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과 봄이 송어회 제철이다. 맑은 물에 키운 1년짜리 햇송어를 ‘볶은 콩가루 양념’에 비비는 것은 송어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생활정보 월간지의 데스크 노릇을 할 때였다. 요리 원고를 대할 때마다 속이 울렁거리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갖은 양념이다. 기자들이 요리 선생에게서 받아온 한국음식 조리법을 보면 꼭 ‘갖은 양념을 한다’는 구절이 있다. 정확한 정보를 독자에게 알려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던 나는 담당기자에게 매번 쓴소리를 날려야 했다.
“이 갖은 양념이 대체 무엇이냐. 시장에서 ‘갖은 양념’이란 걸 파느냐. 간장과 마늘만 넣어도 갖은 양념이냐. 참기름, 파, 깨소금까지 들어가야 하느냐. 고춧가루는 얼마나 들어가야 하느냐. 풋고추 다져 넣으면 고추다짐이 되는 것이냐. 생강에 청주, 사이다가 들어가면 또 뭐라 해야 하느냐.”
이러면 기자가 요리 선생에게 물어온 답이란 것이 “입맛에 따라 간장,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파 따위를 적당히 섞은 것이고, 그리 써놓으면 독자들은 자기 입맛에 따라 음식을 만들게 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도였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적당히 입맛에 맞춰 양념해 먹으라 하면 요리 선생이 왜 필요한가. 그 음식에 ‘꼭 맞다’고 생각하는 요리법 하나를 제시하고 난 다음 “이것저것 넣고 빼도 됩니다” 하는 응용편이 나와야 할 게 아닌가.
한국음식 요리법을 보면 이 갖은 양념이 곳곳에 나온다. 나는 갖은 양념의 두루뭉술함에 진력났다. 간장, 마늘, 참기름, 고춧가루, 파, 생강, 깨 등은 다 각각의 맛이 강렬하다. 이 중에 하나 또는 둘, 셋이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에 따른 맛 차이를 무시하라니…. 음식을 대충 만들어 먹으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한국음식 요리법을 두고 ‘아날로그적’이다, ‘먹는 자의 입에 맞춘 맞춤요리법’이라는 등의 말을 할 것이 뻔하다. 갖은 양념이라는 요리법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갖은 양념의 한국 요리는 아무것이나 얼버무려 먹는 하급의 입맛에 봉사할 뿐이다.”
송어회 이야기에 갖은 양념을 길게 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이 두루뭉술하게 얼버무리는 요리법으로 인한 폐해가 송어회에도 옮겨와 있으며, 송어회 먹는 법을 보면 한국인들의 갖은 양념 습성이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맛있는 송어회란 어떤 것을 말하는지도 알 수 있다.
강원도 여행길에 송어회 먹는 일이 많다. 언제부터인지 볶은 콩가루에 초고추장, 채소를 더해 송어회를 비벼 먹는 방법이 크게 번졌다. 송어회는 으레 이렇게 먹는 것이라 여기며 송어회 단독으로 먹을 수 있게 내는 양념은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볶은 콩가루에 초고추장, 채소에 비벼 먹는 송어회가 맛있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이는 송어회가 맛있는 게 아니라 양념이 맛있는 것이다. 볶은 콩가루의 고소함과 초고추장의 달고 새콤한 맛, 채소의 아삭함이 어우러지는데 그 안에 무엇을 넣은들 맛없다 할 것인가. 밥만 넣고 비벼도 맛있다고 먹을 것이다. 맛있으니, 이 양념법이 최상이 아니겠느냐고? 그러면 송어회는 왜 먹는 것일까. 그 안에 송어가 들었든, 숭어가 들었든, 참치 뱃살이 들었든, 망둥어가 들었든 양념으로 거의 같은 맛을 내는데 왜 송어회를 먹는다고 앉아 있는 것일까.
송어는 양식장의 환경과 연령에 따른 맛 차이가 크다. 계절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송어는 냉수성 어종으로 사철 찬물을 얻을 수 있는 지역이 아니면 살이 무르다. 또 음식으로 내기 전 사료 냄새를 없애기 위해 먹이를 주지 않고 맑은 물에 며칠간 내버려둬야 한다. 횟집 어항에 송어가 갇혀 있다면 맛있는 송어회는 기대할 수 없다. 송어가 가장 맛있는 철은 겨울에서 봄까지다. 이때 살이 단단하고 고소한 맛이 강하다. 또 만 1년 된 송어가 가장 맛있다. 이를 ‘햇송어’라 한다. 봄을 넘기고 2년째로 접어들면서 암수 성징이 나타난 송어는 ‘묵은 송어’라고 한다. ‘묵은 송어’는 맛이 덜해 낚시터 등에 ‘레저용’으로 내보낸다. 맑은 물에 키운 제철 햇송어 맛을 보면 송어 횟집에서 ‘볶은 콩가루 양념법’을 왜 퍼뜨렸는지 알게 될 것이다. 간장만으로도 환상의 맛을 낸다.
음식은 재료에 이미 그 맛이 있으며, 요리란 그 음식재료가 질이 떨어질 때 부리는 술수일 때가 많다. 양념이 적을수록, 갖은 양념을 안 쓸수록 맛은 살아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