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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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 사건마다 김정일 등장 긴장 극대화 통해 권력 세습

6·25 이후 470여 건 북한 도발 의미와 小史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0-11-29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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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발 사건마다 김정일 등장 긴장 극대화 통해 권력 세습

    생포된 남파간첩 김신조(가운데)가 사살된 간첩 신원을 파악하고 있다.

    북한은 휴전 이후 지금까지 지상·해상·공중·해외 등에서 모두 470여 건의 도발을 벌였다. 대통령 암살 시도부터 무장공비 남파, 민간인 납치, 해전(海戰)까지 그 방법도 다양했다.

    △1967년 1월 19일 남한 해군함 해안포 공격 침몰

    동해 휴전선 근해에서 북한 해안선으로 접근하는 남측 어선을 저지하려던 우리 해군 당포함이 북한 동해안 동굴포대의 해안포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승무원 79명 중 3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 당시 정부는 보복을 구상했으나 작전권이 없어 보복 공격을 할 수 없었고, 결국 1968년 우리 어선이 동해안에서 북위 38도 30분 이상 올라가지 못하도록 어로 한계선을 설정하는 데 그쳤다.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시도, 31명 무장공비 남파

    북한 특수부대 124군부대 소속 31명의 무장군인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 암살 지령을 받고 휴전선을 넘어 청와대 뒷산까지 침투했다. 무장군인 30명을 사살했고 김신조만 생포했다. 북한이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선전선동부 과장이던 김정일(26)을 후계자로 부상시키는 과정에서 한국 안보 뿌리를 흔들고자 기도한 사건.



    △1968년 10월 30일~11월 2일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북한 124군부대 무장공비 126명이 경북 울진, 강릉 삼척에 침투해 민간인 23명을 피살했다. 우리 군은 무장공비 중 109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했으나 아군도 38명이 전사하고, 64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미국과 베트남이 파리평화협정을 진전시키는 등 동·서 대결 분위기가 완화되자, 북한은 중공과 소련의 군사 원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한반도의 긴장 상태를 부각하고자 했다.

    △1969년 12월 11일 KAL기 납치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가던 KAL기를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했다. KAL기를 원산에 착륙시킨 후 북한은 “자진 입북했다”고 보도했다. 1970년 2월 승무원 4명과 민간인 8명 등 12명을 제외한 39명만 귀환했고 현재까지 12명의 송환은 거부되고 있다.

    도발 사건마다 김정일 등장 긴장 극대화 통해 권력 세습

    문세광, 김현희(왼쪽부터).

    △1974년 8월 15일 남파 간첩 육영수 여사 저격

    서울 장충동 국립중앙극장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낭독하던 중 관객석에서 총성이 터졌고 육영수 여사가 사망했다. 당시 수사본부는 “재일교포 문세광이 1974년 5월 북한 만경봉호에서 공작지도원으로부터 암살 지령을 받았고, 7월 조총련 간부 김호룡으로부터 공작금 80만 엔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 무렵부터 김정일(32) 당시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위원의 호칭은 ‘친애하는 동지’ ‘당 중앙○○’으로 바뀌었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 유엔군 초소 근처에서 남측 인부들이 가지치기를 하던 중, 30여 명의 인민군이 현장에 있던 도끼와 삽, 몽둥이로 작업을 감독하던 군인들을 무차별로 가격해 유엔군 소속 미국 군인 2명이 사망했다. 김일성이 8월 21일 유감의 뜻을 전하면서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후계 체제 아래 권력을 키워가던 김정일(34) 당 정치부 위원이 주도한 ‘계획된 기습’이라는 설이 있다.

