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못 벌면, 적게 써야죠.”
저성장시대 노후 준비의 화두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다. 버는 게 많지 않은 만큼 줄일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줄이고, 거기서 생긴 여유 자금으로 노후 대비를 하는 것.
그렇다고 다운사이징을 단순히 용돈이나 생활비를 아껴 저축하는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다운사이징은 생활 규모를 전반적으로 줄이는 작업이다. 다이어트와 유사하다. 사람이 갑자기 체중이 불어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오듯, 소득에 맞지 않게 살림살이가 커지면 가계에 그늘이 드리운다. 군살을 빼려면 밥그릇 크기부터 줄여야 하듯, 생활 규모를 줄이려면 가장 익숙한 것부터 손대야 한다.
자동차 1대 유지비 연간 533만 원
쓰임새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물건 중 하나가 자동차다. 자동차는 출퇴근할 때 한두 시간을 빼면 대부분 집이나 회사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1대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2000cc급 중형 자동차를 1년에 1만5000km 정도 운행한다고 할 때 유류비, 자동차세, 보험료 등을 합쳐 533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한 달로 치면 45만 원을 자동차에 쓰는 셈이다(표 참조). 하루 23시간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에 이렇게 큰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바쁠 때 택시를 타면 한 달에 10만∼20만 원은 족히 절약할 수 있다.
다이어트에 고통이 따르는 것처럼 매일 자동차를 이용하던 사람이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한국에서 자동차는 ‘지위재’ 성격도 지닌다. 어떤 차를 몰고 다니느냐에 따라 운전자의 지위와 신분을 가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설령 자동차를 종일 주차장에 세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쉽게 처분하지 못한다. 자동차를 파는 것은 신분을 버리는 행위고, 대형차를 소형차로 바꾸는 것은 스스로 지위를 깎아내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운사이징을 통한 노후 준비에 성공하려면, 먼저 자동차 소유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최근 차량공유 서비스인 ‘카셰어링(Car Sharing)’이 등장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인식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카셰어링의 가장 큰 매력은 접근성이다. 기존 렌터카 서비스는 영업소가 주로 공항이나 철도역사 주변의 외진 곳에 있어 이용하기 번거로웠다. 반면 카셰어링의 경우에는 자동차를 도심 또는 주거지 근처에 분산 배치하기 때문에 회원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자동차를 대여하는 절차가 단순한 것도 장점이다. 렌트카는 자동차를 빌릴 때마다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지만, 카셰어링은 일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웹사이트나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이용 시간도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한두 시간 짧게 대여할 수도 있고, 밤에도 이용 가능하다.
부수적으로 환경 개선과 건강 증진 효과도 있다. 카셰어링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개 자동차가 꼭 필요한지 따져보고 서비스 이용 여부를 결정한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카셰어링에 가입한 사람은 자동차를 소유했을 때보다 47% 자동차를 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t씩 절감하는 환경 개선 효과가 있다. 이뿐 아니라 걷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 효과도 높아진다.
오늘은 BMW 탈까, 볼보 탈까?
이런 장점 덕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카셰어링이 순풍에 돛 단 듯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카셰어링 회사인 ‘집카(Zipcar)’를 예로 들어보자. 2000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대학가에서 출발한 집카는 캐나다와 영국에까지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설립 11년 만인 2011년 4월 나스닥에 상장할 때 시가총액이 1조3000억 원에 이르렀다. 집카는 회원 가입비로 75달러, 시간당 사용료로 8달러를 청구한다. 2009년에는 이 수수료가 쌓여 1억3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의 자동차 판매는 40% 감소했다.
집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비자의 기호와 선택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집카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의 매력을 그대로 활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동차를 공유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집카의 버스 광고에는 흰색과 녹색으로 ‘오늘은 BMW를 한번 타볼까? 아니면 볼보?’라고 씌어 있다. 일단 자동차를 사면 싫든 좋든 그 차를 계속 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집카를 이용하면 필요할 때 원하는 자동차로 바꿔 탈 수 있다. 자동차를 빌려 타는 일이 과거에는 구질구질하고 귀찮은 일이었다면, 집카는 이용자의 개성과 유행 감각을 뽐낼 수 있는 일로 바꿔놓았다. 사람들의 의사결정 틀을 소유에 따른 만족감에서 이용의 즐거움으로 전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10월 카셰어링이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카셰어링 업체 그린카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회원 3만 명을 돌파했다. 서울 경기권역에만 70여 개 예약소가 생겨났을 정도다. 아직 카셰어링을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트렌드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국내 카셰어링 이용 고객의 95%가 20∼30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셰어링이 자동차 소유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편리하게 쓰려면 무엇이든 다 갖춰놓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든다. 반면 자동차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공유하면 시간은 좀 들지 몰라도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다. 소유에서 얻는 즐거움을 내려놓으면, 비용을 절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후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할 수도 있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저성장시대 노후 준비의 화두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다. 버는 게 많지 않은 만큼 줄일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한 줄이고, 거기서 생긴 여유 자금으로 노후 대비를 하는 것.
