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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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파이 키우기’야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 생산성 향상 등 4가지 조건

  •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ododuk1@hri.co.kr

    입력2013-07-22 10: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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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보야, 문제는 ‘파이 키우기’야

    2월 2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금융연수원 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앞에서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 단체인 ‘알바연대’가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등 아르바이트생의 고충을 담은 엽서를 인수위에 전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용률 70%는 이제 박근혜 정부의 궁극적 목표이자 존재 이유가 돼버렸다. 어떻게든 신규 일자리 238만 개를 창출해 2017년 고용률 70%에 도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런데 목표치가 다소 과하다. 매년 48만 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데, 경기가 좋지 않으니 일자리를 늘릴 뾰족한 수가 없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다. 전일제 일자리 1개보다 시간제 일자리 2개를 만드는 게 더 쉽다는 뜻인데, 시간제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라는 인식 때문인지 ‘양질’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는 바람직한 방향인가. 실현 가능성은 있는가.

    정부가 말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란 고용이 안정되고 임금, 복리후생 등 근로조건이 정규직과 차별 없는 일자리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필요에 따라 풀타임이나 파트타임을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차별받지 않는 반듯한 일자리”라고 설명했으며,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전혀 차별받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라고 표현했다. 비정규직인 시간제 일자리가 정규직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곧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부당한 차별이 사라진다는 뜻이기에 어느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방향 맞지만 멀고 험한 길

    이제 엄마들은 차별 없이 직장에 다니면서도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고, 은퇴를 앞둔 베이비붐 세대는 점진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이며 인생 2모작을 설계할 수 있게 된다.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던 사람은 주3일 근무로 전환할 수 있고, 원한다면 다시 풀타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이렇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려고 정부는 12월 ‘시간제 근로 보호법’을 제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당장 시간제 일자리는 나쁜 일자리의 대명사다. 출혈경쟁에 시달리는 영세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주로 시간제 근로자를 고용하며, 시간제 일자리 종사자는 대부분 고령층, 여성, 저학력자 같은 취업 애로계층이다. 그래서 임금도 싸고 근로조건도 열악한 것이 현실이다.

    만약 시간제 근로 보호법이 제정된다면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음식점 주인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제부턴 4대 보험도 들어줘야 하고, 임금도 올려줘야 하며, 퇴직금과 유급휴가 측면에서도 주방장과 차별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능력이 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아르바이트생을 해고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아니면 기존의 나쁜 시간제 일자리를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해버릴지도 모른다. 매주 20시간 일하는 양질의 시간제 근로자 2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매주 40시간 일하는 무기 계약직 1명을 쓰는 것이 훨씬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2012년 시간당 임금이 정규직의 70%에도 못 미치는 시간제 근로자가 92만 명이고, 그중 도소매업이나 음식숙박업 종사자는 31만 명이다. 이들 31만 명의 시간당 임금을 정규직의 70% 수준까지 올려주는 데 대략 1조2000억 원이 필요하다. 1인당 추가비용 400만 원이 드는데, 과연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이 이를 감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현실에 정착하기 힘든 근본 이유는 한국 노동시장의 고질적 문제, 즉 정규직 노동시장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분단구조 심화 때문이다. 이러한 분단구조는 기업과 정규직 근로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형성된 것이며, 그래서 매우 견고하다. 기업의 경우 경쟁 심화와 정규직의 고용·임금 경직성에 대응해 핵심 업무는 정규직을, 비(非)핵심업무는 비정규직을 사용하는 관행이 확산돼왔다. 정규직 근로자의 경우 강력한 노동조합(노조)을 기반으로 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을 쟁취했지만,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는 악화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기업과 정규직 근로자의 이해관계를 바꿔야만 노동시장의 분단구조를 깨뜨릴 수 있으며, 그래야만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현실에서 자리 잡을 수 있다.

    바보야, 문제는 ‘파이 키우기’야
    노사정 대타협 전제돼야

    바보야, 문제는 ‘파이 키우기’야
    나쁜 시간제 일자리가 아닌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생산성 향상이 전제돼야 한다. 생산성 향상으로 파이를 키워야만 기업도 성장하고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도 올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산성 향상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시간제 근로 보호법이 제정될 경우, 비용 상승을 우려한 민간 기업들이 시간제 일자리를 기피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표방하는 현 정부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어떤 대책을 내놨는지 따져볼 때다.

    노사정 대타협도 필요조건이다. 근로자와 기업 모두 한 발씩 양보해야 하며, 정부 지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제 일자리 창출로 고용률을 끌어올린 대표적인 나라가 네덜란드인데, 그 출발점이 노사정 대타협의 산물인 바세나르 협정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근로자는 임금 동결과 수출경쟁력 향상에 협조했고, 기업은 시간제 근로자의 고용 안정을 보장했으며, 정부는 직업훈련 등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이를 뒷받침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전제돼야만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가능하다.

    또 하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장시간 근로 개선대책이 병행돼야 한다. 정부와 노사정위원회는 이미 남성 중심의 장시간 근로 체제를 극복하려고 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도입, 교대제 개편 등이 대표적이며, 넓은 의미에서 대체휴일제도 포함된다. 장시간 근로 개선대책이 성공해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때 가급적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로 채울 수 있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예를 들어, 교대제 개편으로 정규직 100명을 늘릴 수 있다면, 그 대신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200개 늘리는 방안도 고민해보자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에 적합한 새로운 직무형태를 전 업종에서 개발해야 한다. 여성을 위한 현재의 일·육아 양립형 일자리뿐 아니라, 학생을 위한 일·학업 양립형, 남성을 위한 장시간 직무 분할형, 베이비붐 세대를 위한 사회참여형, 전문직을 위한 핵심 업무형 시간제 일자리가 골고루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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