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태(45) 민주통합당(민주당) 의원은 3선 의원이다. 민주당으로선 불모지인 부산(사하을)에서 내리 3번 당선했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17대 총선 뒤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조경태 학습관’을 세워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여도(與都)가 된 부산에서 민주당 깃발을 꽂는, 자신도 하지 못한 일을 조 의원이 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간 눈으로 봤을 때 그는 ‘크지’ 못했다. 같은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광주서을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최고위원(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이 비례대표 의원 등을 거치며 ‘성장’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반면 조 의원은 최고위원도 못 해봤다. 야당 불모지에서 내리 3번 당선한 의원이 이처럼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패권에 반대하니까 항상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웃음). 당이 잘못 가고 있다고 판단하면 항상 쓴소리를 하고 회초리를 들었으니…. 당 지도부가 봤을 때 나는 껄끄러운 존재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패권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내 마지막 후원회장이 고(故) 김근태 의원이었는데, 그분이 당대표일 때는 곁에도 안 갔다. 국민 잘살게 하겠다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기회적이고 출세지향적인 행동을 해서야 되겠나. 그건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
▼ 친노(친노무현)계 아닌가.
“그렇다. 나는 ‘원조 친노’다. 그러나 지금의 친노는 아니다.”
▼ 원조 친노?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부산 동구에 출마했는데, 그때 대학생으로 자원봉사한 게 첫 인연이었다. 이후 29세 때인 1996년 꼬마 민주당 소속으로 첫 출마해 낙선했다. 낙선한 민주당 위원장들과 일요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회장은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이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나는 그 나이에 박정희 정권 아래서 고시공부했는데, 조경태는 편한 길 버리고 어려운 야당 길을 선택했다’고 치켜세우곤 했다. 인간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원조 친노다. 현재 친노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고 나서 형성된 그룹 아닌가.”
“등 돌린 12% 아직 이유도 몰라”
▼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 때는 ‘5대 불가론’을 주장해 문재인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후보 간 경쟁은 치열해야 한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 불가론을 제기했을 거다. 나는 부산에서 3선이고, (문 전 후보에 비해) 정치 선배이면서 공학박사 출신이다. 감정적이라기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사물을 바라본다. 후보에 대한 자질 검증 차원에서 질문을 던졌다.”
조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지지율은 1%대 후반에 머물렀다. 경남고 선배이자 당내 지지율 1위였던 문재인 후보를 향해 ‘5대 불가론’을 내세워 공격했지만 그 또한 역부족이었다. △자질 부족 △경쟁력 문제 △기회주의 △패권주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 등이 5대 불가론 뼈대다. 하지만 문 후보가 당 공식후보로 선출되자 부산선대위 공동상임위원장을 맡아 끝까지 그를 도왔다.
▼ 5대 불가론에 대해 문 후보 측 답변은 없었다.
“답변은 없었지만 본선에서는 좋은 자양분이 됐으리라 본다. 특히 야당 정치가 어려울 때 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 있다가 상황이 바뀌니까 나서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19대 총선 때도 문 후보는 부산 사상구가 아닌 해운대 같은, 민주당이 어려운 곳에서 나와야 했다. 충분히 기회주의적 행태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불가를 외친 후보를 위해 부산 선대위원장을 맡지 않았나.
“(문 전 후보가) 의원실로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는 부산에서도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에 밀려 3등을 할 때였다. 당원 한 사람으로서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결국 민주당이 패배했고, 문희상 체제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스르고 있는데.
“여러 원인이 있다. 먼저 교만했다. 자만했다. 변화한 선거지형에 대한 전략도 부족했으며, 후보단일화에 사활을 걸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통합하지 못하고 대선기간 중에 불협화음이 계속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문재인 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주변 친노 세력은 문 후보가 당선해도 정무직을 맡지 않겠다는 희생정신을 보였어야 했다. 저쪽(새누리당)은 사즉생(死卽生) 각오였다. 저쪽 대선후보는 낙선하면 정계은퇴하겠다 했고,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2선 후퇴를 선언하지 않았나. 여기에 이정희 변수, 국정원 여직원 변수도 있었고, 대북관계에서 종북 논란에 대한 명쾌한 스탠스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국민 60%가 정권교체를 원했는데 48% 득표했다. 이용섭 의원 말대로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 국민 12%가 왜 돌아섰는지 알아야 하는데,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말인가.
