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유업계 A기업은 최근 리뉴얼 제품을 내놓으면서 “이번 리뉴얼을 통해 소비자 단체의 논란을 불러왔던 프리미엄 분유는 없애고 모유에 가장 가까운 제대로 된 분유를 선보이고자 했다”고 홍보했다. 지난해 한국소비생활연구원에서 프리미엄 분유 11개 제품을 조사해 “프리미엄 분유와 일반 분유에 영양성분 및 함량에 별다른 차이가 없음에도 가격이 30% 이상 차이난다”고 지적한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국소비생활연구원 김연화 회장은 이 같은 프리미엄군(群) 없애기가 가격 인상을 위한 또 다른 꼼수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A기업의 리뉴얼 제품 가격이 기존 프리미엄 제품에 비해서도 2000원이나 높게 책정됐다”며 “품질 차이도 별로 없는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한 것이나, 프리미엄 라인을 없애고 제품군을 단순화하는 것이나 모두 가격 인상을 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A기업은 “가격을 기준으로 분유제품을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 제품으로 나누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 제품의 통합은 세계적 흐름에 맞춘 것이다. 모유에 더욱 가까운 성분비를 조성했지만 경쟁업체 프리미엄 제품에 비해서는 여전히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A기업 분유 리뉴얼 제품의 가격은 2만6500원으로 경쟁사 프리미엄 제품들보다 30% 정도 싼 편이다.
“프리미엄 군을 없애 가격 거품을 뺐다”는 자화자찬을 소비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분유업계가 그동안 고가 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타이틀을 단 분유들은 대개 4만 원에 육박하고, 유기농 분유와 산양분유는 5만 원대가 대부분이기 때문. 최근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한 분유 판매 사기가 성행하는 것도 분유 값 부담을 덜어보려는 초보부모의 심리를 악용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분유업계의 배짱 영업이 분유시장의 기형적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모유 대체식품 판매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라 1991년부터 조제분유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조제분유 할인 판매 및 샘플 제공 같은 판촉 행위도 안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조제분유라는 명칭이다. 외국에서는 모유 대용품을 분유(infant formula)라고 통칭하는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조제분유와 성장기용 조제식으로 구분해 관리한다. 조제분유는 원유를 모유 성분과 유사하게 가공한 것으로 유(乳) 성분이 60% 이상이다. 성장기용 조제식은 분리대두단백 등 단백질 함유식품에 생후 6개월 이상 영·유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첨가한 것으로, 유 성분 함량이 60% 미만이다.
그래서 생후 6개월까지 먹을 수 있는 분유 시제품에는 ‘조제분유’라 표기하고, 그 이후 먹을 수 있는 제품에는 업체에 따라 ‘조제분유’ 또는 ‘조제식’이라고 표기한다. 결정적으로 조제분유는 광고 및 판촉 행위에 규제를 받지만, 조제식은 그렇지 않다. TV나 인쇄매체에 등장하는 분유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후 6개월 이상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조제식을 내세운다. 대형 마트에서 분유를 할인 판매한다고 할 때도 실상 조제분유가 아닌 조제식만 해당한다.
모유 수유를 권장하려고 마련한 조치가 이렇듯 정상적인 마케팅 통로를 막아버리자 업계는 우회적으로, 그러나 훨씬 영향력 있는 활로를 개척해 움직인다. 소비자를 직접 상대할 수 없으니 산부인과병원을 공략하는 것이다. 2010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0년 넘게 국내 분유시장 점유율 1, 2위를 고수해온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수년에 걸쳐 산부인과병원에 자사 조제분유를 독점 공급하는 조건으로 낮은 이자에 수억 원씩 빌려주거나, 영업보증금을 지급하고, 가구나 가전제품 등 물품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면서 각각 과징금 2억4000만 원을 부과했다. 업계 3위인 일동후디스 역시 2011년 2월 같은 혐의로 과징금 3100만 원을 부과받았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동안 일동후디스가 산부인과병원에 지급한 리베이트 총액이 해당 병원에 대한 분유 매출액의 3배가 넘는 규모”라고 밝혔다.