그렇다고 다운사이징을 단순히 용돈이나 생활비를 아껴 저축하는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다운사이징은 생활 규모를 전반적으로 줄이는 작업이다. 다이어트와 유사하다. 사람이 갑자기 체중이 불어나면 건강에 적신호가 오듯, 소득에 맞지 않게 살림살이가 커지면 가계에 그늘이 드리운다. 군살을 빼려면 밥그릇 크기부터 줄여야 하듯, 생활 규모를 줄이려면 가장 익숙한 것부터 손대야 한다.
자동차 1대 유지비 연간 533만 원
쓰임새에 비해 돈이 많이 들어가는 물건 중 하나가 자동차다. 자동차는 출퇴근할 때 한두 시간을 빼면 대부분 집이나 회사 주차장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도 자동차 1대에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2000cc급 중형 자동차를 1년에 1만5000km 정도 운행한다고 할 때 유류비, 자동차세, 보험료 등을 합쳐 533만 원 가까운 비용이 든다. 한 달로 치면 45만 원을 자동차에 쓰는 셈이다(표 참조). 하루 23시간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에 이렇게 큰돈을 쓸 필요가 있을까.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바쁠 때 택시를 타면 한 달에 10만∼20만 원은 족히 절약할 수 있다.
다이어트에 고통이 따르는 것처럼 매일 자동차를 이용하던 사람이 버스나 지하철로 출퇴근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한국에서 자동차는 ‘지위재’ 성격도 지닌다. 어떤 차를 몰고 다니느냐에 따라 운전자의 지위와 신분을 가늠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설령 자동차를 종일 주차장에 세워두는 한이 있더라도 쉽게 처분하지 못한다. 자동차를 파는 것은 신분을 버리는 행위고, 대형차를 소형차로 바꾸는 것은 스스로 지위를 깎아내리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운사이징을 통한 노후 준비에 성공하려면, 먼저 자동차 소유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최근 차량공유 서비스인 ‘카셰어링(Car Sharing)’이 등장하면서 자동차에 대한 인식에 변화 조짐이 보인다. 카셰어링의 가장 큰 매력은 접근성이다. 기존 렌터카 서비스는 영업소가 주로 공항이나 철도역사 주변의 외진 곳에 있어 이용하기 번거로웠다. 반면 카셰어링의 경우에는 자동차를 도심 또는 주거지 근처에 분산 배치하기 때문에 회원들이 손쉽게 이용할 수 있다. 자동차를 대여하는 절차가 단순한 것도 장점이다. 렌트카는 자동차를 빌릴 때마다 계약서를 다시 써야 하지만, 카셰어링은 일단 회원으로 가입하면 웹사이트나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예약해 이용할 수 있다. 이용 시간도 필요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한두 시간 짧게 대여할 수도 있고, 밤에도 이용 가능하다.
부수적으로 환경 개선과 건강 증진 효과도 있다. 카셰어링을 이용하는 사람은 대개 자동차가 꼭 필요한지 따져보고 서비스 이용 여부를 결정한다.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에서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카셰어링에 가입한 사람은 자동차를 소유했을 때보다 47% 자동차를 덜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매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t씩 절감하는 환경 개선 효과가 있다. 이뿐 아니라 걷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운동 효과도 높아진다.
오늘은 BMW 탈까, 볼보 탈까?
이런 장점 덕에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카셰어링이 순풍에 돛 단 듯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카셰어링 회사인 ‘집카(Zipcar)’를 예로 들어보자. 2000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 캠브리지대학가에서 출발한 집카는 캐나다와 영국에까지 빠른 속도로 사업을 확장했다. 설립 11년 만인 2011년 4월 나스닥에 상장할 때 시가총액이 1조3000억 원에 이르렀다. 집카는 회원 가입비로 75달러, 시간당 사용료로 8달러를 청구한다. 2009년에는 이 수수료가 쌓여 1억3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기록했다. 반면 미국의 자동차 판매는 40% 감소했다.
집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비자의 기호와 선택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집카는 자동차를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브랜드의 매력을 그대로 활용해 사람들로 하여금 자동차를 공유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집카의 버스 광고에는 흰색과 녹색으로 ‘오늘은 BMW를 한번 타볼까? 아니면 볼보?’라고 씌어 있다. 일단 자동차를 사면 싫든 좋든 그 차를 계속 타고 다녀야 한다. 하지만 집카를 이용하면 필요할 때 원하는 자동차로 바꿔 탈 수 있다. 자동차를 빌려 타는 일이 과거에는 구질구질하고 귀찮은 일이었다면, 집카는 이용자의 개성과 유행 감각을 뽐낼 수 있는 일로 바꿔놓았다. 사람들의 의사결정 틀을 소유에 따른 만족감에서 이용의 즐거움으로 전환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11년 10월 카셰어링이 시작됐다. 국내 최초의 카셰어링 업체 그린카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회원 3만 명을 돌파했다. 서울 경기권역에만 70여 개 예약소가 생겨났을 정도다. 아직 카셰어링을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트렌드로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다. 국내 카셰어링 이용 고객의 95%가 20∼30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셰어링이 자동차 소유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필요할 때마다 바로 편리하게 쓰려면 무엇이든 다 갖춰놓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많은 돈이 든다. 반면 자동차처럼 자주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공유하면 시간은 좀 들지 몰라도 비용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다. 소유에서 얻는 즐거움을 내려놓으면, 비용을 절감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노후를 위해 더 많이 저축할 수도 있다.
*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으로 일반인과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은퇴교육과 퇴직연금 투자교육을 실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