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소리 나게 일 잘하는 친구죠. 한화그룹에서 추천할 만한 여성입니다.”
기자와 사석에서 만난 정이만 플라자호텔 전 대표이사는 조성연(44) 플라자호텔 기획팀 팀장(부장)을 꼭 만나보라고 당부했다.
회사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는 조 팀장은 이화여대 통계학과 89학번으로, 한화그룹 내 ‘여성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남다른 스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에 맞춰 통계학과에 지원해 대학을 착실히 다녔고, 졸업 후 지인 소개로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커 결국 2년 만에 퇴사하고 26세에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면서 스펙과 꿈이 생겼다.
“6개월 동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어학연수차 갔지만 그 덕에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휘슬러 스키장에서 스키도 즐겼고요. 수업시간에 ‘매년 휴가철이면 다른 나라에 머문다’는 독일인 부부를 만나면서 재충전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어요.”
인생에 쉼표를 찍은 그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읽다 한화그룹 경력직 공개채용 문구를 발견했다. ‘튀는 인재를 찾습니다’란 구절이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모집 부문은 건설, 광고, 유통, 레저였는데 저는 레저를 지원했어요. 좋은 서비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았죠. 스키장에서 교육비를 낮추며 고객을 확보하는 마케팅을 경험한 터라 저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레저산업에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오랜 준비 끝에 ‘웨딩쇼’ 열어
다양한 영역에서 뽑힌 사원 10여 명은 사내 아이디어팀 ‘엠브리오(배아)’ 구성원이 됐다. 경제 호황기였던 터라 투자처를 물색하는 차원에서 이런 팀을 만든 기업이 더러 있었는데, 엠브리오 구성원 또한 무한 자유와 무한 책임을 누리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했다.
“제1 공간이 집, 제2 공간이 일터, 제3 공간이 레저공간이라고 하는데요. 그때 전국에 있는 좋은 리조트, 호텔, 식음업장은 다 가본 것 같아요. 고객 눈높이에서 평가하는 한편 매니저들을 인터뷰하면서 기획 콘셉트를 성과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봤죠.”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팀이 1년 만에 해체돼 아이디어를 현실화하지 못했다. 조 팀장은 관광 계열사인 한화국토개발(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개발기획팀에 배치받아 산정호수, 수안보 지역 관리를 맡았다. 직장인 일상이 지루할 법도 했지만, 관광업계 종사자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타사 현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리조트를 오가며 계절을 만끽했던 것이다. 이후 한화그룹 벤처경영센터 투자심사팀에서 벤처기업을 심사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덕분에 “기업 가치평가법뿐 아니라 ‘자금이 부족해도 아이디어가 좋으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3년 한화국토개발로 복귀하면서 관광업계에서 성과를 낼 기회가 열리나 싶었지만, 1년 반 만에 한화그룹 마케팅팀으로 발령받아 때를 놓쳤다. 드디어 2006년 플라자호텔로 온 그는 의기가 충만했다. 과거 상사의 뼈아픈 지적이 약이 됐다.
“제가 사원일 때 임원회의에 배석해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상사가 있었어요. 그 일을 성사시킨 뒤 선후배 앞에서 저를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해줬죠. 그런데 제가 1999년 그룹 최초로 여성 ‘대리’가 될 때 그분이 가장 많이 반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고 판단했다는데, 그 얘기를 듣고 많이 심란했죠. 후배들은 저처럼 이런 일로 고민하지 말고 더 생산적으로 고민하면 좋겠어요(웃음).”
일류 호텔에서 일하면서 눈길이 간 건 웨딩사업. 그는 남들과 다른 웨딩을 추구하는 사람 수요가 있다고 판단해, 1년에 한 번씩 웨딩 경향을 보여주는 웨딩쇼를 추진했다. 예비신부가 쇼를 보고 꽃 장식, 드레스, 테이블 세팅 방식을 선택하도록 도우려는 의도에서다. 쇼를 준비하는 기간만 3개월, 준비 비용이 1억 원에 달한 탓에 회사는 투자를 망설였지만 조 팀장은 “웨딩쇼를 열어 매출을 더 많이 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수익을 50% 이상 늘렸다. 이후 그는 ‘건강식’ 뷔페, ‘건강’ 개념을 도입한 스파를 연이어 기획하고 이런 기세를 몰아 국내 최초로 호텔 ‘전체’ ‘리노베이션’을 이끌었다.
국내 최초 호텔 ‘전체’ ‘리노베이션’
“단순한 리모델링(개·보수)을 넘어 이노베이션(혁신)을 불러왔기 때문에 ‘리노베이션’이란 용어를 쓰고 싶은데요. 2007년부터 사업을 준비해 2008년 그룹 승인을 받았고, 2009년 콘셉트 설계 작업에 들어가 2010년 공사를 시작, 6개월 만에 마쳤어요. 업장이 노후한 데다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도 노력 끝에 부티크 스타일 호텔이 탄생했죠. 호텔 문을 닫지 않고 구간별로 나눠 공사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손님에게 해가 되고,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판단해 호텔 문을 닫고 공사했죠. 전 직원이 4개월 동안 휴직하고 임금 70%를 받던 터라 공사기간이 늦춰지면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조마조마했어요. 설계와 공사가 동시에 진행돼 쪽대본으로 드라마 찍듯 긴박하게 만들었죠.”
