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에 암 선고를 받은 아담(지프 고든 레빗 분).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담에게도 병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아담은 건강 생각하느라 술과 담배도 안 했고, 행여나 사고로 죽을까 봐 운전면허도 따지 않을 정도로 조심성을 두루 갖춘 남자다. 평소 자주 아프지 않았느냐고? 영화 첫 장면이 아담의 조깅 모습인데, 어느 모로 보나 그는 신체 건강한 20대 청년이다.
라디오 방송국 PD로 일하는 그의 고민이라면 청취율 바닥인 프로그램에 대한 묘책, 섹스 안 한 지 몇 주된 여자친구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는 정도가 전부다. 발음하기조차 힘든 ‘SchwannomaNeurofibro sarcoma(말초신경종양)’이란 병명을 받아 든 아담 역시 그랬다. 어안이 벙벙하다가,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마침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과 과정을 겪는다. 영화 ‘50/50’은 갑자기 환자가 돼버린 한 청년을 따라가는 아주 세심한 기록이다.
지금부터 당신의 머릿속을 스쳐갈 무수한 투병 영화는 잠깐 접어둬도 좋다. 이 영화에서는 아담이 암을 선고받은 즉시 죽기 전 꼭 해야 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거나, 헌신적인 여자친구와의 멜로가 아름답게 펼쳐질 일은 없다. 사무적인 태도로 의사가 내린 암 선고는 느닷없는 데다 그 이후엔 전혀 드라마틱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돼버린 ‘불행’이라는 현재, 익숙지 않은 그 불편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항암제를 투여하는 등의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는 것 외엔 별로 없어 보인다.
영화에 주목하게 만드는 건 아담의 암 선고 전후로 나뉘는 그와 주변의 관계들이다. 회사 동료들과의 송별파티에서 사람들은 짐짓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건투를 빌거나 위로를 전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일 뿐이다. 여자친구라고 다를 건 없다. 아담을 병원에 태워다 준 여자친구는 같이 병원에 들어가길 극구 거부한다. 그리고 변명하길, 바깥세계의 ‘좋은’ 에너지와 병원의 ‘나쁜’ 에너지가 섞이는 게 싫단다. 아담에 대한 엄마의 관심과 그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담의 신경전 역시 만만치 않다. 영화에는 아담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혹은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이미지가 많은데, 이는 그가 속해 있던 익숙한 풍경, 그리고 관계들로부터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아담의 엄연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50/50’이 택한 정서는 의외로 ‘코믹’이다. 병을 소재로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려는 요량 대신 웃음을 주려는 대범함이라니! 영화 ‘러브 스토리’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여자친구는 병에 걸린 남자친구에게 예의를 지키는 대신 바람피우는 걸로 화답한다. ‘절친’인 카일(세스 로건 분)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픈 친구를 이용해 오직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길 여자를 찾을 궁리만 한다. 병원에서 소개시켜준 심리치료사 역시 도움이 안 되긴 매한가지. 완전 초보 심리치료사인 캐서린(안나 켄드릭 분)은 이론에만 입각해 되레 환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 영화는 거침없는 대사와 저속한 표현도 별스럽지 않게 사용한다. 일상에 닥친 병 앞에서 그들 모두 일상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실용적 코미디’라고 정의하는 게 좋겠다.
‘50/50’의 이야기가 이토록 현실적인 데는 시나리오 작가 윌 라이저가 자기 경험담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꾸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영국 인기 TV쇼 ‘다 알리 지 쇼(Da Ali G. Show)’ 작가였던 그는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은 뒤 병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단절됐을 때의 고통을 시나리오로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투병 중에 시나리오를 집필하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 그를 독려해준 사람이 그의 절친이자 바로 영화 속 카일 역을 맡은 배우 세스 로건이다. 영화 속 카일의 캐릭터가 상당 부분 로건과 작가 경험담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담의 여자친구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보이며 아담을 독식하려는 듯 집착한다든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아담을 대하면서도 사려 깊게 그를 챙겨주는 좋은 친구로서의 면모가 매우 생생하게 그려진다. 오죽하면 ‘저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불어 암 환자가 겪는 심경의 변화, 그 고통의 순간들을 재현해내는 조지프 고든 레빗의 연기는 이 영화를 지지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아무래도 아담은 ‘인셉션’에서 무중력 공간에서의 결투 신을 남긴 원칙주의자 ‘아서’ 보다 한눈에 반한 여자와 사귀고 차이는 ‘500일의 썸머’ 속 순진한 남자 ‘톰’에 가까워 보인다. 바리캉을 들고 머리를 미는 장면에서 복잡한 심경을 전하는 그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좀체 오버하지 않는 몸짓과 태도로 그는 아담의 고통을 체화해낸다.
병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투병의 극적 효과보다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더 집착한다는 점에서 ‘50/50’은 기억할 만한 영화다. 의사가 선고한 살 확률과 죽을 확률 50대 50.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아담을 향해 카일은 그 말을 돌려서 해석해준다. “50대 50이라고? 카지노에선 최고의 확률이야!” 결국 50대 50은 물 컵의 반이 채워졌을까, 혹은 비었을까 같은 긍정과 부정의 선택지다.
‘50/50’은 수치로는 절대 구하기 힘든 삶의 철학과 태도에 대한 작은 해답을 구하는 영화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소소한 웃음으로 치장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눈물 쏙 뽑아내는 영화보다 여운이 남는다.
