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가 한숨을 길게 내뱉으며 말했다.
“개성공단은 황당한 곳이에요. 사기, 협잡이 판쳐요. 한국법도, 북한법도 적용 안 되는, 억울한 일 당해도 풀어줄 곳 없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연은 이렇다.
유통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2010년 11월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를 상대로 물품을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남북교류협력자 승인을 받은 B씨가 A씨 물건을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배달했다. A씨가 통일부 승인을 얻지 못한 터라 B씨에게 배송을 맡기고 수수료를 주기로 한 것이다.
A씨는 기득권을 가진 B씨에게 휘둘렸다. B씨가 A씨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물건을 납품했다. B씨는 A씨 물건으로 외상거래를 주로 했는데, 대금은 B씨가 설립한 D사 통장으로 입금됐다. A씨가 운영하는 C사는 D사로부터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적자가 누적됐다. A씨의 하소연.
“북한법인 간 일어난 일”
“B씨가 외상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기업은 오래전부터 거래해온 곳이라 미수금을 자연스럽게 회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간섭을 심하게 하면 대행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일종의 협박도 했습니다.”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하면 개성공단에서 독자적으로 일할 수 없다. 올해 5월 A씨가 남북교류협력자 승인을 받으면서 갈등이 본격화했다. A씨가 B씨에게 “지금부터 기업에 물건을 직접 배송하겠다”고 통보했다. 결별 선언이었다. B씨가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수금은 당신이 알아서 받아라. 손 떼겠다.”
B씨는 이후 외상으로 납품한 물건의 미수금을 회수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또한 일부 기업이 D사 계좌로 넣은 미수금을 A씨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A씨는 B씨를 형사 고소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보는 업무상 횡령 시비라고 하겠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고소사건을 맡은 E경찰서 형사 얘기를 들어보자.
“이런 사건은 처음 봐요. 탈북자가 얽힌 사기는 봤어도…. 이게 처리가 참 곤란해요.”
형사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관할권이 우리한테 없어요. 사건이 발생한 곳이 북한입니다. 게다가 C사, D사가 북한 법인이에요. D사의 한국 주소지가 우리 관할인지라 사건이 우리한테 온 겁니다. 사건을 일단 피고소인 집주소지 관할 경찰서로 넘기려고 해요. 그쪽도 난감할 겁니다. 사건은 간단한데, 북한법인 간 일어난 일이라….”
개성공단에서 사업하는 기업은 ‘북한 법인’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02년 제정한 개성공업지구법을 근거로 설립한 회사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협력해 개성공단을 운영하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도 형식상 북한 법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삼지만 현실적으로 휴전선 이북에서는 한국 법령을 적용할 수 없다. 이 같은 맹점을 악용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A씨처럼 피해를 입는 이가 늘었다.
“피해를 본 사람이 허다해요. 미수금을 안 줘도 문제 삼을 곳이 없으니 그런 겁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하소연도 해봤어요. 원칙적으론 북한 법원이 해결해야 한다면서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A씨가 운영하는 C사가 B씨 소유인 D사 측에 책임을 물으려면 원칙적으로 A씨는 북한 검찰소에 고발하거나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남측 기업 간 벌어진 일이니 남측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A씨가 B씨를 통해 납품한 물건 값을 내지 않은 입주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없다. 이때도 소장을 낼 곳이 없다. 기업들이 “못 주겠다”고 버티면 받아낼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 간 합의한 개성공단 관련 규정이 미비해 돈을 떼먹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래서 개성공단에선 남-남 갈등이 적지 않죠. 우리 같은 건실한 기업은 그런 짓 절대로 안 하지만요.”
관세사 F씨도 A씨와 비슷한 처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통관 업무를 처리해주고 못 받은 돈이 2년 동안 2억 원에 달합니다. 우리 말고도 피해자가 많아요.”
분식 회계도 일어난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03년 9월 ‘결정 1호’로 채택한 세금규정 29조(이윤이 나는 해부터 5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한다. 그다음 3년간은 50%를 덜어준다)를 우회하고자 한국 법인, 북한 법인이 서류상 거래를 통해 북한 법인의 이득을 줄이거나 적자가 나게끔 회계를 관리하는 것이다.
