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를 길러 연매출 2억 원을 올리고 있는 경기 남양주시 ‘스머프 곤충나라’ 김진일 대표.
굼벵이 길러 연매출 2억 원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에 사는 김진일 씨도 곤충을 길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그의 주수입원은 흔히 ‘굼벵이’라고 부르는 흰점박이꽃무지 유충. 지난해 약용으로 약 40만 마리를 팔았다. 연매출 2억 원대다. 경기 용인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다 2008년 귀농한 그는 “아내, 조카와 함께 농장을 운영한다. 곤충의 경우 한 번 먹이를 주면 보름도 가고 한 달도 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고 했다.
최근 벌레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주목받고 있다. 개인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와 정부까지 곤충산업에 관심을 쏟는다. 먹을거리나 약물로 활용할 수 있는 식·의약·사료용 곤충, 곡식에 열매를 맺게 하는 화분매개곤충, 해충을 퇴치하는 천적곤충 등을 산업화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5월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곤충을 미래 식량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지목한 보고서를 펴내는 등 해외에서도 곤충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태다. 최영철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농업연구관은 “현재 지구상에는 곤충이 대략 130만 종 존재한다. 이 중 인간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 1만5000여 종”이라며 “이들을 활용한 곤충산업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997년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곤충연구소를 열고 곤충산업화를 시작한 경북 예천군은 화분매개곤충 분야에서 앞서간다. 과수원이 많은 지역 특성에 맞게 98년 사과와 배를 수정하는 ‘머리뿔가위벌’을 농가에 공급한 데 이어 2004년에는 오이, 수박 등 특수작물 수정벌인 호박벌을 생산 및 공급했다. 최근에는 농업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연구실과 함께 꿀 수집 능력이 탁월한 꿀벌 교배종을 개발해 화제가 됐다. 김덕연 예천군 곤충연구소 계장은 “이번에 개발한 품종은 일반 농가의 우량 꿀벌 봉군에 비해 꿀 수집 능력이 31% 이상 향상되고 벌통당 일벌 수가 45% 많다. 전국 농가에 보급하면 연간 1000억 원의 소득 증대가 기대된다”며 “2009년부터 우수 여왕벌을 개발하려고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투자한 끝에 얻은 결과”라고 소개했다. 예천군은 이 품종을 일단 전국 양봉선도 농가에 시범보급한 뒤 2015년께 일선 농가에 보급할 계획이다.
정부 지원도 시작됐다. 지난해 정부는 곤충산업 활성화를 위해 전국에 3개의 곤충자원산업화지원센터(곤충센터)를 짓기로 했다. 이 중 화분매개곤충 특화센터를 예천군에 건립한다. 올가을 공사를 시작하고, 연구개발에 매년 50억 원씩 3년간 150억 원을 투입할 예정. 국비에서 절반을 지원한다. 전문가들은 최근 환경오염과 농약 사용량 증가로 꽃가루를 매개하는 곤충이 감소하면서 농가에 타격을 준다고 말한다. 관련 분야 연구가 필요한 이유다.
해충 방제 천적곤충 생산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라바와 함께하는 3D 곤충 체험전’ 방문객들이 각종 곤충이 실제처럼 움직이는 입체 영상을 감상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인 프로스트 앤드 설리번은 북미와 서유럽 지역의 ‘바이오 농약’ 시장 규모가 2015년 10억 달러(약 1조1400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농업 선진국들도 관련 분야에 관심을 쏟는다. 최영철 농업연구관은 “네덜란드는 1991년부터 10년간 ‘작물보호 장기계획’을 수립해 천적곤충 사용을 장려하면서 친환경농산물 생산과 수출량이 급증해 세계적인 농산물 수출 강국이 됐다”며 “해충방제 천적곤충 생산을 상업화한 네덜란드 코퍼트사는 현재 이 분야 세계 1위 기업으로 미국, 일본, 캐나다 등에 천적곤충을 수출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도 천적곤충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친환경농업 연구 및 천적곤충 생산 등을 하는 ㈜오상킨섹트의 이준석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수입 허가를 받은 해외 천적곤충은 19종”이라면서 “지난 5년간 천적곤충 통관 건수는 2059회이고, 2010년 이후 점차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외국산 수입 곤충류를 점진적으로 대체할 자생 천적곤충 발굴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정부의 곤충센터 공모에서 천적곤충연구 분야에 당선된 경기도는 2014년까지 관련 연구 및 곤충 생산을 위한 센터를 건립하고, 토종 천적곤충 개발에 앞장설 방침을 세웠다.
꽃가루 수정의 80%를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진 꿀벌(왼쪽). 붉은색 칠레이리응애가 작물에 피해를 주는 잎응애를 잡아먹는 모습.
정부는 세계 곤충산업시장 규모가 2007년 11조 원에서 2020년에는 38조 원으로 3배 넘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급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는 식품 분야다. 정철의 안동대 생명자원과학과 교수는 “말린 애벌레 100g에는 단백질 53g, 지방 15g, 탄수화물 17g이 들어 있다. 열량도 430kcal나 된다. 고품질 미네랄과 비타민도 함유해 같은 양의 쇠고기나 돼지고기에 비해 영양가도 높다”고 했다. 곤충이 가축보다 지구 환경에 도움이 되는 식량자원이라는 연구 결과도 계속 나온다. 정 교수는 “곤충은 기르는 과정도 친환경적이다. 소, 돼지 등 가축을 사육하는 것보다 이산화탄소나 암모니아가스 배출량이 훨씬 적다. 병해충을 막으려고 약품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고 밝혔다.
최근 네덜란드 바헤닝언대 연구팀은 곤충 1kg을 생산할 때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동량의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생산할 때와 비교해 훨씬 적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돼지 한 마리는 밀웜보다 10~100배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네덜란드는 2010년부터 50만 유로를 들여 스낵이나 대체 육류로서의 곤충제품을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경남이 식·의약용 곤충센터를 짓고 있다. 이곳에서는 곤충을 식품뿐 아니라 의약품에 사용하는 방안도 연구할 계획.
이미 프랑스에서는 곤충 100여 종에서 175가지 이상의 물질을 발견해 의약품으로 개발 중이며 호주, 일본에서도 관련 분야 연구가 활발하다. 전문가들은 한의학에서도 오래전부터 곤충을 약재로 활용했다고 말한다. ‘동의보감’에도 약용 곤충 95종이 등장한다. 최영철 농업연구관은 “곤충은 저마다 독특한 생존전략을 갖고 있다. 위험을 피하려고 특정 물질을 내뿜거나, 상처를 입으면 체내에서 화학물질을 만들어 침입하는 미생물에 대항한다. 이런 물질을 약품 개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곤충을 쓰레기 처리에 활용하는 환경정화산업은 물론 장수풍뎅이, 사슴벌레 등을 자연생태학습용과 애완용으로 판매하는 교육산업이 성장하고, 곤충을 테마로 한 축제와 체험전도 크게 늘고 있다. 이규성 농촌진흥청 농업생물부장은 “최근 곤충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곤충을 혐오하는 시각도 많다. 곤충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수반되면 농업, 식료품, 의약품 등 인간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곤충 분야 연구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