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에 치른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여당인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재집권에 실패했다. 최종집계 결과는 기민련 67석(34.6%), 사민당 67석(34.5%), 녹색당 23석(12.1%), 자민당 13석(6.8%), 좌파당 11석(5.6%). 주정부를 수립하려면 총 181석 중 91석 이상을 차지해야 하는데, 전통적 연합은 모두 과반에 미치지 못했다. 앞으로 두 달간 복잡한 합종연횡(合從連橫) 협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민당+녹색당+α’ 형태의 새로운 내각이다. 그리고 사민당 주당대표(州黨代表)인 한네로레 크라프트가 주도(州都) 뒤셀도르프 공관의 새 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언제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전후(戰後)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했던 독일 경제의 심장부 ‘루어 공업단지’(뒤스부르크, 에센, 보훔, 도르트문트 등 공업도시)가 이 주에 있다. 아직도 수도 기능을 절반가량 담당하는 도시 본과 독일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쾰른이 이곳에 자리한다. 이처럼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대도시가 몰려 있고, 독일 인구 약 8000만 명의 4분의 1가량인 1800여만 명이 이곳에 살며, 각 주대표로 구성된 연방상원(Bundesrat) 총 69석 중 가장 많은 6석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곳의 동향에 정치 세력들은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2005년 5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의 패배가 유력해지자, 그날 저녁 슈뢰더 당시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기를 1년 넘게 남겨둔 시점이었지만 자신의 재신임을 연방의회에 물을 것이며, 만일 신임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의회 해산을 요청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후 정국은 급물살을 탔고, 그해 가을 메르켈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뒤셀도르프에서 일어나는 정치 격변은 종종 베를린까지 뒤흔드는 파괴력을 보인다.
사실상 중간평가, 정권 내주는 굴욕
이번 선거는 시기상으로도 중요했다. 독일에서는 각 주에서 치르는 지방의회 선거가 통상 중앙정치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닌다. 올해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가 유일했다. 메르켈 정부도 그 점을 다분히 의식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모두 선거 이후로 미루려 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내 여론에 따라 그리스 지원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민련-자민당 연정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 득표율보다 10% 이상 잃으며 정권을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
선거결과를 지역 내부 사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공단, 탄광, 철광 등 큰 회사가 몰려 있는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의 입김이 강하다. 따라서 19세기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사민당에게는 이곳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5년 전 기민련-자민당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정권을 넘기기 전까지 사민당이 39년이나 연이어 통치하던 아성(牙城)이었다. 즉, 지난 5년간 기민련-자민당 정권이 예외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연초 불거졌던 뤼트거스 현 주지사의 스폰서자금 스캔들도 기민련에는 악재였다. 독일 평균실업률 9%를 넘어서는 이 지역 11.7%의 실업률도 야당에 유리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가 독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이유는 2009년 말 출범한 메르켈-베스터벨레 연방정부가 지난 반년간 보인 좌충우돌 행보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민당 당수 베스터벨레는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현재 연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감세와 의료보험 개혁 역시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민련은 자민당을 따라가는 입장인데, 야당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의료보험 개혁은 구멍 난 공보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필립 뢰슬러 보건부 장관이 추진하는 사안이다. 현재 독일 공보험 가입자들은 소득에 따라 차등 책정된 보험료를 납부하면, 각종 의료혜택을 거의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피보험자가 소득을 낮춰 신고하는 사례가 많고 병원에선 비싼 약 처방과 시술을 하고 있다. 노인들의 경우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 공보험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연방정부는 4월부터 공보험 가입자에게 저가의 복제약 처방만 하도록 했다. 또 저소득자나 고소득자가 동등하게 일정 금액을 내는 보험료의 정액제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부담이 돌아갈 것이 명백하다.
기업과 공장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조치도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자민당에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감세 조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2년간 연방과 지방정부들이 마구 국고를 풀어 국채와 지방채의 규모가 감당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함부르크 시장 올레 폰 보이스트는 5월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시점에서 감세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정신에 맞는 정책을 펴려 한다. 그러나 미국발(發) 경제위기 폭풍이 ‘세계화’의 깃발을 찢고 한바탕 쓸고 간 상황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은 지난해 총선과 비교할 때 반 토막이 됐다. 기민련의 사정은 조금 낫다. 메르켈의 지도 아래 기민련은 변모했다. 여성, 가족 정책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환경 분야에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보완됐다. 기민련과 자민당은 오랜 연정 파트너였으나 헤어졌던 12년 동안 서로 많이 변했다. 기민련은 비교적 현실 파악을 하며 스스로를 바꿔갔는데, 자민당은 옛 모습 그대로다. 과거의 연인을 오래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묘한 기분,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꼭 그런 느낌이다.