분쟁 해결방법 사실상 전무
또 다른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북한 근로자 임금을 체납한 업체도 있습니다. 전기요금을 안 내는 곳도 있고요. 북한당국이 어쩌질 못해요. 남측과의 관계 탓에 압류 같은 조처를 할 수 없죠. 개성공단 밖의 북한 업체에 임가공을 맡긴 기업도 있는데, 임가공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분쟁 해결 방법이 전무합니다. 지금은 남-남 간 분쟁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대로라면 남북 간 분쟁도 생겨날 겁니다.”
A씨와 B씨의 다툼으로 되돌아가보자. B씨는 기업체로부터 받은 미수금 일부를 A씨에게 주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A씨가 사업 승인을 얻자마자 배신한 것 아닙니까. 그 사람하곤 끝났다고 봤어요. 일부 미수금을 전하지 않은 건 제몫의 수수료를 챙긴 겁니다. 남은 미수금은 기업에서 직접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저도 피해자예요. 다른 업자한테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이렇듯 비(非)법지대다.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통한 중재 철차가 있으나 일부 거래에 국한한 데다 유명무실하다. 이렇게 내버려둬선 안 될 일.
중국, 대만은 ‘공공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단서 아래 양측 판결 효력을 서로 인정한다. 북한 법치 수준을 고려할 때 남북이 이런 합의를 하긴 어렵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한국 법원이 내린 판결 및 결정을 승인하고 집행하게끔 북한과 합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국 법원에서 나온다. 북한에 개성공단특별재판소 설치를 요구하고 이 재판소가 한국 법원의 결정 혹은 판결을 승인하게끔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개성공단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면 서두를 일이다.
“개성공단은 황당한 곳이에요. 사기, 협잡이 판쳐요. 한국법도, 북한법도 적용 안 되는, 억울한 일 당해도 풀어줄 곳 없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사연은 이렇다.
유통업체를 운영하던 A씨는 2010년 11월 개성공단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개성공단 입주업체를 상대로 물품을 납품하는 사업이었다. 남북교류협력자 승인을 받은 B씨가 A씨 물건을 개성공단 입주 기업에 배달했다. A씨가 통일부 승인을 얻지 못한 터라 B씨에게 배송을 맡기고 수수료를 주기로 한 것이다.
A씨는 기득권을 가진 B씨에게 휘둘렸다. B씨가 A씨 허락을 받지 않고 임의로 물건을 납품했다. B씨는 A씨 물건으로 외상거래를 주로 했는데, 대금은 B씨가 설립한 D사 통장으로 입금됐다. A씨가 운영하는 C사는 D사로부터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적자가 누적됐다. A씨의 하소연.
“북한법인 간 일어난 일”
“B씨가 외상으로 물건을 공급하는 기업은 오래전부터 거래해온 곳이라 미수금을 자연스럽게 회수할 수 있을 거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도 간섭을 심하게 하면 대행 업무를 중단하겠다고 일종의 협박도 했습니다.”
정부 승인을 받지 못하면 개성공단에서 독자적으로 일할 수 없다. 올해 5월 A씨가 남북교류협력자 승인을 받으면서 갈등이 본격화했다. A씨가 B씨에게 “지금부터 기업에 물건을 직접 배송하겠다”고 통보했다. 결별 선언이었다. B씨가 발끈하며 이렇게 말했다.
“미수금은 당신이 알아서 받아라. 손 떼겠다.”
B씨는 이후 외상으로 납품한 물건의 미수금을 회수하려 노력하지 않았다. 또한 일부 기업이 D사 계좌로 넣은 미수금을 A씨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A씨는 B씨를 형사 고소했다.
여기까지는 흔히 보는 업무상 횡령 시비라고 하겠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고소사건을 맡은 E경찰서 형사 얘기를 들어보자.
“이런 사건은 처음 봐요. 탈북자가 얽힌 사기는 봤어도…. 이게 처리가 참 곤란해요.”