“감동이 없다. 비대위원들 면면을 보면 정말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이 이렇게 됐으면 새로운 외부 인사로 분위기를 쇄신해야 하는데 돌고 돌아 ‘올드 보이’다.”
▼ 당초 조 의원도 비대위원에 거론됐는데.
“(내가 비대위원이 되면) 강력한 혁신을 요구할 것 같으니까, 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창당 수준을 넘어 해체 수준, 신당 창당 수준으로 가야 했다.”
▼ 1월 13일 비대위 출범 이후 ‘회초리 투어’를 하다 18일 중단하기도 했다.
“‘보여주기 이벤트’라는 냉소적 반응이 있었다.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이냐’는 회의감을 갖는 당원이 많은 것 같다.”
국민 마음 담아낼 그릇 되어야
▼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딘가.
“지금으로선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비대위원으로는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다. 지금은 관리형 비대위 체제로 가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을 만들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 새 지도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민주당, 구태 정당 모습이 아니라 완전 탈바꿈하는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는 인물이 중심이 돼야 한다.”
▼ 본인을 포함해?
“굳이 내가 아니어도 좋다. 국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담아낼 수 있는 민주당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가진 계파 간 패권주의부터 청산해야 한다. 패권주의는 당장은 편하지만 자고 나면 결국 썩게 마련이다.”
조 의원은 패권주의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2010년 9월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선거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 시당위원장이던 그는 최인호 전 청와대 부대변인과 맞붙어 272표(44.4%)를 얻는 데 그쳤다. 최 전 부대변인은 341표(55.6%)를 얻었다. 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원외 위원장이 현역을 이긴 이변이 일어났다.
▼ 2010년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선거 이후 문재인 후보와 소원하지 않았나.
“그때는 한명숙, 정세균 의원 등 당시 민주당 핵심이 대거 내려와 최 전 부대변인을 지원했다. 정말 조경태와 ‘문재인 라인’과의 싸움, 즉 일 대 다수 싸움이었다.”
▼ 왜 그랬을까.
“부산은 그들의 패권주의를 이끌어가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친노 패권주의 말이다. 당 지도부가 볼 때도 나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패권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고 보면 민주당 내에서 패권주의와 계파 청산을 처음 주장한 의원도 그였고, 야당이 대여협상력을 높이려 국회 등원을 거부한 채 거리로 나설 때면 “국회 등원을 정쟁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낸 사람도 그였다. 손학규 당대표 시절 의원총회장에서는 당 지도부 코앞에서 “당신들 책임”이라고 힐책했으며,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동시 퇴진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 의원은 1996년부터 야당 깃발을 흔들며 불모지 부산으로 향한 돌격대장이다. 그가 없었다면 부산에서 민주당 불씨는 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뱉을 수 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볼 때 조 의원은 뱉지도, 삼킬 수도 없는 탄토양난(呑吐兩難) 의원일 수 있겠다.
▼ 민주당 차기 당대표와 부산시장 선거에도 이름이 거론되는데.
“과거에는 침체된 부산을 살리겠다는 생각에 시장 출마 생각도 있었지만, 요즘은 나 아니어도 훌륭한 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좋은 후보 나오면 도와줄 생각이다. 현재는 전국 당원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있다.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진로를 고민하고 폭넓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 당원들은 무엇을 요구하나.
“대선 패배 후 당원들은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 상태다. 민주당 색깔로는 정권 창출이 어렵지 않느냐는 우려 목소리가 많다.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천이 없는 게 문제다. 지금 당에는 큰 동상 2개만 남았다. 존경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2013년 현재에 과거 마인드로 정치해서는 안 된다.”
