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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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남자 배우랑…뭐가 어때서?

내 아내의 스리섬 환상

  • 마야 최 심리상담가 juspeace3000@naver.com

    입력2013-04-01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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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멋진 남자 배우랑…뭐가 어때서?
    구진아(가명) 씨는 패션계에 몸담았다가 지금은 자그마한 부티크를 운영하는 30대 후반 여성이다. 그녀의 말씨는 전문 직종에 몸담은 여성답게 노련하고 세련됐다. 손동작이나 몸짓이 고급스러운 의상과 잘 어울렸는데, 그래서 조금은 차가운 느낌도 들었다.

    구씨는 동갑내기 남편과 결혼했다. 그는 고등학교 교사였다. 구씨는 남편을 수수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구씨 부부는 결혼 13년차였고, 둘 사이엔 3년 전 호주로 유학을 떠난 딸이 한 명 있다. 성생활은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했는데 잉꼬부부까지는 아니어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 구씨 남편이 3개월 전 초등학교 여자 동창과 바람이 났다. 남편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자꾸만 혀로 입술을 핥았다. 구씨는 이상한 낌새를 챈 날부터 증거를 수집하기 시작해 남편의 실토를 이끌어냈다. 남편은 용서를 빌며, 두 번 다시 바람을 피우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이를 어길 경우 양육권과 재산권을 모두 포기하고 맨몸으로 집에서 나가기로 각서를 썼다. 그렇게 상황은 일단락되고 평온한 일상이 다시 시작됐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는 아무것도 정리된 게 없었다. 그녀가 진짜 상담받기를 원하는 내용은 사건이 일단락된 이후의 일이었다. 그녀의 마음에 남은 앙금이 잊고 싶었던 과거의 기억을 깨웠기 때문이다.

    자꾸만 꿈에 그 여자가 나타났다. 그 여자는 남편 옆에 누워 있었다. 꿈속에서 여자의 머리채를 붙잡아 내쫓아도 어느 틈에 이불 속으로 들어와 남편 옆에 정답게 누워 있었다. 구씨는 진저리를 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뜬눈으로 밤을 하얗게 지새우다 보니 신경이 곤두서서 부티크 일도, 사람 만나는 일도 모두 귀찮아졌다. 심지어 눈을 뜨고 있을 때도 환영에 시달려야 했다. 그 여자가 남편 옆에 누워 있거나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신경안정제를 복용해도 잠깐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전형적인 노이로제 현상이었다. 구씨는 그날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 여자를 만나서 정확히 선을 그었어요.”

    그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선을 그었다’는 말은 자신의 바람이 투영된 말투였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구씨의 가족력을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바람난 가족과 바람난 남편

    구씨는 외동딸로 자랐다. 아버지는 외국으로 일을 다니셨고 한 달에 한 번 집에 들어와 2~3일간 머물다 갔다. 구씨는 아버지가 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아버지가 떠날 때면 서럽게 울었다. 어머니가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구씨를 번쩍 들어 꼭 안아줘야만 울음을 그쳤다고 했다.

    구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흐느껴 울고 있었다. 어머니 앞에는 고급스러운 옷차림의 여자가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앉아 있었고, 아버지는 둘 사이에 말없이 앉아 한 손으로 턱을 쓰다듬고 있었다. 구씨는 방문 사이로 이 장면을 지켜봤다.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여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와 그 여자가 함께 집을 나섰다. 어머니는 맨발로 마당까지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허리를 반으로 접으며 바닥에 고개가 닿도록 인사했다. 그 뒤로 아버지는 찾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첩이었다. 구씨가 아버지를 찾을 때마다 어머니는 매를 들었다. 아버지를 뺏어간 그 여자도 미웠지만, 어머니가 더 미웠다. 구씨 어머니는 자신의 죄의식, 즉 남의 남편을 탐한 첩으로서의 죄의식과 본부인에 대한 원망을 구씨에게 반복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구씨는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그 여자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구씨의 남자관은 이 둘 사이의 관계에서 머리가 둘 달린 샴쌍둥이처럼 형성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한편 이런 사정 이전에 구씨는 스스로 “아빠 어디 가?”라고 차마 묻지도 못했던 한이 가슴 깊은 곳에 대못처럼 박혀 있었다. 그 상처에는 아버지가 왜 나를 꼭 안아주며 울음을 달래주지 않았는지에 대한 원망도 함께 섞여 있었다.