형사가 허탈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관할권이 우리한테 없어요. 사건이 발생한 곳이 북한입니다. 게다가 C사, D사가 북한 법인이에요. D사의 한국 주소지가 우리 관할인지라 사건이 우리한테 온 겁니다. 사건을 일단 피고소인 집주소지 관할 경찰서로 넘기려고 해요. 그쪽도 난감할 겁니다. 사건은 간단한데, 북한법인 간 일어난 일이라….”
개성공단에서 사업하는 기업은 ‘북한 법인’이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02년 제정한 개성공업지구법을 근거로 설립한 회사다.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과 협력해 개성공단을 운영하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도 형식상 북한 법인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를 영토로 삼지만 현실적으로 휴전선 이북에서는 한국 법령을 적용할 수 없다. 이 같은 맹점을 악용하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A씨처럼 피해를 입는 이가 늘었다.
“피해를 본 사람이 허다해요. 미수금을 안 줘도 문제 삼을 곳이 없으니 그런 겁니다.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 하소연도 해봤어요. 원칙적으론 북한 법원이 해결해야 한다면서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A씨가 운영하는 C사가 B씨 소유인 D사 측에 책임을 물으려면 원칙적으로 A씨는 북한 검찰소에 고발하거나 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남측 기업 간 벌어진 일이니 남측 사람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A씨가 B씨를 통해 납품한 물건 값을 내지 않은 입주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도 없다. 이때도 소장을 낼 곳이 없다. 기업들이 “못 주겠다”고 버티면 받아낼 수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한 개성공단 입주기업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남북 간 합의한 개성공단 관련 규정이 미비해 돈을 떼먹으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해요. 그래서 개성공단에선 남-남 갈등이 적지 않죠. 우리 같은 건실한 기업은 그런 짓 절대로 안 하지만요.”
관세사 F씨도 A씨와 비슷한 처지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통관 업무를 처리해주고 못 받은 돈이 2년 동안 2억 원에 달합니다. 우리 말고도 피해자가 많아요.”
분식 회계도 일어난다.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2003년 9월 ‘결정 1호’로 채택한 세금규정 29조(이윤이 나는 해부터 5년간 기업소득세를 면제한다. 그다음 3년간은 50%를 덜어준다)를 우회하고자 한국 법인, 북한 법인이 서류상 거래를 통해 북한 법인의 이득을 줄이거나 적자가 나게끔 회계를 관리하는 것이다.
분쟁 해결방법 사실상 전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가 9월 30일 북한 개성공단 방문을 마치고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돌아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도 남북경협을 재확대할 때라는 주장이 나온다.
“북한 근로자 임금을 체납한 업체도 있습니다. 전기요금을 안 내는 곳도 있고요. 북한당국이 어쩌질 못해요. 남측과의 관계 탓에 압류 같은 조처를 할 수 없죠. 개성공단 밖의 북한 업체에 임가공을 맡긴 기업도 있는데, 임가공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분쟁 해결 방법이 전무합니다. 지금은 남-남 간 분쟁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대로라면 남북 간 분쟁도 생겨날 겁니다.”
A씨와 B씨의 다툼으로 되돌아가보자. B씨는 기업체로부터 받은 미수금 일부를 A씨에게 주지 않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A씨가 사업 승인을 얻자마자 배신한 것 아닙니까. 그 사람하곤 끝났다고 봤어요. 일부 미수금을 전하지 않은 건 제몫의 수수료를 챙긴 겁니다. 남은 미수금은 기업에서 직접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저도 피해자예요. 다른 업자한테 비슷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개성공단은 이렇듯 비(非)법지대다. 남북상사중재위원회를 통한 중재 철차가 있으나 일부 거래에 국한한 데다 유명무실하다. 이렇게 내버려둬선 안 될 일.
중국, 대만은 ‘공공질서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단서 아래 양측 판결 효력을 서로 인정한다. 북한 법치 수준을 고려할 때 남북이 이런 합의를 하긴 어렵다.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한국 법원이 내린 판결 및 결정을 승인하고 집행하게끔 북한과 합의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국 법원에서 나온다. 북한에 개성공단특별재판소 설치를 요구하고 이 재판소가 한국 법원의 결정 혹은 판결을 승인하게끔 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개성공단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라면 서두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