▼ 차기 대선후보를 노리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는 대통령이 꿈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부산시장 선거에 실패했지만 대통령이 됐다. 앞으로 국회의원으로서 인문·사회학, 복지·통일·안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당선인 밀봉인사 개선 필요
▼ 김용준 총리 후보자 사퇴는 어떻게 보나.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말이 많다.
“‘동봉인사’ ‘밀봉인사’ 한계가 드러났다고 본다. 인사권자 고유 권한이기는 하지만, 인사는 가능하면 투명한 검증 절차, 그리고 여론 검증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여망에 부흥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박 당선인은 대통령에 뜻이 있었고,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면서 그 나름대로 국정운영 구상도 많이 한 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그늘에서 얼마나 벗어날지,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 부분을 어떻게 이끌지에 대해 국민이 조심스럽게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난 정부보다 더 나은 인권 신장, 민주주의를 위해 국정을 운영해주길 바란다.”
▼ 자신이 생각하는 3선 의원 비결은 뭔가.
“글쎄. 정치인은 말이 앞선다. 그러면 안 된다. 특히 불모지일수록 일을 더 많이 해 성과를 보여주고 인정받아야 한다. 나는 8000여억 원 규모의 국책사업인 신평·다대 간 1호선 연장사업을 완수했으며, 각종 환경정비사업에 적극 나섰다. 주민에게 믿음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정치에 뛰어들 때의 초심도 잊지 않았다.”
부산에서 대학 강사를 하던 조 의원은 1995년 구포시장 노점상 단속현장을 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부추, 고추를 담은 대야를 빼앗긴 상인들이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조 의원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자는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를 떠올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과 유력자의 횡포에 저항한 조마이섬(을숙도) 사람들 이야기 말이다. 조 의원 지역구인 부산 사하구는 소설 속 배경인 을숙도와 다리를 맞댄 곳이다.
“패권에 반대하니까 항상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 같다(웃음). 당이 잘못 가고 있다고 판단하면 항상 쓴소리를 하고 회초리를 들었으니…. 당 지도부가 봤을 때 나는 껄끄러운 존재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패권에 들어간 적이 없다. 내 마지막 후원회장이 고(故) 김근태 의원이었는데, 그분이 당대표일 때는 곁에도 안 갔다. 국민 잘살게 하겠다고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 기회적이고 출세지향적인 행동을 해서야 되겠나. 그건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
▼ 친노(친노무현)계 아닌가.
“그렇다. 나는 ‘원조 친노’다. 그러나 지금의 친노는 아니다.”
▼ 원조 친노?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부산 동구에 출마했는데, 그때 대학생으로 자원봉사한 게 첫 인연이었다. 이후 29세 때인 1996년 꼬마 민주당 소속으로 첫 출마해 낙선했다. 낙선한 민주당 위원장들과 일요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에서 한 달에 한 번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 회장은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이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나는 그 나이에 박정희 정권 아래서 고시공부했는데, 조경태는 편한 길 버리고 어려운 야당 길을 선택했다’고 치켜세우곤 했다. 인간적으로 만난 사람들이 원조 친노다. 현재 친노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 되고 나서 형성된 그룹 아닌가.”
“등 돌린 12% 아직 이유도 몰라”
▼ 민주당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 때는 ‘5대 불가론’을 주장해 문재인 후보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후보 간 경쟁은 치열해야 한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 불가론을 제기했을 거다. 나는 부산에서 3선이고, (문 전 후보에 비해) 정치 선배이면서 공학박사 출신이다. 감정적이라기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사물을 바라본다. 후보에 대한 자질 검증 차원에서 질문을 던졌다.”
조 의원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지만 지지율은 1%대 후반에 머물렀다. 경남고 선배이자 당내 지지율 1위였던 문재인 후보를 향해 ‘5대 불가론’을 내세워 공격했지만 그 또한 역부족이었다. △자질 부족 △경쟁력 문제 △기회주의 △패권주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책임 등이 5대 불가론 뼈대다. 하지만 문 후보가 당 공식후보로 선출되자 부산선대위 공동상임위원장을 맡아 끝까지 그를 도왔다.
