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쌀이면 아주 조금의 소금만 넣으면 된다. 설탕도 안 들어간다. 요즘의 떡은 소금간이 강하고 감미료까지 들어간다. 원료인 쌀가루가 질이 떨어지니 짠맛과 단맛으로 맛있는 듯이 느끼게 하는 것이다.
내가 떡보다. 떡집 앞을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다. ‘뭐 맛난 떡 없나’ 꼼꼼히 살피고 맛있겠다 싶은 떡이 있으면 꼭 산다. 특히 고운 색의 백설기 앞에서는 넋을 놓게 된다. 첫입에 달콤한 떡 냄새가 훅 끼치고 침과 함께 이내 스르르 풀리는 그 맛을 어디에 비길 것인가. 고소한 콩고물에 굴린 인절미는 또 어떤가. 쫀득한 듯싶지만 몇 번의 저작으로 부드럽게 풀리는 그 촉감이란!
그러나 그렇게 기대를 잔뜩 안고 산 떡을 다 먹은 적이 별로 없다. 한두 입 먹고는 비닐봉지에 둘둘 말아 던져놓았다가 곰팡이가 피어버리기 일쑤다. 내 입이 짧아서가 아니다. 대체 떡이 이렇게 맛없을 수가 있는가. 백설기는 심하게 짜고 달며, 찌든 기름내가 풀풀 나는 게 예사다. 부드러움이라곤 아예 없어 마분지 씹는 느낌이다. 인절미는 쭉쭉 늘어지는 쫄깃함 없이 오래된 가래떡처럼 뚝뚝 끊어지며 한참을 씹어도 단맛이 없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떡보들은 슬프고, 슬프다.
떡은 쌀 또는 찹쌀로 빚는다. 찹쌀에 비교해, 쌀을 멥쌀이라고도 한다. 찹쌀은 시루에 쪄서 떡판에 올린 후 떡메로 쳐서 떡을 만든다. 쫄깃한 식감이 있어 찰떡이라 한다. 인절미가 대표적인 찰떡이다. 쌀, 즉 멥쌀은 물에 불려서 가루를 낸 후 찌는 것이 일반적이다. 쌀가루에서 쪄낸 상태의 것을 시루떡이라 하고, 이를 다시 치대어 길쭉하게 뽑은 것을 가래떡이라 한다. 시루떡의 대표가 백설기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떡을 먹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삼국시대 유물 중 유독 많은 것이 시루임을 확인할 수 있다. 곡물을 가루 내거나 그 알곡을 쪄서 먹은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다. ‘삼국유사’에도 밥보다 떡에 관한 일화가 먼저 나온다. 서기 17년 남해왕이 죽자 노례와 탈해가 서로 왕위를 놓고 양보를 하는데, 탈해가 성지인(聖智人)은 치아가 많다고 하니 떡을 물어 시험하자고 제안한다. 우리 조상들이 쌀로 밥을 지어 일상식으로 먹기 시작한 것은 고려시대로 추정한다. 밥보다 떡이 더 오래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음식인 것이다. 따라서 밥보보다 떡보가 더 오랜 역사를 지닌 셈이다.
이 유구한 한반도의 떡보들이 근래 들어 ‘슬픔의 떡’을 줄곧 먹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쌀가루 때문이다. 쌀가루로 떡을 만든다고? 그렇다! 시중의 많은 떡이 공장에서 가공한 쌀가루로 빚어진다. 수입쌀과 장기간 저장한 국산 쌀이 쌀 분쇄 공장으로 넘어가고, 이 쌀은 떡 가공용으로 곱게 가루로 만들어져 떡집이나 떡공장으로 팔린다. 쌀을 물에 불리고 분쇄하고 하는 과정을 줄여주니 떡집이나 떡공장 처지에서는 인건비, 연료비, 물값, 기자재 구입비 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쌀을 분쇄, 운송, 보관하면서 버려지는 게 있는데, 바로 떡 맛이다. 분쇄 공장에서는 쌀의 전분이 변성되지 않게 습식으로 분쇄한다고 하지만 고운 입도의 쌀가루를 짧은 시간에 다량으로 생산하다 보니 분쇄기 안의 온도가 올라가고, 따라서 전분에 손상이 오게 마련일 것이다. 또 보관과 이동 중에도 전분이 손상될 것이다. 이렇게 전분이 변성된 쌀가루로 떡을 하면 백설기와 시루떡은 퍽퍽해 마분지 씹는 느낌이 들게 된다. 가래떡과 절편은 또각또각 잘게 조각나 입안에서 겉돌게 된다. 또 찹쌀떡은 부드러운 찰기 없이 뻐득뻐득해진다.
또한 떡이 심하게 짜고 단 것은 쌀가루가 여러 이유로 해서 자연스러운 떡의 단맛을 낼 수 없자 소금과 감미료를 잔뜩 넣어 그런 것이다. 여기에 찌든 기름내까지 나는 떡을 만나게 되면 떡보들은 절망 수준에 이른다. “한반도 수천 년 역사 중 이처럼 떡 맛이 형편없었던 시대는 없었을 거야!”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쌀은 남아돈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