    △1983년 10월 9일 버마 아웅산 폭파사건

    북한군이 해외순방 중이던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미얀마(옛 버마) 수도 양곤의 아웅산 국립묘지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 당시 서석준 부총리, 이범석 외무부장관 등 17명이 사망했다. 버마 당국은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버마에 도착하기 하루 전 새벽, 김정일(41)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친필지령을 받은 북한군 정찰국 특공대 소속 진모 소좌, 강민철 대위, 신기철 대위 등이 아웅산 묘소로 미리 잠입, 2개의 폭탄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소련·중국과 안보협력을 강화했으며 1978~84년 제2차 7개년 경제계획 실패로 인해 터져 나오던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내부 결속을 다질 수 있었다.

    △1987년 11월 29일 KAL기 폭파, 115명 승객·승무원 모두 사망

    바그다드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보잉 707기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수사 결과 일본인으로 위장한 북한 대남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가 김정일(45)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부터 ‘88서울올림픽 참가신청 방해를 위해 대한항공 여객기를 폭파하라’는 친필지령을 받고 기내에 시한폭탄과 액체폭발물을 설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미국은 즉각 북한을 테러국가로 규정해 각종 제재를 가했다. 당시 북한은 88올림픽 공동개최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와 협상을 시작했는데 배후에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공격을 가했다. 이후 1990년 김정일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인민군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 1993년 국방위원회 위원장에 차례로 오르며 후계 체제를 공고히 했다.

    △1999년 6월 15일 제1차 연평해전, 북한 경비정 반파

    북한 경비정 4척과 꽃게잡이 어선 20척이 북방한계선(NLL) 남쪽 2km 해역까지 내려오자 우리 해군은 교전수칙에 따라 참수리급 고속정과 초계함 10여 척을 동원, 두 차례에 걸쳐 선체를 충돌시켜 밀어내는 경고조치를 실행했다. 그러나 북한 경비정은 25㎜ 기관포로 공격을 해왔고 해군이 이에 응사해 북한 측 등산곶 684호를 반파시켰다. 해군은 9명이 부상했지만, 북한은 함정 2척이 침몰하고 3척이 대파됐으며, 최소 70여 명의 사상자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 이후 남북 간에 발생한 최초의 정규전으로 우리 해군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도발 사건마다 김정일 등장 긴장 극대화 통해 권력 세습

    연평해전, 천안함 사건(왼쪽부터).

    △2002년 6월 29일 제2차 연평해전, 해군 6인 사망

    2002년 한일월드컵 결승전 및 폐막을 앞두고 모든 국민이 들떠 있던 당시, 북한 경비정 2척이 연평도 서쪽 7마일 지점에서 NLL을 침범한 뒤 방송으로 퇴각을 요구하는 우리 측 고속정 편대를 향해 갑자기 85㎜와 35㎜ 함포 사격을 가했다. 20분간 이어진 교전에서 우리 군인 6명이 사망하고 18명이 부상했으며 피격된 고속정은 예인 중 침몰했다. 북한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시기에 공격을 함으로써 NLL을 무력화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

    북한 해군 경비정 한 척이 대청도 NLL 남쪽 2.2km까지 내려와 남측 참수리 325정이 북한 경비정의 전방 1km 해상에 경고사격을 가했다. 북한 해군 경비정이 우리 고속정을 향해 50여 발을 직접 조준사격을 했고, 우리 고속정은 40㎜ 함포 100여 발로 대응사격을 실시했다. 약 2분간 벌어진 교전에서 북한 경비정은 연기가 날 정도로 반파했고, 우리 측은 인명·장비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북한은 미 국무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1개월 앞두고 있었고, 남한은 미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북한은 교전을 통해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부각해 미·북 회담 필요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또한 MB정부 ‘비핵개방 3000’에 따른 강경 대북정책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평가도 있다.

    △2010년 3월 26일 북한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 침몰

    백령도 근처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격침돼 침몰했다. 우리 해군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됐다. 합동조사단은 5월 20일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2009년 1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후계자 지명을 받은 김정은(28)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김정일과 함께 러시아·중국 등을 순방하고, 9월 28일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되는 등 권력 전면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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