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큰하고 시원한 짬뽕. 고추의 매운맛에만 기댈 것은 아니다.
짬뽕은 일본어에서 온 말이다. ‘한 곳에 뒤섞는다’는 뜻의 잠퐁(ちゃんぽん)이 어원이다. 17세기 일본 나가사키에서 한 중국인이 동서양의 식재료를 한데 섞어 만든 음식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그럼 일본의 음식인가?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조리법이 중국의 것이니 중국에도 이런 류의 음식이 있다. ‘이런 류’란 식재료를 볶다가 육수를 더해 국물을 얻는 방식을 말한다. 면 요리인 우동(가락국수)이 짬뽕과 나뉘는 지점이 바로 이 조리방식의 차이다. 우동은 고기, 채소 등의 재료를 육수에 넣고 끓여서 국물을 얻는다.
우리가 짬뽕이라 부르는 음식과 조리법이 가장 비슷한 중국음식은 차오마멘(炒碼麵)이다. 이 차오마멘에는 해산물이 안 들어간다 해서 우리 짬뽕과 다른 음식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음식의 동일성 또는 유사성은 대체로 조리법에서 찾아야 한다. 식재료를 볶다 육수를 넣고 여기에 면을 더하는 조리법을 쓰면 그 식재료가 어떤 것이든 짬뽕이며, 또 차오마멘인 것이다.
요즘 외식업계에 짬뽕이 유행이다. 식재료를 다양화해서 여러 종류의 짬뽕을 낸다. 탕수육 정도는 있는데, 자장면은 없고 짬뽕만으로 채워진 메뉴 구성이 재미있다. 그런데 그 메뉴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아주 매운 짬뽕’이다. 어떤 식당에서는 사람들이 도저히 먹어내지 못할 정도로 맵게 내고, 이것이 입소문이 나면서 대박 식당으로 등극하기도 한다. 이런 짬뽕 가게들을 살펴보면 매운 떡볶이나 매운 라면을 파는 식당들과 비슷하다. 무조건 맵게 만들어 화제가 되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런 음식은 특별한 조리법이 있는 게 아니다. 태국이나 베트남산 매운 고추를 더하거나 시판 가공식품인 ‘캡사이신’을 듬뿍 넣을 뿐이다. 참 ‘무식한’ 음식이다.
매운맛을 내는 식재료는 고추만 있는 것이 아니다. 후추도 맵고 초피도 맵다. 그런데 그 매운 감각이 조금 다르다. 고추의 매운맛은 입 안을 찌르듯이 자극하는 맛이고, 후추와 초피는 입 안을 마비시키는 듯하다. 고추를 ‘맵다’고 표현한다면 후추와 초피는 ‘얼얼하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중국인들은 이 두 종류의 맛을 잘 다룬다. 그들은 두 가지 맛을 한곳에 섞어 마라(麻辣)라고 한다. 마(麻)는 ‘얼얼하다’는 뜻이고 라(辣)는 ‘맵다’는 뜻이다. ‘마’를 얻는 식재료는 ‘화초’라 불리는 중국의 초피이며, ‘라’는 고추에서 얻는다. 이 둘을 적절히 배합하면 맵고 얼얼한 느낌이 묘하게 증폭된다.
짬뽕을 먹다 보면 간혹 고추의 매운맛에만 기대지 않고 화초의 얼얼함을 넣은 중국집을 발견한다. 이런 짬뽕은 속이 훈훈해지고 이마에 땀이 나지, 그 매운맛으로 입 안이 아프거나 하지 않는다. 기분 좋은 매운맛인 것이다. 대체로 화상들이 운영하는 중국집 짬뽕에서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다. 그들에게는 화초를 쓰는 것이 고추 쓰는 것만큼 일반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짬뽕 붐이라지만 그 맛을 보면 고추 매운맛에 짜기만 한 것이 대부분이다. 불 맛을 더하는 짬뽕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단지 고추의 매운맛에만 기대는, 심지어 가공 캡사이신으로 독한 매운맛을 내는 짬뽕을 만날 때면 짜증이 나기도 한다. 중국의 화초는 한국 초피보다 맛에서 한 수 아래다. 초피는 화초보다 얼얼함이 더 있고 레몬 향까지 있어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한국에서 ‘짬뽕 좀 한다’는 소리 들으려면 맵고 얼얼한 맛을 내는 식재료에 대한 눈부터 키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