▼ 5대 불가론에 대해 문 후보 측 답변은 없었다.
“답변은 없었지만 본선에서는 좋은 자양분이 됐으리라 본다. 특히 야당 정치가 어려울 때 18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 있다가 상황이 바뀌니까 나서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19대 총선 때도 문 후보는 부산 사상구가 아닌 해운대 같은, 민주당이 어려운 곳에서 나와야 했다. 충분히 기회주의적 행태라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 불가를 외친 후보를 위해 부산 선대위원장을 맡지 않았나.
“(문 전 후보가) 의원실로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다. 당시는 부산에서도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에 밀려 3등을 할 때였다. 당원 한 사람으로서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결국 민주당이 패배했고, 문희상 체제 비상대책위원회가 추스르고 있는데.
“여러 원인이 있다. 먼저 교만했다. 자만했다. 변화한 선거지형에 대한 전략도 부족했으며, 후보단일화에 사활을 걸었다. 게다가 우리 스스로 통합하지 못하고 대선기간 중에 불협화음이 계속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다.”
▼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문재인 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주변 친노 세력은 문 후보가 당선해도 정무직을 맡지 않겠다는 희생정신을 보였어야 했다. 저쪽(새누리당)은 사즉생(死卽生) 각오였다. 저쪽 대선후보는 낙선하면 정계은퇴하겠다 했고, 친박(친박근혜) 의원들은 2선 후퇴를 선언하지 않았나. 여기에 이정희 변수, 국정원 여직원 변수도 있었고, 대북관계에서 종북 논란에 대한 명쾌한 스탠스를 보여주지도 못했다. 국민 60%가 정권교체를 원했는데 48% 득표했다. 이용섭 의원 말대로 ‘지려고 해도 질 수 없는 선거’에서 졌다. 국민 12%가 왜 돌아섰는지 알아야 하는데, 지금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말인가.
“감동이 없다. 비대위원들 면면을 보면 정말 민주당이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모르겠다. 당이 이렇게 됐으면 새로운 외부 인사로 분위기를 쇄신해야 하는데 돌고 돌아 ‘올드 보이’다.”
▼ 당초 조 의원도 비대위원에 거론됐는데.
“(내가 비대위원이 되면) 강력한 혁신을 요구할 것 같으니까, 그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창당 수준을 넘어 해체 수준, 신당 창당 수준으로 가야 했다.”
▼ 1월 13일 비대위 출범 이후 ‘회초리 투어’를 하다 18일 중단하기도 했다.
“‘보여주기 이벤트’라는 냉소적 반응이 있었다. 생뚱맞다는 생각도 들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반성이냐’는 회의감을 갖는 당원이 많은 것 같다.”
국민 마음 담아낼 그릇 되어야
▼ 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어딘가.
“지금으로선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비대위원으로는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도 없다. 지금은 관리형 비대위 체제로 가고, 조기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을 만들 지도부를 구성해야 한다. 새 지도부가 구성되는 과정에서는 새로운 민주당, 구태 정당 모습이 아니라 완전 탈바꿈하는 새로운 민주당으로 거듭나는 인물이 중심이 돼야 한다.”
▼ 본인을 포함해?
“굳이 내가 아니어도 좋다. 국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담아낼 수 있는 민주당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자신이 가진 계파 간 패권주의부터 청산해야 한다. 패권주의는 당장은 편하지만 자고 나면 결국 썩게 마련이다.”
조 의원은 패권주의에 대해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에게는 2010년 9월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선거 트라우마가 있다. 당시 시당위원장이던 그는 최인호 전 청와대 부대변인과 맞붙어 272표(44.4%)를 얻는 데 그쳤다. 최 전 부대변인은 341표(55.6%)를 얻었다. 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원외 위원장이 현역을 이긴 이변이 일어났다.
▼ 2010년 민주당 부산시당위원장 선거 이후 문재인 후보와 소원하지 않았나.
“그때는 한명숙, 정세균 의원 등 당시 민주당 핵심이 대거 내려와 최 전 부대변인을 지원했다. 정말 조경태와 ‘문재인 라인’과의 싸움, 즉 일 대 다수 싸움이었다.”
