘은 월요일마다 인물 소묘를 배우러 다닌다. 우리 집 고양이나 가족을 그리고 싶어서다. 계속 꿈꿔왔던 수영강사 자격증을 따려고 운동도 한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느냐 싶을 것이다. ‘잘 놀면 잘 산다’는 TV 프로그램 제목 같은 이 말이 누군가에겐 자기계발의 저주처럼 무겁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빈약한 놀이문화도 반짝, 삶의 스위치를 올리는 근력임을 수줍게 말해본다.
종이로 비행기라도 접어 날려보자. 스타일이 구리다고 치워놓았던 긴바지를 꺼내 반으로 싹둑 잘라보자. 당신 손끝과 명랑한 직감은 아이폰보다 더 좋은 놀이도구임을 잊지 말자.
“샤워하면서 노래하라. 라디오에 맞춰 춤을 춰라. 친구에게 시를 써 보내라. 아주 한심한 시라도 괜찮다. 예술할 땐 최선을 다하라. 엄청난 보상이 돌아올 것이다.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 않았는가.”
커트 보니것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래, 바로 이 말이 하고 싶었다.
추천 |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 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