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사진) 김승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 전천후 촬영이 가능한 아리랑 5호 최종 조립 모습.
항우연이 통합에 반대하는 데는 여러 사정이 있다. 먼저 항우연 측은 “국가개발연구원으로 들어가면 연구와 사업을 속도감 있게 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려를 표한다. 또한 “정부 출연연구소를 한데 묶어 놓으면 연구소들이 서로 예산을 더 많이 따내려고 실적 제일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고도 지적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위성과 발사체 제작 및 발사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반대 요인으로 항우연 측은 국가안보에 끼치는 부정적 요소를 꼽는다. 항우연이 정부기구나 독립법인으로 유지돼야 하는 이유는 아리랑 2호의 대체 위성인 아리랑 5호, 아리랑 3A호가 맡는 기능과 발사체의 발사 연기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리랑 3A호는 적외선 촬영 기능이 있어 미사일이 발사된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아리랑 5호는 전천후 촬영이 가능하다. 따라서 두 위성이 올라가면 한국은 좀 더 상세히 북한의 은밀한 움직임을 추적할 수 있다. 이런 능력을 토대로 항우연은 스와핑(swapping)을 한다.
아리랑은 남·북극을 따라 하루에 지구를 14바퀴 반 돌기 때문에 지구 전체를 살필 수 있다. 따라서 한반도 이외 지역을 지날 때는 그 지역에 자리한 국가가 원하는 사진을 찍어준다. 반대로 아리랑이 한반도 상공을 지나가지 않을 때는 한반도 지역을 지나는 위성을 소유한 국가에 북한을 찍어달라고 해 사진을 교환한다. 이렇게 하면 24시간 북한을 감시할 수 있다.
기술과 국가기밀 공개 우려
이탈리아 알레니아(Alenia)사의 지원을 받아 항우연이 개발한 아리랑 5호는 레이더 촬영을 하는 SAR위성이다. 레이더파를 쏘고 반사된 전파를 잡아 흑백사진을 만든다. 보통의 위성은 카메라를 달고 있기에 구름이 끼거나 밤이 되면 지상을 찍지 못한다. 그러나 이 위성은 레이더파를 쏘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거나 한밤중에도 촬영 가능하다.
한국은 위성을 올려주는 발사체를 아직 만들지 못했다. 두 번이나 실패한 나로호는, 완성돼도 크기가 작아 1.3t이 넘는 아리랑 5호를 쏠 수 없다. 나로호는 본격적인 발사체를 개발하기에 앞서 만들어보는 ‘시제(試製)’에 불과하다. 따라서 항우연은 2007년 러시아(지분율 45%), 우크라이나(45%), 카자흐스탄(10%)이 공동 투자한 코스모트라스와 드네프르 발사체로 아리랑 5호를 쏜다는 계약을 맺었다.
드네프르는 보통의 발사체가 아니다. 1960년대 개발돼 최근까지 주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실전 배치됐던 R-36(서방국가에서는 ‘SS-18’로 부름)을 개조한 것이다. 1991년 소련은 미국과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맺었다. 이에 따라 R-36은 58기만 남기고 전량 폐기했다. 러시아는 R-36에서 떼어낸 핵탄두를 미국에 판매했고, 미국은 이를 희석해 원전회사에 핵연료로 판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R-36을 위성 발사체로 사용하도록 민간에 불하했는데, 이것이 바로 드네프르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지하 발사시설인 사일로(silo)에서 발사하는 것처럼, 드네프르도 땅속에서 발사한다.
드네프르의 소유권은 러시아 국방부에 있다. 그러나 개조는 우크라이나에서 했고, 일부 발사장은 카자흐스탄이 제공하기에 세 나라가 투자한 코스모트라스가 발사 대행을 한다. 2007년은 세계 위성 시장이 위축됐기 때문에 코스모트라스는 낮은 가격에 항우연과 계약했다. 그러나 최근 위성 시장이 활황을 보이자, 러시아 국방부는 “코스모트라스 측은 발사비를 더 받아내라”며 발사를 불허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 문제는 러시아 국방부와 코스모트라스 간 문제니, 한국은 관여하지 마라”라는 말로 한국의 항의를 피해가고 있다. 아리랑 5호를 제작할 때 항우연은 적외선 카메라 기능을 갖춘 아리랑 3A호(무게 1t)도 함께 만들었다. 2009년 코스모트라스는 3A호의 발사도 수주했다. 그러나 5호 발사가 늦어져 3A호 발사도 올해에서 내년으로 순연될 전망이다.
항우연이 제대로 항의하려면 지금 같은 독립법인이 아니라 정부기구로 있는 것이 유리하다. 정부기구라면 러시아 우주청을 통해 러시아 국방부에 제대로 항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항공우주 선진국은 항공 관련 연구소를 정부기구로 유지한다. 대표적인 국가가 미국이다. 미국은 항공우주를 연구하고 개발하려고 1958년 항공우주국(NASA)을 만들었다. NASA는 연방수사국(FBI)이나 중앙정보국(CIA) 같은 연방정부기관이다. 이를 본받아 러시아, 이탈리아, 캐나다도 ‘우주청’을 만들었다.
아리랑이 촬영해 온 사진을 분석하는 항우연의 관제센터. 국가 안보와 직결된 중요 시설이다(위쪽). 소련의 대륙간 탄도미사일 R-36을 개조한 드네프르 발사체.
일본, 독일, 프랑스는 조금 다른 길로 갔다. 이들은 항공우주연구소와 항공 관련 기관을 묶어 우주항공연구기발기구(JAXA, 일본), 항공우주연구소(DLR, 독일), 국립우주연구센터(CNES, 프랑스)라는 독립법인을 만들었다. 이들은 정부기구는 아니지만 법인이어서 자체 결정권이 있다.
항우연의 현재 처지는 일본의 JAXA 등과 비슷한 독립법인이다. 이러한 항우연을 국가개발연구원에 통합시키겠다는 것이 국가과학위원회의 정책인 것이다.
항우연이 국가개발연구원에 통합되면 국가기밀이 공개될 위험도 있다. 위성 사업은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과 함께 하는 것이고, 나로호 같은 발사체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ADD) 등과 직간접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협조는 항우연이 독립법인이나 정부기관으로 있을 때 원활해진다. 국가개발연구원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들어가 있으면 층층시하의 행정단계를 거치면서 사업이 노출된다.
국가개발원 창설은 일본을 벤치마킹한 측면이 있다. 일본도 한국만큼 정부 출연연구소가 난립했다. 이 때문에 15개 연구소를 통합해 경제산업성 아래에 산업기술종합연구소를 만들고, 5개 연구소를 합쳐 문부과학성 산하에 이화학연구소를 창설했다. 그러나 JAXA와 일본원자력연구기개발기구만큼은 독립행정법인으로 유지했다. 우주개발과 원자력은 국익과 직결되는 것이라 통합으로 효율을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한국은 아직 우주 분야에서만큼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북한은 대포동을 쏘는 데 반해 한국은 나로호 발사에도 실패한 것이 그 증거다. 항공우주 분야를 발전시키려면 항우연을 미국의 NASA처럼 우주청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난립된 출연연구소를 줄인다는 이유로 항우연의 독립성을 해치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를 범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