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근교의 한글학교 캠프에서 벌였던 독도레이서의 사물놀이 공연.
물론 이러한 찬사와 수식어구가 국경을 넘는 순간부터 피부에 와 닿았던 것은 아니다. 6월 7일 저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발해 파리까지 18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한 탓에 독도레이서 대원 대부분이 국경을 넘는 순간 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의 테두리 안에 있는 프랑스로 이동하는 데는 여권 확인 같은 국경 통과 절차가 사실상 거의 없었다.
다만 버스 안에서 눈을 붙이는 사이사이 시야에 들어온 탁 트인 밀밭과 손끝에 느껴지는 서늘한 공기로 기후가 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고, 간신히 익숙해진 스페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쓰인 표지판을 보면서 비로소 이곳이 프랑스임을 실감했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지명이 쓰인 표지판이 몇 개 지나자 마침내 파리 시내가 눈앞에 펼쳐졌다.
유난히 학교와 인연이 많았던 프랑스에서의 일정. 첫날부터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파리 한글학교로 직행했다. 교실을 가득 메운 아이의 상당수는 하얀 피부와 짙은 쌍꺼풀, 옅은 머리색에 가늘고 긴 체형을 지녔다. 페루와 아르헨티나의 한글학교에 주재원 자녀가 많았다면, 이곳에는 프랑스에 유학 온 학생이 현지인과 결혼해 낳은 아이가 많았다. 이 아이들은 우리 눈에는 서양인으로 보이지만 정작 현지인 학교에서는 동양인과 닮은 외모 때문에 ‘타자’로 간주돼 마음고생이 심하단다. 현지인 학교에서는 잔뜩 위축돼 있다가 한글학교에 올 때만 활발한 아이도 있다고 한다. 한글학교는 단순히 한글과 한국 문화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이들이 마음의 안식을 얻는 소중한 보금자리인 셈이다.
‘한국인 핏줄에 자부심’ 메시지 전달
독도레이서는 6월 11일(토요일)부터 13일까지 파리 근교 셉튀르의 한글학교 캠프에 참여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1년에 한 번 프랑스의 한글학교들이 모이는 캠프에 보조교사로 참여한 우리는 아이들과 어울리며 그들에게 평소 접하기 어려운 한국 전통문화를 전하는 구실을 맡았다. 캠프 일정은 아이들이 사물놀이를 배우고 수묵화로 부채를 꾸미며 칠교놀이 등을 하면서 한국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프랑스 사회에서 한국계라는 이유로 불안을 겪는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서적 유대감을 심어주고, ‘너희 핏줄에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이다. 경험 부족으로 이러저러한 실수를 연발한 2박 3일이었지만, 아이들과 부대낀 보람이 있었는지 많은 친구가 “한국에 가면 탈춤과 사물놀이를 꼭 배우고 싶다”는 소감을 말해 가슴이 따뜻해졌다.
여기서 만난 아이들과의 인연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300km 정도 떨어진 도시 디종에서도 이어졌다. 캠프에 참가했던 안과 시모가 사는 디종에서 교민들의 도움으로 홈스테이를 하며 독도 홍보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디종은 겨자와 마요네즈로도 유명하지만, 보르도 와인과 함께 프랑스 와인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부르고뉴 와인의 생산지로 널리 알려졌다. 우아한 맛 덕에 ‘와인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얻은 부르고뉴 와인은 와인 열풍이 불었던 한국에서도 수요가 껑충 뛰었다.
디종에서 본으로 이어지는 국도 옆에는 ‘황금언덕’이라 부르는 포도밭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급으로 손꼽히는 밭 그랑크뤼에서 생산하는 와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부르고뉴 와인의 얼굴인 로마네콩티다. 최고의 와인을 생산한다는 이 지역 사람들의 자부심은 엄격한 품질 관리로 이어진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조화를 이뤄야 제맛을 낸다는 부르고뉴 와인을 위해 사람들은 무릎 높이의 포도밭을 엉금엉금 기어 다니며 손으로 포도를 한 알 한 알 따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가 방문한 지하의 와인 저장고는 온도와 습도가 철저히 관리될 뿐 아니라, 풍부한 맛을 위해 거미줄과 곰팡이까지 그대로 두었다. 전통과 자부심을 지켜려는 이 지역 사람들의 고집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한글학교 캠프에서 함께 한 아이들.
와인에 조예가 깊은 현지 교민의 도움으로 부르고뉴 와인을 시음할 기회를 얻었다. 불빛으로 색을 비추고 코끝으로 향을 즐기며 입안에서 혀로 굴려 열다섯 종류의 와인을 맛본 우리는 이날 마지막 일정으로 마을에서 열린 포도축제에 참석했다. 영화에서나 보던 유럽 시골의 아름다운 전원 풍경, 그 가운데에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 제각기 마련한 음식을 선보이고 있었다. 우리는 지은 지 400년이 훌쩍 넘은 저택의 정원에서 준비해간 공연을 하며 프랑스 시골 마을에 독도와 한국의 이름을 알렸다.
이곳에서의 진귀한 경험은 우리를 환대해준 수많은 사람 덕분에 가능했다. 특히 남녀로 나뉘어 홈스테이를 하면서 프랑스 가정의 일상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여학생들이 머물렀던 집에는 레비나스의 현상학을 전공하는 안주인과 미술품을 수집하는 남편, 피아노와 첼로를 연주하는 두 아들 덕분에 예술의 향기가 가득했다. 남학생들은 한국에서 입양한 세 아들을 길러낸 베르나르 아저씨 집에서 묵었다. 한국에 대한 무한 애정을 지닌 아저씨를 위해 디종을 떠나기 전날 가야금 산조를 연주했다. 쉴 새 없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아저씨는 “우리 집이 경복궁이네!”라며 기뻐했다.
처음에 우리는 살인적인 물가와 엄격한 경찰을 우려해 프랑스에서의 일정을 사흘 남짓으로 짧게 잡았다. 특히 파리에서는 숙박비 때문에 반나절만 머물고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독도와 한국 문화를 알리겠다는 취지에 공감한 많은 분의 도움으로 2주로 늘어났다. 독도레이서는 6월 21일 ‘음악인의 날’을 맞아 파리의 퐁피두센터 앞에서 교민, 외국인으로 구성된 사물놀이패 ‘얼쑤’와 함께 합동공연을 벌이며 프랑스 일정을 마무리했다. 다채로운 경험과 따뜻한 도움으로 풍요로웠던 프랑스는 이제 우리에게도 ‘아름다운 나라’로 남았다.
* 독도레이서 팀은 6개월간 전 세계를 여행하며 아름다운 섬 ‘독도’를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