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수동 테라스에서 방송하는 모습.
#1 공감 (‘취업학개론’ 8회 중)
“자소서(자기소개서) 쓰다 보면 이상한 게, 가족사항을 입력하는 회사들이 있잖아. 그래, 좋아. 그럴 수 있어. 근데 부모님 나이, 학력, 직업, 심지어 재산까지 입력하는 데가 있잖아. 난 그거 아주 진짜 이상해. 그거는 써야 되는 이유를 모르겠어. 너무 이상해. 그거를 합격, 불합격 기준으로 쓴다면 그건 진짜 욕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근데 ○○○은 그런 게 없더라고. 참 좋은 회사야. 이렇게 말하면 뽑아주시겠지(웃음)?”
#2 해소 (‘취업학개론’ 14회 중)
“취업 결산! 철수가 2012년 8월부터 12월 31일까지 총 96개 회사에 지원해 6개 회사에서 서류 통과됐습니다. 10%도 안 되는 확률인데, 여기서 중요한 게 그중에서 최종까지 간 게 3개나 돼. 아무튼 이렇게 해서 최종합격한 데는 없습니다. 더 중요한 거는 2013년 상반기 전망이 더 밝다는 거야. 최종 떨어진 3개 빼고는 다 다시 쓸 수 있다는 거잖아. (존슨 : 진짜 무시무시하게 긍정적 마인드다.) 아니 그럼 내가 최종에서 96개 떨어졌어 봐. 그럼 진짜 큰일 났어. 쓸데없는 거야. 2013년엔 더더욱 무궁무진한 채용소식들로 찾아뵙겠습니다.”
‘취업학개론’의 두 MC 철수와 존슨(이상 가명·29)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고교 3년 동안 같은 반에 밴드동아리까지 함께 한 단짝이다. 둘 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이른바 돌아온 취업준비생, 이를 줄여 스스로를 ‘돌취’라고 부른다. 그들은 돌취로서 스트레스 해소 공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할 수 있는 대나무 숲처럼, 취업과정에서 쌓인 각종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 철수와 존슨의 솔직한 이야기
“취업 관련 얘기는 아무에게나 못 하잖아요. 부모님한테 하면 걱정하시고, 친구들한테 하기엔 눈치 보이니까. 근데 여기서만큼은 다 얘기할 수 있어서 마음의 짐을 좀 덜었죠.”(철수)
무엇보다 단순히 재미를 추구한 결과였다.
“당면한 취업이라는 현실과 관련해 한잔 하면서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들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재미있으려고 시작한 일이죠.”(존슨)
내용은 노골적이고 거칠 게 없다. 불합격한 회사에 대한 저주와 푸념이 넘친다. 김구라의 인터넷 시절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하지만 수위 높은 언사가 불편하게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취업학개론’이 ‘해소’와 ‘공감’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철수와 존슨은 실명을 제외한 다른 개인정보들을 모두 제공하며 청취자들과 한 몸이 됐다.
“학교, 학점, 토익, 서류 합격 여부 등 거의 모든 개인정보를 공개하면서 카타르시스를 경험했어요. 탈락하면 회사 욕도 하고 그랬지만, 그게 여기서만 가능한 일이었고 청취자들은 대리만족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우리가 하는 욕설 때문에 최소한 익명으로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고요. 생활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까요.”(존슨)
# 취업 시한부 방송이 콘셉트
‘취업학개론’은 ‘취업 시한부 방송’을 콘셉트로 한다. 즉, 둘이 취업에 성공함과 동시에 방송은 끝난다는 뜻이다. 다행히(?) 철수가 취업에 실패해 방송은 2013년 1월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존슨은 2012년 하반기 취업에 성공했다. 하지만 철수와 함께 끝까지 방송을 계속한다). 그 6개월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가장 기업에 남는 것은 ‘40대 청취자들의 반응’이다.
“우리 타깃은 20대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40대 분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좀 놀랐어요.”(존슨)
신입사원 채용과는 상관없는 40대들이 방송을 듣고 의견을 보내준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중 창원에 사는 노○○ 씨는 한 기업 인사담당자다.
“제가 어느 잡지에 쓴 글을 우연히 보고 ‘취업학개론’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듣고 나서 팬이 됐다며 안주와 술을 보낼 테니 거절하지 말고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어요.”(철수)
왜 그랬을까. 인사담당자로서 취업준비생의 마음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취준생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몰랐는데 조금은 알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우리처럼 젊은 친구들이 ‘취업학개론’ 같은 방송을 하는 데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됐다고도 했어요.”(철수)
그 의도야 어찌됐든 ‘취업학개론’이 취업준비생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 공간을 넘어 세대 간 소통의 장 구실까지 하는 셈이다.
# 취업에 대한 또 다른 시선
철수(왼쪽)와 존슨.
“소위 말하는 고(高)스펙자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청취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우리보다 스펙이 없는 분들이 방송 듣기를 불편해한다는 말도 들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청취자들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함께 공감함으로써 위안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죠. 의도적으로 기만하거나 징징대거나 하는 부분은 전혀 없었어요.”(존슨)
그들은 취업에 대해 독특한 견해를 피력했다. 취업은 ‘좋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는 취업이 삶의 수단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에는 목적이자 꿈이 됐어요. 살기 위해 취업하는 게 아니라 취업하기 위해 살죠. 그렇게 자기 꿈인 취업을 이뤘다고 기뻐하며 막상 회사에 다니다 보면 현실이 생각만큼 달콤하진 않거든요. 좋은 꿈에 불과할 뿐이죠. 꿈을 깼으면 좋겠어요. 취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고 마냥 좋으리라는 생각은 정말 꿈이에요.”(존슨)
그렇다면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철수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정말 사람들이 ‘취업학개론’을 먼저 들었으면 좋겠어요. 취업과정에서 자신감이 자괴감으로 바뀌더라도, 더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우리 방송을 들으면서 웃고 다시 자신감을 찾았으면 해요.”
존슨은 취업에 대한 성찰을 강조했다.
“우리가 취업 컨설턴트처럼 전문적인 답변은 드릴 순 없어요. 그래서 우리 방송이 웃음과 해소를 강조하는 거고요. 저는 먼저 취업이 무엇인지 한 번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옆에 친구들이 원서 쓴다고 따라 쓰지 말고, 취업한 후 자기 인생을 그려보고 평생 그렇게 살아갈 준비가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취업에 임하는 자세도 조금은 성숙해질 거라고 봐요.”
취업을 준비하는 청취자에게 ‘취업학개론’은 개론서 구실에 충실했다. ‘정답’을 주기보다 함께 얘기를 들어주고 공감하며 취업을 조망할 수 있는 안내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철수와 존슨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답’을 강요하거나 주입하는 일에서 벗어나 함께 즐거워하고 아파하며 흘러가기 때문이다. 술잔을 ‘쨍’ 부딪치는 소리가 신수동 한 테라스에서 울려 퍼지면 또다시 그들은 웃음과 공감의 60분을 시작할 것이다. ‘취업학개론’은 그렇게 흘러간다.
*‘취업학개론’은 인터넷 jobslaves.iblug.com으로 접속하거나 인터넷 방송 팟캐스트에서 ‘취업학개론’을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주 1회 방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