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혜 채용 의혹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을 들으며 외교부 직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똥돼지’ 파문이 대한민국을 휘감았다. 제주도 토종 돼지가 아니다. 부모나 친인척의 ‘빽’으로 정부,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 공기업, 민간기업에 ‘서식하는’ 자녀들을 비꼬아 부르는 말이다. 똥돼지의 유래는 한 대기업 직원이 각종 특혜로 입사한 동료를 ‘똥돼지’라 부른 것에서 비롯됐다. 없는 자리를 만들어내고 원래 합격자를 밀어내는 그들의 몰상식이 사람의 대변, 음식쓰레기 등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똥돼지와 닮았다고 해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똥돼지 파문’의 시작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별채용(이하 특채) 파문이다. 유 전 장관은 딸을 차관 시절에는 계약직으로, 장관 시절엔 5급으로 특채하는 ‘남다른’ 딸 사랑을 보여주었다. 처음 딸 유현선 씨의 특혜 의혹이 제기됐을 때 유 전 장관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투로 대응해 국민의 분노를 샀다.
고위층 자녀 외교부 특채 의혹 터져나와
9월 6일 행정안전부 특별감사팀의 감사 결과, 외교부 특채는 응시 요건에서부터 시험 절차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장관 딸의 합격을 위한 과정이었음이 드러났다. 외교부 인사담당자는 현선 씨가 장관의 딸이란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서류심사 과정과 면접에 참여했다. 이는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다. 외교부 외부위원 3명은 면접에서 다른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줬지만 내부위원 2명은 현선 씨에게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줬다. 경쟁자를 줄이기 위해 응시자격을 축소했고, 없는 영어 성적을 새로 만들 수 있게 원서접수 마감 기간을 늘렸다.
이 사건으로 유 전 장관은 사퇴했지만 다른 의혹이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는 9월 10일 “유 전 장관을 포함해 전직 외교부 장관 3명과 전윤철 전 감사원장 등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해 의혹의 진위를 철저히 검증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전 전 감사원장의 딸은 7월 ‘불어 우수인력 일반계약직 6호’에 특채로 합격했다. 지난해 외교부가 하반기 불어 전문인력을 특채한 뒤라 특정인을 위해 정원을 늘렸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유종하 전 장관은 아들을 위해 외무고시 2부 시험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실시된 2부 시험은 외국에서 6년간 정규교육을 받은 사람이 응시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외교관 자녀 특혜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유 전 장관 측은 “2부 시험은 당시 행정자치부에서 만든 것이다. 관련법을 발의할 때 외교부에 있지도 않았으며, 아들의 임용 시점도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였다”고 반박했다. 이처럼 각종 특채 의혹이 불거지면서 행정고시 개편안, 외교아카데미 설립안에 대한 고시생들의 반발이 거세졌다.
지자체들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9월 6일 김만수 부천시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시 산하기관에 공무원, 정치인, 언론인 등의 친·인척이 다수 있는 것으로 안다. 이들은 공평하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약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천시는 산하 시설관리공단 전체 임직원 150여 명 중 20여 명이 전 시장의 조카, 전 시·도의원 자녀, 전 국회의원의 친·인척인 것으로 드러났다. 경북 문경시에서는 시장 측근들이 문경관광진흥공단에 특채돼 물의를 빚었고, 경기 성남시에서도 성남문화재단과 시설관리공단, 산업진흥재단 등에 전·현직 공무원의 친·인척, 자녀 등 40여 명이 특채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계도 똥돼지 서식처에서 예외는 아니다. 나근형 인천시교육감과 이수영 인천시의회 교육의원 자녀가 공립학교 교원으로 특채됐다. 나 교육감의 딸은 1995년부터 사립중학교 정교사로 근무하다 ‘2009년 사립교원 교육공무원 특별채용’에 응시해 공립학교 수학교사로 특채됐다. 교장급, 과장급 교원 5명은 교육감 딸이 응시했음을 미리 알고 면접에 참여했다. 이수영 교육의원의 딸도 ‘2010년도 교육공무원 특별채용’에 응시했다. 이 교육의원의 딸은 교사 경력이 3년 미만이라 채용자격이 안 됐지만 그해 응시자격이 변경돼 응시할 수 있었다. 의혹을 사는 부분이다.
똥돼지 파문이 확산되며 인터넷에는 ‘똥돼지 목격담’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다. 목격담이 구체적이라 신빙성이 높다. 정부, 학교, 군대, 기업 등 장소도 가리지 않는다. 군복무 기간의 절반을 휴가로 보낸 재벌의 아들, 인맥으로 입사한 기능직 직원, 교수인 아버지 덕으로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을 직접 보았다는 글이 인터넷을 달궜다.
그러나 똥돼지 논란이 마녀사냥식이 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모 변호사는 국회 외통위에서 제기한 ‘홍순영 전 외교부 장관이 1994년 외교부 차관 시절 아들 합격을 위해 외무고시 1차 시험 과목을 바꾸었다’는 의혹에 반론을 제기했다. 이 변호사는 “1995년 행정고시에 국제통상직이 생겼다. 외무고시도 행시 국제통상직에 균형을 맞추려고 외시 1차 시험 과목 중 문화사와 정치학을 국제법과 국제정치학으로 변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문화사 과목은 1997년 사법시험에서도 제외됐다. 충분히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에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평생 외교관으로 일하며 외교통상부 장관직에 오른 유명환 전 장관의 명예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 외교부도 장관의 공백으로 업무에 차질을 빚고 있다.
하지만 선의의 피해자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소수다. 용광로 사고, 입학사정관제 트위터 등 일련의 사건이 국민의 분노를 키웠다. 9월 7일 오전 2시경 김모(29) 씨가 충남 당진군 환영철강에서 작업을 하다 용광로에 빠져 숨졌다. 20대 청년이 ‘광온’에 숨지고 시신도 제대로 수습 못한 안타까운 일이 고위공직자 자녀들이 고수입의 안정적인 일자리를 꿰찬 것과 대비된 것이다. 여기에 스피치 학원장 김모 씨가 트위터에 “집사람이 입학사정관이니 후배 덕 좀 보라”는 글을 올려 민초의 공분을 샀다. 고시생 안모(28) 씨는 “취업은 생각이 없느냐, 언제 합격할 거냐는 친척의 질문에 귀향 스트레스가 심하다. 취업을 못해 부모와 집안 어른들에게 미안했지만, 지금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취직 못 시켜주는 부모와 친척을 탓해야겠다는 나쁜 마음이 든다”고 씁쓸해했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 시대에 고함’의 저자 정대진 씨는 “떨어진 사람이 결과를 승복하고 인정하려면 절차적 정당성이 중요한데 깨져버렸다. 뒤처지고 탈락하는 사람들은 어느 시대나 있었지만, 과정이 신뢰받지 못하면 사회가 불안해질 것이다. 똥돼지 파문이 계속된다면 개천에서 용이 날 문은 더 좁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똥돼지 때문에 용이 되지 못한 개천의 장삼이사 이무기들은 이번 추석도 고향 가기가 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