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개지고 뿌옇게 바랜 사진도 블러 제거 기술만 있으면 선명한 ‘잘 찍은 사진’이 된다.
‘블러 제거 시스템’도 낡은 영상엔 맥 못 춰
“영상이 흔들리는 이유는 촬영하는 순간 카메라가 살짝 움직였기 때문이에요. 화소 하나당 영사 정보가 하나만 입력돼야 하는데 카메라가 흔들리면서 한 화소에 여러 개의 영상 정보가 겹쳐 사진이 뿌옇게 나타나는 거죠. 카메라의 움직인 경로를 찾아내면 이를 역추적해 사물의 원래 윤곽을 알아내는 거예요.”
절로 감탄이 나왔다. 원본 사진은 초점이 안 맞아 큰 글씨도 읽기 힘들 만큼 뭉개졌는데, 이 교수가 개발한 블러 제거 기술을 이용하자 3초 만에 작은 글씨도 또박또박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찍은 사진’이 됐다.
이 교수는 4년 전 중국 베이징에서 야경 사진을 찍다 블러 제거 기술 개발을 결심했다. 주변이 어두워 노출이 부족한 까닭에 셔터 스피드가 느려지다 보니 자꾸 카메라가 흔들려 야경을 고스란히 담을 수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탓하기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순 없을까”를 고민하다 “아무리 못 찍은 사진이라도 소프트웨어로 블러를 제거하면 좋은 사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 12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컴퓨터그래픽 분야의 최고 학술대회인 ‘시그래프 아시아 2009’에서 이 기술을 처음 공개했다.
이후 이 교수에게 CCTV 영상 복원을 부탁한 경찰이나 억울한 이가 많았다. 하얗게 빛이 바래고 엉망으로 뭉개진 CCTV가 범인을 잡을 유일한 증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제 이 교수는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부탁한 CCTV 영상을 분석해 범인의 자동차 번호판을 인식해줬다. 하지만 부탁받은 영상 중 대부분은 복원에 실패했다. 소프트웨어가 발전 단계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찰 측에서 건넨 자료가 대부분 너무 낡은 탓이다.
“번호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사진이 작거나 화질이 안 좋고 잡음이 너무 많으면 사진에 남아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어 복원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CCTV 대부분 정말 노후하더군요. 해상도는 낮고 화면도 선명하지 않고요.”
그런데도 “왜 미드(미국 드라마) 보면 다 되던데 우리는 안 되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야속하다. 이 교수는 “미드에 나오는 기술은 대부분 전 세계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라며 “블러 제거 등 계산사진학 분야는 우리나라가 최고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높은 검거율을 위해서 단순히 블러 제거 기술 등 소프트웨어 개발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즉 CCTV부터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