매출액보다 훨씬 많은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까지 산부인과병원에 자사 조제분유를 독점 공급하려는 이유는 갓난아기가 산부인과에서 어떤 분유를 먹느냐가 향후 엄마가 분유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거나 분유를 먹여 키워본 적 있는 엄마 상당수가 자신이 선택한 분유 이름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도, 산부인과병원에서 먹였던 제품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분유업계 배짱 영업은 이 같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조업감시과 관계자는 “2010년과 2011년 제재 이후 산부인과병원에 대한 분유업계의 현금 및 저리 대여금, 설비나 분유 무상 제공 같은 명시적 리베이트는 사라진 것 같다”면서 “음성적으로는 (리베이트 관행이) 지속될 수 있지만 내부고발이나 신고가 없는 것으로 봐서 과거에 비해 시장이 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시각은 좀 다르다.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여러 업체 분유를 취급하며 산모에게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경우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유명 대학병원 소아과 의료진과 새로운 분유 개발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중간에 어그러졌다”며 “그 병원 산부인과를 통해 경쟁업체가 외압을 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분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은 산후조리원이 산부인과병원보다 문턱이 훨씬 높다”며 “산모와 아기가 산부인과병원보다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기간이 더 긴 만큼 분유업계는 산후조리원에 공을 들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제분유 샘플 제공 및 할인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됐음에도 일부 산후조리원에서는 산모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처럼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기존 업체만 보호” 비판 목소리
광고와 판촉을 통해 제품을 알릴 길은 막혔고, 산부인과병원과 산후조리원 진입 비용은 높다 보니 분유시장에서는 신규업자 보기가 힘들뿐더러, 간혹 있더라도 살아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2000년 일동후디스가 신규 진입한 이후 국내 분유시장은 남양유업, 매일유업, 일동후디스, 파스퇴르가 지배하고 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이 야심차게 액상분유 베비언스를 내놨지만 고전하고 있다. 신생업체 아이배냇이 유 성분을 100% 산양유로 채운 산양분유 제품을 출시했지만, 기존 업체의 텃세에 밀려 운신 폭을 좀처럼 넓히지 못하고 있다. 분유업계의 공격적 마케팅으로부터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려고 시작한 분유 광고 및 판촉 행위 규제가 산모와 아기가 아닌 기존 업체들만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렇다고 분유 규제가 풀릴 것 같진 않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분유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오지만 국제 규약에 어긋나는 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분유 광고 및 판촉 행위 규제는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최근 미국의 분유 규제는 그 방향성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에선 산부인과병원에서 산모와 아기에게 퇴원 선물로 분유를 제공하던 관행을 없애는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뉴욕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가을부터 30여 개 병원이 분유를 공개된 장소가 아닌 의약품이나 의료기구처럼 열쇠가 달린 수납장에 보관하고, 분유 사용 명세를 기록으로 남겨 뉴욕시에 보고하기로 했다. 이뿐 아니라, 병원 어디에서도 분유 홍보물을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 산모에겐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이렇게 하면 적어도 분유업계와 병원의 유착 고리는 어느 정도 끊길 것으로 보인다.
모유수유를 권장한다는 미명 하에 각종 규제를 만들어놓기만 한 당국은 그것이 실제로는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도록 방치하는 처사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
그러나 한국소비생활연구원 김연화 회장은 이 같은 프리미엄군(群) 없애기가 가격 인상을 위한 또 다른 꼼수라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A기업의 리뉴얼 제품 가격이 기존 프리미엄 제품에 비해서도 2000원이나 높게 책정됐다”며 “품질 차이도 별로 없는 프리미엄 제품을 출시한 것이나, 프리미엄 라인을 없애고 제품군을 단순화하는 것이나 모두 가격 인상을 위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A기업은 “가격을 기준으로 분유제품을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 제품으로 나누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프리미엄 제품과 일반 제품의 통합은 세계적 흐름에 맞춘 것이다. 모유에 더욱 가까운 성분비를 조성했지만 경쟁업체 프리미엄 제품에 비해서는 여전히 저렴한 편”이라고 해명했다. 실제 A기업 분유 리뉴얼 제품의 가격은 2만6500원으로 경쟁사 프리미엄 제품들보다 30% 정도 싼 편이다.
“프리미엄 군을 없애 가격 거품을 뺐다”는 자화자찬을 소비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분유업계가 그동안 고가 정책을 고수해왔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타이틀을 단 분유들은 대개 4만 원에 육박하고, 유기농 분유와 산양분유는 5만 원대가 대부분이기 때문. 최근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를 통한 분유 판매 사기가 성행하는 것도 분유 값 부담을 덜어보려는 초보부모의 심리를 악용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분유업계의 배짱 영업이 분유시장의 기형적 구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제정한 ‘모유 대체식품 판매에 관한 국제규약’에 따라 1991년부터 조제분유 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조제분유 할인 판매 및 샘플 제공 같은 판촉 행위도 안 된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조제분유라는 명칭이다. 외국에서는 모유 대용품을 분유(infant formula)라고 통칭하는데,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조제분유와 성장기용 조제식으로 구분해 관리한다. 조제분유는 원유를 모유 성분과 유사하게 가공한 것으로 유(乳) 성분이 60% 이상이다. 성장기용 조제식은 분리대두단백 등 단백질 함유식품에 생후 6개월 이상 영·유아에게 필요한 영양소를 첨가한 것으로, 유 성분 함량이 60% 미만이다.
그래서 생후 6개월까지 먹을 수 있는 분유 시제품에는 ‘조제분유’라 표기하고, 그 이후 먹을 수 있는 제품에는 업체에 따라 ‘조제분유’ 또는 ‘조제식’이라고 표기한다. 결정적으로 조제분유는 광고 및 판촉 행위에 규제를 받지만, 조제식은 그렇지 않다. TV나 인쇄매체에 등장하는 분유 광고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후 6개월 이상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조제식을 내세운다. 대형 마트에서 분유를 할인 판매한다고 할 때도 실상 조제분유가 아닌 조제식만 해당한다.