이때 그는 처음으로 팀장을 맡았다. 그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임 팀장이 그에게 양보한 자리였다. TF 팀장은 비록 팀원 5명을 이끌었지만 사실상 공사팀, 설계팀, 운영팀을 총괄하는 책임자 격이었다. 리노베이션 참여 누적 인원만 2만여 명에 달했다.
“서비스업은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저에게 기회를 준 선배를 보면서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어요. 부족하나마 저도 상대를 인정하고 기회를 주니까 상대가 능력을 발휘하더라고요. 물론 조율 과정은 어려웠죠. 플라자호텔이 문화재 반경 100m 이내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건물 외관을 완공할 때 문화재청과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고요. 다행히 그 문제를 해결해 관련 주제로 한양대 관광정책학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남들 결혼할 때 공부한 거예요(웃음).”
17년차 직장인 조 팀장은 “에너지가 방전돼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엄살인 듯했다. 그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서비스업은 전체 비용의 30~40%가 인건비일 정도로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고용 창출을 위해서라도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해야 한다”며 정책을 제안했다. 짬짬이 즐긴다는 골프, 스키가 재충전을 돕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숲을 아우르는 시선을 가진 덕분에 나무를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많은 기회를 찾으라고 권해요. 서비스업은 서로의 배려가 중요하거든요. 매년 다이어리에 그해 곱씹어야 할 구절을 적는데, 올해는 ‘말을 잘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말을 잘 듣는 것은 마음자세다’란 구절을 적었어요. 열린 자세로 주변 사람을 포용하면서 조화롭게 살고 싶거든요. 은퇴하면 봉사단체에서 노하우를 기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능력을 더 키워야겠죠(웃음).”
기자와 사석에서 만난 정이만 플라자호텔 전 대표이사는 조성연(44) 플라자호텔 기획팀 팀장(부장)을 꼭 만나보라고 당부했다.
회사에서 두터운 신임을 받는 조 팀장은 이화여대 통계학과 89학번으로, 한화그룹 내 ‘여성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니지만, 남다른 스펙이 있는 것은 아니다. 성적에 맞춰 통계학과에 지원해 대학을 착실히 다녔고, 졸업 후 지인 소개로 작은 광고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커 결국 2년 만에 퇴사하고 26세에 캐나다 밴쿠버로 떠나면서 스펙과 꿈이 생겼다.
“6개월 동안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죠. 어학연수차 갔지만 그 덕에 북미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휘슬러 스키장에서 스키도 즐겼고요. 수업시간에 ‘매년 휴가철이면 다른 나라에 머문다’는 독일인 부부를 만나면서 재충전이 중요하다는 사실도 새삼 알게 됐어요.”
인생에 쉼표를 찍은 그는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신문을 읽다 한화그룹 경력직 공개채용 문구를 발견했다. ‘튀는 인재를 찾습니다’란 구절이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모집 부문은 건설, 광고, 유통, 레저였는데 저는 레저를 지원했어요. 좋은 서비스,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는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았죠. 스키장에서 교육비를 낮추며 고객을 확보하는 마케팅을 경험한 터라 저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레저산업에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오랜 준비 끝에 ‘웨딩쇼’ 열어
다양한 영역에서 뽑힌 사원 10여 명은 사내 아이디어팀 ‘엠브리오(배아)’ 구성원이 됐다. 경제 호황기였던 터라 투자처를 물색하는 차원에서 이런 팀을 만든 기업이 더러 있었는데, 엠브리오 구성원 또한 무한 자유와 무한 책임을 누리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했다.
“제1 공간이 집, 제2 공간이 일터, 제3 공간이 레저공간이라고 하는데요. 그때 전국에 있는 좋은 리조트, 호텔, 식음업장은 다 가본 것 같아요. 고객 눈높이에서 평가하는 한편 매니저들을 인터뷰하면서 기획 콘셉트를 성과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봤죠.”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팀이 1년 만에 해체돼 아이디어를 현실화하지 못했다. 조 팀장은 관광 계열사인 한화국토개발(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 개발기획팀에 배치받아 산정호수, 수안보 지역 관리를 맡았다. 직장인 일상이 지루할 법도 했지만, 관광업계 종사자의 특권을 마음껏 누렸다. 타사 현황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리조트를 오가며 계절을 만끽했던 것이다. 이후 한화그룹 벤처경영센터 투자심사팀에서 벤처기업을 심사하고 지원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 덕분에 “기업 가치평가법뿐 아니라 ‘자금이 부족해도 아이디어가 좋으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2003년 한화국토개발로 복귀하면서 관광업계에서 성과를 낼 기회가 열리나 싶었지만, 1년 반 만에 한화그룹 마케팅팀으로 발령받아 때를 놓쳤다. 드디어 2006년 플라자호텔로 온 그는 의기가 충만했다. 과거 상사의 뼈아픈 지적이 약이 됐다.