독일 정계 지각변동 가능성
지방선거의 여당 패배가 예상되던 5월 6일, 베를린에서는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기민련 지도부와 주지사, 주당대표의 회합이 있었다. 이날 모임에서 주지사들은 예상되는 선거 패배의 주요인으로 자민당을 지목했으며, 무리한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자민당과의 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 특히 이날 발언을 주도했던 헤센 주지사 롤란트 코흐는 “지방정부의 엄청난 재정위기를 고려할 때 이번 회기 안에 감세는 불가능할 것임을 메르켈 총리가 확실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는 현 내각을 구성할 때 기민련이 자민당과 맺은 연정협상 파기를 뜻하는 것이기에 메르켈이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메르켈은 “자민당은 여당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현실 감각이 무디다. 이제 겨우 실현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조금씩 분별하고 있다”며 “지금은 자민당을 달래며 함께 가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흐는 “메르켈 총리가 내각 수반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해 자민당이 이성을 찾게 만들어야 한다”며 압박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2011년에 있을 다른 지방선거들도 위태롭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
이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정권을 상실하면서 자민당의 핵심 정책들은 상당수 실현 가능성이 없게 됐다. 주대표들이 구성하는 상원의 6석을 잃음으로써 기민련-자민당이 보유한 의석수가 총 69석 중 과반에 못 미치는 31석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세, 의료보험 개혁 등을 위해선 야당까지 설득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독일 정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연방정부의 기민련-자민당 내각이 쪼개질 가능성이다. 기민련 안에서는 골치 아픈 파트너 자민당을 버리고 사민당, 녹색당 중 새로운 연정 파트너를 찾는 게 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자민당 역시 지금처럼 욕만 먹고 정책 구현도 못할 바에 차라리 예전처럼 야당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위기로 휘청거리는 유럽을 바로잡느라 골치 아픈 메르켈 총리에게 자민당을 둘러싼 국내 정세가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다.
독일 16개 주 가운데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는 언제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전후(戰後) ‘라인강의 기적’을 주도했던 독일 경제의 심장부 ‘루어 공업단지’(뒤스부르크, 에센, 보훔, 도르트문트 등 공업도시)가 이 주에 있다. 아직도 수도 기능을 절반가량 담당하는 도시 본과 독일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쾰른이 이곳에 자리한다. 이처럼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대도시가 몰려 있고, 독일 인구 약 8000만 명의 4분의 1가량인 1800여만 명이 이곳에 살며, 각 주대표로 구성된 연방상원(Bundesrat) 총 69석 중 가장 많은 6석을 차지하기 때문에 이곳의 동향에 정치 세력들은 늘 민감하게 반응한다.
2005년 5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의 패배가 유력해지자, 그날 저녁 슈뢰더 당시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임기를 1년 넘게 남겨둔 시점이었지만 자신의 재신임을 연방의회에 물을 것이며, 만일 신임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의회 해산을 요청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했다. 이후 정국은 급물살을 탔고, 그해 가을 메르켈은 총리 자리에 올랐다. 이처럼 뒤셀도르프에서 일어나는 정치 격변은 종종 베를린까지 뒤흔드는 파괴력을 보인다.
사실상 중간평가, 정권 내주는 굴욕
이번 선거는 시기상으로도 중요했다. 독일에서는 각 주에서 치르는 지방의회 선거가 통상 중앙정치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지닌다. 올해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회 선거가 유일했다. 메르켈 정부도 그 점을 다분히 의식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모두 선거 이후로 미루려 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내 여론에 따라 그리스 지원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기민련-자민당 연정은 이번 선거에서 지난 득표율보다 10% 이상 잃으며 정권을 내주는 굴욕을 당했다.
