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왜 12월에 더 보고 싶을까. 이와이 순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도 순백의 이미지 위에 첫사랑의 기억을 펼쳤다. 영원에 매장된 첫사랑은 첫눈에 새겨진 발자국처럼 선명하다. 제 모습을 간직한 채 얼어 있는 잠자리는 가을의 추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렇게 첫사랑은 날개 하나 다치지 않은 가을 잠자리처럼 머리에 보관된다. 그렇다면 왜 12월엔 첫사랑이 생각날까. 어쩌면 남아 있는 달력 한 장에 대한 불안이, 첫사랑에서 1년 더 멀어진다는 안타까움이 12월을 과거지향적 자기연민에 빠지게 하는지 모른다. 첫사랑이란 지극히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나’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장유정 감독의 ‘김종욱 찾기’는 첫사랑이라는 흔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사고뭉치 무대감독 서지우는 첫사랑을 핑계로 청혼을 거부한다. 그러자 현직 군인인 아버지는 “그놈의 첫사랑 만나나 보자”며 첫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등 떠민다.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무소 소장 한기준은 이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시작한 ‘청년실업가’다. 실업가라고는 하지만 실업자 꼴에 더 가깝다. 지나친 꼼꼼함 때문에 직장에서도 견뎌내지 못한 이 남자는 딱 봐도 답답한 샌님이다. 2대 8 가르마에 손이라도 베일 듯 날카롭게 다려진 양복, 뭐 하나 물 샐 틈 없어 보인다.
영화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처럼 전혀 다른 남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첫사랑 김종욱을 찾는답시고 사방팔방 돌아다니지만 찾고 보면 ‘김종묵’이고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다. 급기야 산속에 산다는 유사 정보의 인물을 찾기 위해 무박2일 코스까지 감행한다. 남자는 음료수, 과자, 심지어 쌀까지 챙겨오지만 여자는 달랑 배낭 하나만 메고 온다. 남자는 여자에게 동네 약수터 가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여자는 백두대간 종주라도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남녀가 조금씩 상대의 빈 곳을 발견하며 애정으로 채워간다. ‘김종욱 찾기’는 몇몇 새로운 코드로 낡고,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계승한다. 새 코드 중 하나는 여자와 첫사랑이다. 대개 첫사랑은 남자의 발목을 붙잡는 아름다운 알리바이로 활용된다. 그런데 이번엔 여자다. 지우는 인도 여행 중에 만난 김종욱이라는 남자를 알리바이로 현재의 모든 사랑을 유예한다. 사실 여행지의 하룻밤만큼이나 낭만적인 변명이 또 있을까. 지우에게 ‘김종욱’은 고유명사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날리는 머리카락, 달콤한 땀냄새, 내 팔에 닿던 맨살의 감촉과 같은 추상적 체감으로 추억된다.
첫사랑은 이렇듯 이름이나 숫자가 아니라, 정확히 환기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남는다. 그래서 첫사랑은 신화화되기 쉽다. 신화는 증명 가능한 숫자가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열망에 의해 만들어지니 말이다. ‘김종욱 찾기’는 관객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이 순진한 열망과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현재의 열정을 잇는 데 성공한다.
뮤지컬이 원작이지만, 뮤지컬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방식을 거절한 것도 성공의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독립적 작품으로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병역을 마친 공유는 완벽한 첫사랑과 모자란 찌질남 사이를 오가며 배우로서의 성장을 예감케 한다. 너무 마른 몸이 안쓰럽지만 털털한 순정파로 임수정이 보여주는 연기도 탁월하다.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아”라며 벤치에 앉아 울컥 눈물 흘리는 임수정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확인해준다.
연애는 새로울 것 없지만 해도 해도 새로운 즐거움은 있다. 이 모순과 역설 가운데 날마다 업데이트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사랑하라, 그러면 즐겁지 아니한가. 달콤, 발랄,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 ‘김종욱 찾기’다.
장유정 감독의 ‘김종욱 찾기’는 첫사랑이라는 흔한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사고뭉치 무대감독 서지우는 첫사랑을 핑계로 청혼을 거부한다. 그러자 현직 군인인 아버지는 “그놈의 첫사랑 만나나 보자”며 첫사랑을 찾아 나서라고 등 떠민다. 첫사랑을 찾아주는 사무소 소장 한기준은 이 말도 안 되는 사업을 시작한 ‘청년실업가’다. 실업가라고는 하지만 실업자 꼴에 더 가깝다. 지나친 꼼꼼함 때문에 직장에서도 견뎌내지 못한 이 남자는 딱 봐도 답답한 샌님이다. 2대 8 가르마에 손이라도 베일 듯 날카롭게 다려진 양복, 뭐 하나 물 샐 틈 없어 보인다.
영화는 여느 로맨틱 코미디처럼 전혀 다른 남녀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첫사랑 김종욱을 찾는답시고 사방팔방 돌아다니지만 찾고 보면 ‘김종묵’이고 알고 보니 다른 사람이다. 급기야 산속에 산다는 유사 정보의 인물을 찾기 위해 무박2일 코스까지 감행한다. 남자는 음료수, 과자, 심지어 쌀까지 챙겨오지만 여자는 달랑 배낭 하나만 메고 온다. 남자는 여자에게 동네 약수터 가느냐고 비아냥거리고 여자는 백두대간 종주라도 하느냐고 반문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남녀가 조금씩 상대의 빈 곳을 발견하며 애정으로 채워간다. ‘김종욱 찾기’는 몇몇 새로운 코드로 낡고, 오래된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를 계승한다. 새 코드 중 하나는 여자와 첫사랑이다. 대개 첫사랑은 남자의 발목을 붙잡는 아름다운 알리바이로 활용된다. 그런데 이번엔 여자다. 지우는 인도 여행 중에 만난 김종욱이라는 남자를 알리바이로 현재의 모든 사랑을 유예한다. 사실 여행지의 하룻밤만큼이나 낭만적인 변명이 또 있을까. 지우에게 ‘김종욱’은 고유명사를 지닌 사람이 아니라 날리는 머리카락, 달콤한 땀냄새, 내 팔에 닿던 맨살의 감촉과 같은 추상적 체감으로 추억된다.
첫사랑은 이렇듯 이름이나 숫자가 아니라, 정확히 환기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남는다. 그래서 첫사랑은 신화화되기 쉽다. 신화는 증명 가능한 숫자가 아니라 기억하고 싶은 열망에 의해 만들어지니 말이다. ‘김종욱 찾기’는 관객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이 순진한 열망과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은 현재의 열정을 잇는 데 성공한다.
뮤지컬이 원작이지만, 뮤지컬을 고스란히 가져오는 방식을 거절한 것도 성공의 요인 중 하나로 보인다.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독립적 작품으로서,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병역을 마친 공유는 완벽한 첫사랑과 모자란 찌질남 사이를 오가며 배우로서의 성장을 예감케 한다. 너무 마른 몸이 안쓰럽지만 털털한 순정파로 임수정이 보여주는 연기도 탁월하다. “모든 게 다 끝난 것 같아”라며 벤치에 앉아 울컥 눈물 흘리는 임수정의 모습이 이 영화에서 두 배우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새삼 확인해준다.
연애는 새로울 것 없지만 해도 해도 새로운 즐거움은 있다. 이 모순과 역설 가운데 날마다 업데이트되는 로맨틱 코미디의 비밀이 있지 않을까. 사랑하라, 그러면 즐겁지 아니한가. 달콤, 발랄,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 ‘김종욱 찾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