▼ 왜 그랬을까.
“부산은 그들의 패권주의를 이끌어가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친노 패권주의 말이다. 당 지도부가 볼 때도 나는 껄끄러운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패권에 들어간 적이 없다. 그럴 이유도 없다.”
그러고 보면 민주당 내에서 패권주의와 계파 청산을 처음 주장한 의원도 그였고, 야당이 대여협상력을 높이려 국회 등원을 거부한 채 거리로 나설 때면 “국회 등원을 정쟁도구로 삼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낸 사람도 그였다. 손학규 당대표 시절 의원총회장에서는 당 지도부 코앞에서 “당신들 책임”이라고 힐책했으며, 이해찬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동시 퇴진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 의원은 1996년부터 야당 깃발을 흔들며 불모지 부산으로 향한 돌격대장이다. 그가 없었다면 부산에서 민주당 불씨는 꺼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뱉을 수 없다. 민주당 지도부가 볼 때 조 의원은 뱉지도, 삼킬 수도 없는 탄토양난(呑吐兩難) 의원일 수 있겠다.
▼ 민주당 차기 당대표와 부산시장 선거에도 이름이 거론되는데.
“과거에는 침체된 부산을 살리겠다는 생각에 시장 출마 생각도 있었지만, 요즘은 나 아니어도 훌륭한 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좋은 후보 나오면 도와줄 생각이다. 현재는 전국 당원들을 만나 의견을 듣고 있다. 당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과 진로를 고민하고 폭넓은 토론이 필요한 시점이다.”
▼ 당원들은 무엇을 요구하나.
“대선 패배 후 당원들은 이른바 ‘멘붕’(멘탈 붕괴) 상태다. 민주당 색깔로는 정권 창출이 어렵지 않느냐는 우려 목소리가 많다.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계승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실천이 없는 게 문제다. 지금 당에는 큰 동상 2개만 남았다. 존경하지만, 이제는 그분들의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2013년 현재에 과거 마인드로 정치해서는 안 된다.”
▼ 차기 대선후보를 노리겠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는 대통령이 꿈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부산시장 선거에 실패했지만 대통령이 됐다. 앞으로 국회의원으로서 인문·사회학, 복지·통일·안보 분야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
당선인 밀봉인사 개선 필요
▼ 김용준 총리 후보자 사퇴는 어떻게 보나.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 스타일에 대해 말이 많다.
“‘동봉인사’ ‘밀봉인사’ 한계가 드러났다고 본다. 인사권자 고유 권한이기는 하지만, 인사는 가능하면 투명한 검증 절차, 그리고 여론 검증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는 인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여망에 부흥할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박 당선인은 대통령에 뜻이 있었고,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면서 그 나름대로 국정운영 구상도 많이 한 분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그늘에서 얼마나 벗어날지,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 부분을 어떻게 이끌지에 대해 국민이 조심스럽게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지난 정부보다 더 나은 인권 신장, 민주주의를 위해 국정을 운영해주길 바란다.”
▼ 자신이 생각하는 3선 의원 비결은 뭔가.
“글쎄. 정치인은 말이 앞선다. 그러면 안 된다. 특히 불모지일수록 일을 더 많이 해 성과를 보여주고 인정받아야 한다. 나는 8000여억 원 규모의 국책사업인 신평·다대 간 1호선 연장사업을 완수했으며, 각종 환경정비사업에 적극 나섰다. 주민에게 믿음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정치에 뛰어들 때의 초심도 잊지 않았다.”
부산에서 대학 강사를 하던 조 의원은 1995년 구포시장 노점상 단속현장을 보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부추, 고추를 담은 대야를 빼앗긴 상인들이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면서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조 의원 이야기를 들으면서 기자는 김정한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를 떠올렸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과 유력자의 횡포에 저항한 조마이섬(을숙도) 사람들 이야기 말이다. 조 의원 지역구인 부산 사하구는 소설 속 배경인 을숙도와 다리를 맞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