선거결과를 지역 내부 사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공단, 탄광, 철광 등 큰 회사가 몰려 있는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의 입김이 강하다. 따라서 19세기 노동운동에 뿌리를 둔 사민당에게는 이곳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5년 전 기민련-자민당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정권을 넘기기 전까지 사민당이 39년이나 연이어 통치하던 아성(牙城)이었다. 즉, 지난 5년간 기민련-자민당 정권이 예외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연초 불거졌던 뤼트거스 현 주지사의 스폰서자금 스캔들도 기민련에는 악재였다. 독일 평균실업률 9%를 넘어서는 이 지역 11.7%의 실업률도 야당에 유리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가 독일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이유는 2009년 말 출범한 메르켈-베스터벨레 연방정부가 지난 반년간 보인 좌충우돌 행보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민당 당수 베스터벨레는 입을 열 때마다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았다.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이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현재 연방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감세와 의료보험 개혁 역시 여전히 논란거리다. 기민련은 자민당을 따라가는 입장인데, 야당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의료보험 개혁은 구멍 난 공보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필립 뢰슬러 보건부 장관이 추진하는 사안이다. 현재 독일 공보험 가입자들은 소득에 따라 차등 책정된 보험료를 납부하면, 각종 의료혜택을 거의 무상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피보험자가 소득을 낮춰 신고하는 사례가 많고 병원에선 비싼 약 처방과 시술을 하고 있다. 노인들의 경우 병원에서 살다시피 해 공보험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이에 연방정부는 4월부터 공보험 가입자에게 저가의 복제약 처방만 하도록 했다. 또 저소득자나 고소득자가 동등하게 일정 금액을 내는 보험료의 정액제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우 사회적 약자에게 더 큰 부담이 돌아갈 것이 명백하다.
기업과 공장의 세금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조치도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자민당에서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감세 조치가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지난 2년간 연방과 지방정부들이 마구 국고를 풀어 국채와 지방채의 규모가 감당하기 힘들 지경에 이르렀다. 함부르크 시장 올레 폰 보이스트는 5월 8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시점에서 감세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민당은 한마디로 신자유주의 정신에 맞는 정책을 펴려 한다. 그러나 미국발(發) 경제위기 폭풍이 ‘세계화’의 깃발을 찢고 한바탕 쓸고 간 상황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은 지난해 총선과 비교할 때 반 토막이 됐다. 기민련의 사정은 조금 낫다. 메르켈의 지도 아래 기민련은 변모했다. 여성, 가족 정책에 많은 진전이 있었고 환경 분야에도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거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도 보완됐다. 기민련과 자민당은 오랜 연정 파트너였으나 헤어졌던 12년 동안 서로 많이 변했다. 기민련은 비교적 현실 파악을 하며 스스로를 바꿔갔는데, 자민당은 옛 모습 그대로다. 과거의 연인을 오래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는 묘한 기분, 기민련-자민당 연정이 꼭 그런 느낌이다.
독일 정계 지각변동 가능성
지방선거의 여당 패배가 예상되던 5월 6일, 베를린에서는 메르켈 총리를 비롯한 기민련 지도부와 주지사, 주당대표의 회합이 있었다. 이날 모임에서 주지사들은 예상되는 선거 패배의 주요인으로 자민당을 지목했으며, 무리한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자민당과의 관계 재검토를 요구했다. 특히 이날 발언을 주도했던 헤센 주지사 롤란트 코흐는 “지방정부의 엄청난 재정위기를 고려할 때 이번 회기 안에 감세는 불가능할 것임을 메르켈 총리가 확실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는 현 내각을 구성할 때 기민련이 자민당과 맺은 연정협상 파기를 뜻하는 것이기에 메르켈이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메르켈은 “자민당은 여당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현실 감각이 무디다. 이제 겨우 실현할 수 있는 것과 그럴 수 없는 것을 조금씩 분별하고 있다”며 “지금은 자민당을 달래며 함께 가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하지만 코흐는 “메르켈 총리가 내각 수반으로서 지도력을 발휘해 자민당이 이성을 찾게 만들어야 한다”며 압박했다. 그렇지 못할 경우 2011년에 있을 다른 지방선거들도 위태롭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
이번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정권을 상실하면서 자민당의 핵심 정책들은 상당수 실현 가능성이 없게 됐다. 주대표들이 구성하는 상원의 6석을 잃음으로써 기민련-자민당이 보유한 의석수가 총 69석 중 과반에 못 미치는 31석이 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세, 의료보험 개혁 등을 위해선 야당까지 설득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5년 전과 마찬가지로 독일 정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바로 연방정부의 기민련-자민당 내각이 쪼개질 가능성이다. 기민련 안에서는 골치 아픈 파트너 자민당을 버리고 사민당, 녹색당 중 새로운 연정 파트너를 찾는 게 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자민당 역시 지금처럼 욕만 먹고 정책 구현도 못할 바에 차라리 예전처럼 야당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의견이 나온다.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위기로 휘청거리는 유럽을 바로잡느라 골치 아픈 메르켈 총리에게 자민당을 둘러싼 국내 정세가 또 다른 시련으로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