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드림 현실은 냉혹
그의 발언에 대해 김형덕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 소장은 “탈북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김 소장 역시 1994년 북한을 탈출해 중국, 홍콩, 베트남 등지를 떠돌다 천신만고 끝에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다. 96년 그 역시 남한을 탈출하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기에 탈북자들의 재입북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탈남을 결심한 손 대표가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더군요.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대한민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채 살았다면 재입북을 꿈꿨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손 대표와의 길고 긴 통화 이후 탈북자 출신의 지인들에게도 물어봤다고 한다.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있느냐는 그의 질문에 지인들 대답은 모두 ‘예스(Yes)’였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북한이 탈북 후 재입북한 사람들을 ‘남한 실상을 알리는’ 선전용으로 이용한 사례만도 10여 차례가 넘는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수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100여 명은 족히 넘으리라는 게 김 소장의 추론이다.
“과거 많은 한국 사람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들 중 미국에 정착해 잘 사는 사람은 제가 알기로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일단 언어가 다르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죠. 미국까지 건너가 막노동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미국에선 막노동도 비자가 있어야 할 수 있다고 하니, 결국 그마저도 못 하고 되돌아오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탈북자들도 마찬가지예요. 모두 자신의 삶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어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죠.”
김 소장은 스스로를 탈북자 중에서도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라고 했다. 그는 남한에 정착한 후 연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탈북자 최초로 국회의원 정책비서관으로 활동했다. 재학 당시 동아리에서 만난 여성과 결혼도 했다. 이후 대기업 기획팀을 거쳐 2008년 공인회계사가 된 부인과 함께 탈북자 최초로 2년간 미국 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김 소장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다른 탈북자들에 비해 남과 북이 탈북자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빨리 깨달은 것부터가 다행”이라고 털어놓았다. “북한에서 재입북자를 선전용으로 이용하는 것처럼 남한 역시 탈북자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뿐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다”는 것.
북한에서 연좌제 덫에 걸려 아무런 희망 없이 살아가던 김 소장에게 남한 사회로의 망명은 곧 기회와 자유를 의미했다. 하지만 막상 남한에 와보니 북한에서의 출신성분이 탈북자의 지위를 규정짓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연좌제로 작용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왔다고 하면 일자리 하나 얻기가 쉽지 않고, 그나마 일자리를 구해도 자본주의 사회의 조직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겉돌기 십상인 게 그들의 현실이었다는 것.
김 소장은 “북한에서 소위 잘나가던 사람은 남한에 와서도 여기저기 불러주는 곳도 많고 이런저런 기회를 잡기가 그나마 쉬웠지만 그렇지 않은 평범한 사람이나 출신성분이 좋지 않은 사람은 사회부적응자, 신용불량자가 되기 일쑤”라면서 “이런 이유로 남한에 넘어오면서 자신의 학력과 이력, 배경 등을 위조하는 사례도 공공연히 발생한다”고 말한다.
“지금 시대에 이데올로기 때문에 북한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제 또래인 30~40대만 해도 그런 건 관심도 없습니다. 먹고살기 힘들고 어려우니까 살려고 내려오는 거죠. 그런데 막상 와보면 사는 게 막막하긴 매한가지거든요. 게다가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심지어 피붙이와 평생 연락 한 번 주고받기 어려운 처지가 되니까 다시 가고 싶어지는 겁니다. 정부 정책이요? 물론 문제는 있습니다. 하지만 탈북자 자체를 정부가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남한 사람들도 일일이 책임지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 탈북자들을 어떻게 다 책임집니까.”
국보법 위반? 구시대적 발상
6월 1일 박선영 전 의원이 강제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 체류할 당시의 동영상을 공개했다. 라오스 이민국에 들어가기 전 탈북 청소년들을 안내했던 주모 선교사가 찍은 동영상 중 한 장면이다.
“국가 안보에 위협이 돼야 국가보안법 위반이지 남한 사회에 적응조차 못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무슨 위협이 되겠습니까. 지금 북한은 남한과 어느 부분에서도 경쟁이 되지 못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후진국을 상대로 국가보안법 운운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구시대적인 발상 아니겠습니까.”
김 소장은 독일 통일 당시 동독을 탈출한 사람들을 예로 들며 “우리나라 역시 탈북자 문제를 단순히 탈북자만의 문제로 볼 게 아니라 통일 연장선상에서 고민하고 정책적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독일 분단 당시 수백만 명에 달하는 동독인이 서독으로 이주했지만 그중 10% 정도는 다시 동독으로 되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과 달리 비교적 왕래가 자유롭고 교류가 활발한 데다 서독의 동독 탈출자 프로그램이 꽤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이었음에도 동서독의 문화 및 가치관의 차이가 그들에게 극복하기 어려운 걸림돌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억압이 오히려 단절과 반발심만 쌓아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는 탈북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오래전부터 국내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독일의 탈동독자 지원 사례를 남한에도 접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09년 ‘서독의 동독 이탈주민 정착지원을 통해 본 북한 이탈주민 지원 방안’을 주제로 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가 개최한 포럼에서 박정란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서독이 동서독 통일을 이루기까지 동독 이탈주민에게 연령, 성, 직종별로 세분화한 맞춤형 지원 프로그램을 운용한 점, 특히 서독 정부가 동서독 통합을 염두에 두고 장기적 차원에서 인적자원 개발에 집중한 점, 여성과 청소년 등 대상별로 특성화한 지원의 필요성을 깨닫고 대상별 지원 체계를 구축한 점을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