모유 수유를 권장하려고 마련한 조치가 이렇듯 정상적인 마케팅 통로를 막아버리자 업계는 우회적으로, 그러나 훨씬 영향력 있는 활로를 개척해 움직인다. 소비자를 직접 상대할 수 없으니 산부인과병원을 공략하는 것이다. 2010년 1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10년 넘게 국내 분유시장 점유율 1, 2위를 고수해온 남양유업과 매일유업이 수년에 걸쳐 산부인과병원에 자사 조제분유를 독점 공급하는 조건으로 낮은 이자에 수억 원씩 빌려주거나, 영업보증금을 지급하고, 가구나 가전제품 등 물품을 무상으로 제공했다면서 각각 과징금 2억4000만 원을 부과했다. 업계 3위인 일동후디스 역시 2011년 2월 같은 혐의로 과징금 3100만 원을 부과받았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 동안 일동후디스가 산부인과병원에 지급한 리베이트 총액이 해당 병원에 대한 분유 매출액의 3배가 넘는 규모”라고 밝혔다.
매출액보다 훨씬 많은 리베이트를 제공하면서까지 산부인과병원에 자사 조제분유를 독점 공급하려는 이유는 갓난아기가 산부인과에서 어떤 분유를 먹느냐가 향후 엄마가 분유를 선택하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거나 분유를 먹여 키워본 적 있는 엄마 상당수가 자신이 선택한 분유 이름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해도, 산부인과병원에서 먹였던 제품과 동일하다는 사실은 기억한다. 분유업계 배짱 영업은 이 같은 믿는 구석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제조업감시과 관계자는 “2010년과 2011년 제재 이후 산부인과병원에 대한 분유업계의 현금 및 저리 대여금, 설비나 분유 무상 제공 같은 명시적 리베이트는 사라진 것 같다”면서 “음성적으로는 (리베이트 관행이) 지속될 수 있지만 내부고발이나 신고가 없는 것으로 봐서 과거에 비해 시장이 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시각은 좀 다르다. 한 산부인과병원에서 여러 업체 분유를 취급하며 산모에게 직접 선택하게 하는 경우는 여전히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분유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유명 대학병원 소아과 의료진과 새로운 분유 개발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중간에 어그러졌다”며 “그 병원 산부인과를 통해 경쟁업체가 외압을 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분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은 산후조리원이 산부인과병원보다 문턱이 훨씬 높다”며 “산모와 아기가 산부인과병원보다 산후조리원에 머무는 기간이 더 긴 만큼 분유업계는 산후조리원에 공을 들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제분유 샘플 제공 및 할인 판매가 법적으로 금지됐음에도 일부 산후조리원에서는 산모에게 특별한 혜택을 제공하는 것처럼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기존 업체만 보호” 비판 목소리
광고와 판촉을 통해 제품을 알릴 길은 막혔고, 산부인과병원과 산후조리원 진입 비용은 높다 보니 분유시장에서는 신규업자 보기가 힘들뿐더러, 간혹 있더라도 살아남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2000년 일동후디스가 신규 진입한 이후 국내 분유시장은 남양유업, 매일유업, 일동후디스, 파스퇴르가 지배하고 있다. 지난해 LG생활건강이 야심차게 액상분유 베비언스를 내놨지만 고전하고 있다. 신생업체 아이배냇이 유 성분을 100% 산양유로 채운 산양분유 제품을 출시했지만, 기존 업체의 텃세에 밀려 운신 폭을 좀처럼 넓히지 못하고 있다. 분유업계의 공격적 마케팅으로부터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려고 시작한 분유 광고 및 판촉 행위 규제가 산모와 아기가 아닌 기존 업체들만 보호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렇다고 분유 규제가 풀릴 것 같진 않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분유에 대한 소비자 선택권을 보호해달라는 민원이 들어오지만 국제 규약에 어긋나는 법 개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분유 광고 및 판촉 행위 규제는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최근 미국의 분유 규제는 그 방향성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미국에선 산부인과병원에서 산모와 아기에게 퇴원 선물로 분유를 제공하던 관행을 없애는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뉴욕은 한발 더 나아가 지난해 가을부터 30여 개 병원이 분유를 공개된 장소가 아닌 의약품이나 의료기구처럼 열쇠가 달린 수납장에 보관하고, 분유 사용 명세를 기록으로 남겨 뉴욕시에 보고하기로 했다. 이뿐 아니라, 병원 어디에서도 분유 홍보물을 노출하지 않기로 했다. 모유가 충분히 나오지 않는 산모에겐 다소 번거로울 수 있지만, 이렇게 하면 적어도 분유업계와 병원의 유착 고리는 어느 정도 끊길 것으로 보인다.
모유수유를 권장한다는 미명 하에 각종 규제를 만들어놓기만 한 당국은 그것이 실제로는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기도록 방치하는 처사가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