라디오 방송국 PD로 일하는 그의 고민이라면 청취율 바닥인 프로그램에 대한 묘책, 섹스 안 한 지 몇 주된 여자친구의 속마음을 알고 싶다는 정도가 전부다. 발음하기조차 힘든 ‘SchwannomaNeurofibro sarcoma(말초신경종양)’이란 병명을 받아 든 아담 역시 그랬다. 어안이 벙벙하다가, 억울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마침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순간과 과정을 겪는다. 영화 ‘50/50’은 갑자기 환자가 돼버린 한 청년을 따라가는 아주 세심한 기록이다.
지금부터 당신의 머릿속을 스쳐갈 무수한 투병 영화는 잠깐 접어둬도 좋다. 이 영화에서는 아담이 암을 선고받은 즉시 죽기 전 꼭 해야 할 버킷 리스트를 작성한다거나, 헌신적인 여자친구와의 멜로가 아름답게 펼쳐질 일은 없다. 사무적인 태도로 의사가 내린 암 선고는 느닷없는 데다 그 이후엔 전혀 드라마틱하지도, 극적이지도 않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현실이 돼버린 ‘불행’이라는 현재, 익숙지 않은 그 불편에 대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항암제를 투여하는 등의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는 것 외엔 별로 없어 보인다.
영화에 주목하게 만드는 건 아담의 암 선고 전후로 나뉘는 그와 주변의 관계들이다. 회사 동료들과의 송별파티에서 사람들은 짐짓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에게 건투를 빌거나 위로를 전한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일 뿐이다. 여자친구라고 다를 건 없다. 아담을 병원에 태워다 준 여자친구는 같이 병원에 들어가길 극구 거부한다. 그리고 변명하길, 바깥세계의 ‘좋은’ 에너지와 병원의 ‘나쁜’ 에너지가 섞이는 게 싫단다. 아담에 대한 엄마의 관심과 그 관심을 부담스러워하는 아담의 신경전 역시 만만치 않다. 영화에는 아담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혹은 소파에 혼자 앉아 있는 이미지가 많은데, 이는 그가 속해 있던 익숙한 풍경, 그리고 관계들로부터의 단절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아담의 엄연한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 ‘50/50’이 택한 정서는 의외로 ‘코믹’이다. 병을 소재로 하면서 눈물을 쏟아내려는 요량 대신 웃음을 주려는 대범함이라니! 영화 ‘러브 스토리’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바라지도 않는다. 여자친구는 병에 걸린 남자친구에게 예의를 지키는 대신 바람피우는 걸로 화답한다. ‘절친’인 카일(세스 로건 분)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아픈 친구를 이용해 오직 원 나이트 스탠드를 즐길 여자를 찾을 궁리만 한다. 병원에서 소개시켜준 심리치료사 역시 도움이 안 되긴 매한가지. 완전 초보 심리치료사인 캐서린(안나 켄드릭 분)은 이론에만 입각해 되레 환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이 영화는 거침없는 대사와 저속한 표현도 별스럽지 않게 사용한다. 일상에 닥친 병 앞에서 그들 모두 일상 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는 ‘실용적 코미디’라고 정의하는 게 좋겠다.
‘50/50’의 이야기가 이토록 현실적인 데는 시나리오 작가 윌 라이저가 자기 경험담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꾸렸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영국 인기 TV쇼 ‘다 알리 지 쇼(Da Ali G. Show)’ 작가였던 그는 갑작스럽게 암 선고를 받은 뒤 병 때문에 주변 사람들과 단절됐을 때의 고통을 시나리오로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투병 중에 시나리오를 집필하느라 많이 힘들었는데, 그때 그를 독려해준 사람이 그의 절친이자 바로 영화 속 카일 역을 맡은 배우 세스 로건이다. 영화 속 카일의 캐릭터가 상당 부분 로건과 작가 경험담에서 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담의 여자친구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보이며 아담을 독식하려는 듯 집착한다든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아담을 대하면서도 사려 깊게 그를 챙겨주는 좋은 친구로서의 면모가 매우 생생하게 그려진다. 오죽하면 ‘저런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더불어 암 환자가 겪는 심경의 변화, 그 고통의 순간들을 재현해내는 조지프 고든 레빗의 연기는 이 영화를 지지하는 가장 큰 동력이다. 아무래도 아담은 ‘인셉션’에서 무중력 공간에서의 결투 신을 남긴 원칙주의자 ‘아서’ 보다 한눈에 반한 여자와 사귀고 차이는 ‘500일의 썸머’ 속 순진한 남자 ‘톰’에 가까워 보인다. 바리캉을 들고 머리를 미는 장면에서 복잡한 심경을 전하는 그의 연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좀체 오버하지 않는 몸짓과 태도로 그는 아담의 고통을 체화해낸다.
병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투병의 극적 효과보다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더 집착한다는 점에서 ‘50/50’은 기억할 만한 영화다. 의사가 선고한 살 확률과 죽을 확률 50대 50. 곧 죽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 아담을 향해 카일은 그 말을 돌려서 해석해준다. “50대 50이라고? 카지노에선 최고의 확률이야!” 결국 50대 50은 물 컵의 반이 채워졌을까, 혹은 비었을까 같은 긍정과 부정의 선택지다.
‘50/50’은 수치로는 절대 구하기 힘든 삶의 철학과 태도에 대한 작은 해답을 구하는 영화다. 다소 밋밋하게 느껴질 소소한 웃음으로 치장했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가 눈물 쏙 뽑아내는 영화보다 여운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