“제가 사원일 때 임원회의에 배석해 직접 보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상사가 있었어요. 그 일을 성사시킨 뒤 선후배 앞에서 저를 자랑스러워하며 격려해줬죠. 그런데 제가 1999년 그룹 최초로 여성 ‘대리’가 될 때 그분이 가장 많이 반대했다고 하더라고요. 여자라는 이유로 언제 그만둘지 모른다고 판단했다는데, 그 얘기를 듣고 많이 심란했죠. 후배들은 저처럼 이런 일로 고민하지 말고 더 생산적으로 고민하면 좋겠어요(웃음).”
일류 호텔에서 일하면서 눈길이 간 건 웨딩사업. 그는 남들과 다른 웨딩을 추구하는 사람 수요가 있다고 판단해, 1년에 한 번씩 웨딩 경향을 보여주는 웨딩쇼를 추진했다. 예비신부가 쇼를 보고 꽃 장식, 드레스, 테이블 세팅 방식을 선택하도록 도우려는 의도에서다. 쇼를 준비하는 기간만 3개월, 준비 비용이 1억 원에 달한 탓에 회사는 투자를 망설였지만 조 팀장은 “웨딩쇼를 열어 매출을 더 많이 올리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수익을 50% 이상 늘렸다. 이후 그는 ‘건강식’ 뷔페, ‘건강’ 개념을 도입한 스파를 연이어 기획하고 이런 기세를 몰아 국내 최초로 호텔 ‘전체’ ‘리노베이션’을 이끌었다.
국내 최초 호텔 ‘전체’ ‘리노베이션’
“단순한 리모델링(개·보수)을 넘어 이노베이션(혁신)을 불러왔기 때문에 ‘리노베이션’이란 용어를 쓰고 싶은데요. 2007년부터 사업을 준비해 2008년 그룹 승인을 받았고, 2009년 콘셉트 설계 작업에 들어가 2010년 공사를 시작, 6개월 만에 마쳤어요. 업장이 노후한 데다 규모가 크지 않았는데도 노력 끝에 부티크 스타일 호텔이 탄생했죠. 호텔 문을 닫지 않고 구간별로 나눠 공사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손님에게 해가 되고, 업무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판단해 호텔 문을 닫고 공사했죠. 전 직원이 4개월 동안 휴직하고 임금 70%를 받던 터라 공사기간이 늦춰지면 비용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조마조마했어요. 설계와 공사가 동시에 진행돼 쪽대본으로 드라마 찍듯 긴박하게 만들었죠.”
이때 그는 처음으로 팀장을 맡았다. 그와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한 전임 팀장이 그에게 양보한 자리였다. TF 팀장은 비록 팀원 5명을 이끌었지만 사실상 공사팀, 설계팀, 운영팀을 총괄하는 책임자 격이었다. 리노베이션 참여 누적 인원만 2만여 명에 달했다.
“서비스업은 사람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한데, 저에게 기회를 준 선배를 보면서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배웠어요. 부족하나마 저도 상대를 인정하고 기회를 주니까 상대가 능력을 발휘하더라고요. 물론 조율 과정은 어려웠죠. 플라자호텔이 문화재 반경 100m 이내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건물 외관을 완공할 때 문화재청과 서울시와 협의하는 과정도 순조롭지 않았고요. 다행히 그 문제를 해결해 관련 주제로 한양대 관광정책학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대단한 건 아니고 남들 결혼할 때 공부한 거예요(웃음).”
17년차 직장인 조 팀장은 “에너지가 방전돼 걱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엄살인 듯했다. 그는 인터뷰 중 여러 차례 “서비스업은 전체 비용의 30~40%가 인건비일 정도로 노동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고용 창출을 위해서라도 서비스업에 대한 세제 지원을 해야 한다”며 정책을 제안했다. 짬짬이 즐긴다는 골프, 스키가 재충전을 돕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숲을 아우르는 시선을 가진 덕분에 나무를 키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도 조직이 추구하는 방향성을 받아들인 뒤 그 안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많은 기회를 찾으라고 권해요. 서비스업은 서로의 배려가 중요하거든요. 매년 다이어리에 그해 곱씹어야 할 구절을 적는데, 올해는 ‘말을 잘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말을 잘 듣는 것은 마음자세다’란 구절을 적었어요. 열린 자세로 주변 사람을 포용하면서 조화롭게 살고 싶거든요. 은퇴하면 봉사단체에서 노하우를 기부하고 싶은데 그러려면 능력을 더 키워야겠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