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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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지적했다고 집단 린치, 의협은 원초적인 부실”

의협 이원보 감사 “윤리위는 장동익-경만호 라인, 집행부 도덕성 실종”

  • 김해=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0-05-17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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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횡령 지적했다고 집단 린치, 의협은 원초적인 부실”
    올해로 5년째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감사직을 수행하는 이원보(62) 감사는 얼마 전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이하 윤리위)에서 회원정지 2년이라는 중징계를 당했다. 감사가 윤리위로부터 징계를 당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사연인즉 이랬다. 2009년 10월 이 감사가 대법원에서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장동익 전 회장과 사문서 위조 및 동행사죄로 불구속 기소된 전철수 전 보험부회장이 윤리위 심의 대상이 되는지를 질의한 게 발단이 됐다. 윤리위는 이에 ‘징계 요청인지, 유권해석 또는 법적 자문을 구하는 것인지 모호하다’며 정식 징계요청서를 통해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윤리위가 의도적으로 답변을 거부한다고 판단한 이 감사는 윤리위에 대한 업무감사를 위해 회의록 일체를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윤리위는 이를 거부했다. 비공개 회의이기 때문에 회의록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감사는 명백한 감사 거부에 해당한다며 윤리위 회의록을 압수해 봉인해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윤리위가 거꾸로 이 감사에 대한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1월 26일 1차 징계 ‘시정 및 경고조치’, 4월 2일 2차 징계 ‘자격정지 2년’. 이 감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통상 윤리위의 비공개 회의록도 감사 대상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대의원들은 의협 사상 최초 비공개로 진행한 4월 25일 총회에서 ‘윤리위 감사 징계철회-이원보 감사 법적대응 중단 권고안’을 표결에 부쳐 가결시켰다. 반면 이 감사가 적발한 경만호 회장 1억 원 횡령의혹 건에 대한 외부 회계감사 및 특별감사 안건은 부결시켰다. 의협은 이것으로 모든 것이 일단락됐다고 발표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5월 3일 경남 김해 자택에서 이 감사를 만났다.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 월급 받으면서 감사하는 것도 아니고, 교통비만 나오는데 항공료에 택시비를 합하면 모자란다. 욕 얻어먹으면서까지 내가 왜 이런 미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집행부에 더 기대할 것도 없다. 장동익 전 회장에 대해 민사소송만 매듭지으면 미련 없이 손 털고 나올 생각이다.”

    대의원총회에서 일단락된 것 아닌가.

    “아직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본질적인 문제는 장 전 회장과 전철수 전 보험부회장에 대한 징계처리 여부다. 일반 회원에게는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이런 사람을 옹호하는 조직이 과연 정상적인가.”

    윤리위에 두 사람이 징계 심의대상이 되는지 질의한 이유는 무엇인가.

    “윤리위가 문제의 두 사람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지 않자 회원들 사이에서 직무를 태만히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적이 많았다. 징계를 심의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느냐고 질의를 했으면 적극 검토해보겠다고 답하는 게 상식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없는 정식 징계요청서로 신청을 하라니, 그게 하기 싫다는 소리와 뭐가 다른가. 처음엔 몰랐는데 속내를 들여다보니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럴 만한 이유라니….

    “장 전 회장이 의협 회장일 때 서울시의사회 회장이 지금의 경 회장이다. 장 전 회장의 비리가 불거졌을 때 대의원총회에서 회장 불신임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은 경 회장 측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두 사람이 가깝다. 10명의 윤리위 위원을 보더라도 3분의 2 이상이 그쪽 사람이다. 상당수는 장 전 회장 때 집행부다. 경 회장이 고문으로 있던 ‘의료와 사회포럼’(이하 의료포럼)에 소속된 위원도 2명이나 된다. 장 전 회장은 의료포럼 자문위원장이었다. 누가 봐도 다 연관이 돼 있다. 그러니 징계를 할 수 있었겠는가.”

    “횡령 지적했다고 집단 린치, 의협은 원초적인 부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사무실 한쪽에 쌓여 있는 감사 자료. 의협에는 감사실이 따로 없다.

    대의원총회에서 경 회장 1억 원 횡령의혹 사건에 대한 특별감사 안건을 부결시켰다.

    “대의원들이 내막을 잘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한편으론 의협 내부의 일이 밖으로 알려져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경 회장의 1억 원 횡령의혹 사건은 내부적으로 봉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경 회장은 1억 원이라는 협회 공금을 개인통장에서 개인통장으로 옮기는 방법으로 빼돌렸다. 협회에 되돌려줬다고 해서, 동기와 목적이 아무리 순수했다고 해서 수단과 방법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 외부 회계감사와 특별감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대의원총회에서 이 감사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높았다던데.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감사의 지적을 시정하고 개선한다. 안 그러면 감사가 무슨 필요 있겠는가. 감사를 한 나를 비판하는데, 그럼 그런 문제를 지적하지 말라는 말인가. 경 회장이 해명하기를 대외업무를 추진할 돈이 없어서 그랬다고 하는데 정당한 회계 절차를 밟아서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개인통장을 이용한 것은 누가 봐도 범죄다. 그것을 지적한 사람을 집단 린치하는 조직이 바로 우리 조직이다.”

    협회의 회무와 회계 처리과정에서 매년 문제가 생겼다. 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07년 장 전 회장이 구속된 것도 내 감사보고서가 발단이 됐다. 그때 나도 많이 힘들었다. 혹시 내가 잘못했나 싶어서 감사교육도 받고 감사와 관련된 책도 사봤다. 그 과정에서 우리 조직이 얼마나 낙후했는지 알게 됐다. 현재 의협은 내부 부정과 비리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집단 린치하고 회무 규정에 벗어나는 짓도 서슴없이 하는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의협은 어떤 조직이라고 생각하나.

    “구성원들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자타가 인정한다. 그런데 산술적인 합이 더 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모이면 능력이나 자질이 더 나빠진다. 개개인이 자기중심적이고, 주관도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이해관계가 없으면 아주 무관심하다, 자기 영역을 조금만 침범하면 상대방을 공격한다. 리더나 자신이나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리더면 괜찮은데 별 차이가 없으면 쉽게 무너진다. 전직 회장들은 구성원들과 비슷하거나 평균치 이하다. 여기에 도덕성까지 낮으니 버티지 못했던 것이다.”

    현 집행부에 대해 평가한다면.

    “현 집행부는 조직을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하려고 한다. 회의 녹취록도 없애고, 인터넷 게시판인 ‘의협플라자’에 비판적인 글을 올리는 것도 제재하려 한다. 의협이 발전하려면 긍정적인 변화가 가능한 조직이 돼야 한다. 집행부와 회원들이 제대로 소통해야 한다. 그러려면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그런데 현 집행부는 회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안팎의 비판에 귀를 열어야 한다.”

    의협 윤리위는 대의원총회 다음 날인 26일 이 감사의 회원 자격을 정지시켰다. 대의원총회에서 결정한 이 감사의 징계철회 권고안에 대해서는 논의 중이라고 한다. 5월 12일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이 감사는 “무척 당혹스럽다”면서 “한 달 전만 해도 법적 대응을 불사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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