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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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주 탄생 비밀의 문 열리나

양성자 2개 충돌 ‘빅뱅 실험’에 성공 … 빛의 속도로 가속시키는 것이 관건

  •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입력2010-04-26 18: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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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우주 탄생 비밀의 문 열리나

    중이온 가속기

    인간이 입고 먹고 쓰는 모든 사물의 근원은 무엇일까. 우주 만물을 구성하는 물질은 어디에서 왔을까. 과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그 근원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그들은 우주가 탄생한 순간, 즉 천지창조의 순간을 포착하면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많은 과학자는 스위스 제네바의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설치한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해답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LHC는 빛의 속도로 가속시킨 양성자 입자를 충돌시켜 우주가 탄생한 순간인 ‘빅뱅’을 연출하기 위해 지하 100m 깊이에 설치한 둘레 27km의 인공시설물이다. 3월 30일 LHC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가속시킨 양성자 2개를 충돌시키는 ‘빅뱅 실험’에 성공했다.

    입자 가속기는 원자를 구성하는 양성자와 전자, 이온 등 입자를 전기장을 사용해 빛의 속도인 초속 30km에 가깝게 높여주는 장치다. 광속에 버금가는 속도로 날아가는 입자를 충돌시켜 여기서 나온 미립자를 관찰하거나 파생된 ‘빔(Beam)’을 각종 연구나 암 치료에 활용하도록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LHC는 대표적인 양성자 가속기로 꼽힌다.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를 정면충돌시켜 이 양성자가 쪼개지면 여기서 나오는 소립자들을 관찰한다. 충돌할 때 나오는 엄청난 에너지 때문에 입자가 쿼크, 글루온 등으로 부서지면서 지금까지 관찰하지 못했던 소립자와 상호작용 현상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를 통해 우주와 자연의 근원을 한 꺼풀 벗겨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2개의 양성자 빔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하면 초기 우주의 상태인 빅뱅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주를 구성하는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정체, 입자들의 초대칭 짝입자 존재 여부, 물질과 반물질의 성질을 알아낼 수 있다.



    과학자들은 먼저 모든 질량의 근원인 힉스의 존재 여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한다. 입자물리학에서는 양성자, 중성자 등 모든 소립자에 질량을 갖게 하는 힉스라는 입자의 존재를 가정해왔다. 힉스가 없다면 우주의 질량은 제로다. 우주의 근원을 설명하는 데 상용되는 표준모형에 따르면 물질은 쿼크 6개와 렙톤 6개, 그리고 이들을 묶는 힘(보존) 4개와 힉스로 구성된다. 1964년 주창자인 영국 에든버러 대학 힉스 교수의 이름을 딴 이 입자는 다른 입자와 달리 아직까지 검출되지 않았다.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성질 파악

    그런데 힉스는 양성자가 충돌할 때 아주 짧은 순간(10의 25제곱분의 1초) 존재했다가 붕괴되는 성질이 있다. 과학자들은 양성자를 전자기장 안에서 빛 속도의 99.97% 이상의 속도로 날려 서로 부딪치면 힉스 입자를 검출할 수 있다고 본다. 만에 하나 힉스가 발견되지 않을 경우 표준모형은 근본적으로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LHC는 이 밖에도 새로운 물리 이론의 성립을 가속화할 연구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주에 존재하는 힘을 통합하는 이론을 찾는 작업도 그중 하나.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물질의 붕괴와 관련된 약력 그리고 핵의 구조를 설명하는 강력이라는 네 가지 힘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태초에 우주가 시작되던 시점에는 이 네 가지 힘이 하나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론물리학자들은 바로 이 여러 힘을 하나로 통합하는 ‘만물의 법칙(TOE·theory of everything)’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TOE의 유력한 후보가 바로 초끈이론이다.

    초끈이론에 따르면 물질의 최소 단위는 점이 아니라 고무줄 같은 끈이다. 마치 바이올린 줄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가 나듯 끈의 진동에 따라 다양한 입자와 힘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 입자는 각각의 초대칭 짝이 있다.

    올해 우주 탄생 비밀의 문 열리나

    한국인 과학자가 포함된 국제 연구진이 중이온 가속기로 ‘갓난아기 우주’ 재현에 성공했다.

    LHC에서 미니 빅뱅을 발생시켜 초대칭 입자를 발견한다면 이론에만 그쳤던 끈이론이 첫 번째 증거를 확보하게 된다. 과학자들은 LHC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양성자를 충돌시키면 다양한 초대칭 입자가 생성될 것으로 본다. 특히 쿼크끼리의 상호작용을 묶는 글루온 입자의 초대칭 짝인 글루이노와, 쿼크의 초대칭 짝인 초쿼크를 다량 검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초대칭 입자는 우주의 23%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증명할 열쇠를 쥐고 있다. 초대칭 입자 가운데 가장 가벼운 LSP는 현재 우주 전체 에너지의 23%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제1 후보로 꼽힌다. LHC는 2008년 9월 10일 공식 가동을 눈앞에 두고 고장이 나는 등 그동안 잦은 고장으로 제 성능을 내지 못했다. 실제로 우주 빅뱅 실험이 성공하기 위해 LHC가 넘어야 할 벽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CERN 관계자는 이번 실험에 앞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바늘 2개를 쏴서 대서양 한가운데서 충돌시키는 일”이라고 비유하기도 했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날아가는 양성자 2개를 정확히 서로 맞추는 것만도 굉장히 어려운 과제다.

    특히 엄청난 에너지로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시키는 문제도 남아 있다. 에너지가 높을수록 입자 속도는 빨라진다. LHC는 지난해 11월 말 0.45TeV(테라전자볼트) 수준의 양성자 빔을 투입해 첫 충돌실험을 실시한 뒤 서서히 가동에너지를 높이고 있다.

    중이온 가속기로 원자핵 발견

    3월 30일 진행한 실험에서는 7TeV의 고에너지로 양성자 빔을 충돌시켰다. 다시 말해 양쪽 궤도에 각 3.5 TeV의 에너지로 양성자 빔을 충돌시킨 것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입자 가속기가 세운 최고 충돌속도보다 3.5배 빠른 사상 최고 기록에 해당한다. 지금까지는 미국 페르미 국립가속기연구소가 양성자와 반양성자를 각각 0.98TeV로 충돌시킨 실험이 세계 최고였다. CERN 측은 앞으로 출력을 계속해서 올릴 계획이다.

    하지만 현재 초기 우주에 대한 연구가 LHC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중이온 가속기 역시 태초의 우주의 신비를 벗길 장치로 평가된다. 중이온 가속기는 헬륨(He)보다 큰 원자를 이온화해 가속시키는 장치.

    얼마 전 LHC는 초기 우주에 대한 중요한 연구 성과를 중이온 가속기에 내줬다. 부산대 물리학과 유인권, 이창환 교수가 포함된 국제 공동연구팀은 미국 브룩헤븐 국립연구소의 상대성중이온가속기(RHIC)를 이용해 반입자만으로 이뤄진 원자핵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과정에서 100만분의 1초간 미니 빅뱅을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3월 5일자에 발표한 것이다. CERN의 LHC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가속기는 RHIC였다.

    과학자들은 LHC와 RHIC를 이용한 실험이 잇따라 성공함에 따라 본격적인 빅뱅 연구가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CERN 측은 올해 안에 납핵끼리 충돌시켜 137억 년 전 우주를 재현하는 ‘빅뱅 실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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