    구씨는 남편의 외도 사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힘을 지닌 본처로서 행동했다. 그러나 그건 그녀가 닮고 싶었던 모습일 뿐, 그녀 내면에는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겉으로는 ‘쿨’한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원망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실타래는 더욱 꼬일 수밖에 없었다.

    자, 하나씩 정리가 필요했다. 먼저 어머니. 구씨가 어머니를 원망하는 마음을 치유하려고 나는 어머니 구실을 대신하면서 상담을 진행해야 했다. 우리는 구씨 자신의 한과 어머니의 한을 동시에 인정하고 놓아 보내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다음 아버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는 구씨가 과거의 망령에서 풀려나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자 변화가 시작됐다. 먼저 구씨 남편은 아내의 강한 소유욕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게 되면서 아내에 대한 배려심을 갖게 됐고, 구씨 역시 자기 마음을 되돌아보며 지긋지긋한 질투 감정이 처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지만 큰 변화였다.

    금실 좋아진다면…

    멋진 남자 배우랑…뭐가 어때서?

    영화 ‘몽상가’의 한 장면.

    구씨의 사례가 예외적인 경우는 아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부모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기억의 연장으로 배우자를 바라본다. 자, 이것은 과연 상상 속 스리섬(threesome)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구씨 부부에게 이 문제를 설명하려고 스리섬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왔다.

    “어머니도 본처도 아버지와 잠자리에 들 때 둘이만 들지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는 늘 아버지와 누우며 옆에 본처를 의식했을 것입니다. 본처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스리섬을 실제 3명이 함께하는 섹스로 안다. 그러나 상상 속에서 자꾸 다른 사람이 떠오른다면 그것도 역시 스리섬이 아닐까. 우리의 섹스는 늘 투섬(twosome)일 뿐일까. 섹스가 순수한 육체만의 결합이 아니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투섬 섹스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옳다. 당신의 배우자는 부모와 어떤 연관이 있거나, 당신이 만났던 과거의 누군가와 유사한 어떤 사람일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오늘 낮에 봤던 그 근사한 사람의 모습이 섹스 중에 떠오르지 말라는 법도 없다.

    모든 성 문제는 이를 인정하는 순간 더는 문제가 아니다. 스리섬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의 성적 판타지가 스리섬이라고? 그걸 인정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감추게 되고, 감추려 하니까 튀어나올 곳을 찾게 된다. 김밥 옆구리 터지듯 말이다.

    실제로 3명이 모여서 즐기는 섹스가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논의는 일단 접어두자. 먼저 당신 마음의 스리섬부터 숨 쉴 곳을 찾아주자. 어떤 사람은 아예 배우자를 다른 사람인 양 대하며 섹스를 한다. 그건 투섬이다. 그러나 눈앞의 상대에게는 눈을 감고 의식 속으로 빠져드는 그 섹스에 문제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는 삶 속에 사는 것일까, 상상 속에 사는 것일까. 그(또는 그녀)는 조만간 상상과 현실을 일치시키려고 다른 방편을 찾지 않을까. 모 방송인은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남편과 섹스를 할 때 멋진 남자 배우를 떠올려요. 그럼 확실히 불타오르죠.”

    스리섬에 대한 당당한 선언, 얼마나 좋은가. 그게 자신을 불타오르게 만든다면 말이다. 그래서 더 금실이 좋아질 수 있다면 이게 현실적 대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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