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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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폴란드 ‘쇼팽 기념관’ 곳곳에 그의 숨결 … 첨단 기술 활용한 전시 색다른 경험

  • 글·사진=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입력2010-04-26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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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쇼팽이 음악을 배우고 성장했던 폴란드 바르샤바. 쇼팽 탄생 200주년을 맞아 다채로운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

    레흐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부부와 고위 관리들이 탄 비행기가 러시아 스몰렌스크 공항에서 추락해 전원 사망한 사건은 세계인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1940년 소련의 스탈린이 무려 2만2000여 명의 의사, 군인, 교수 등 폴란드 엘리트를 살해해 암장한 ‘카틴 숲의 학살’ 추모행사에 가던 길이었다.

    러시아와 독일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폴란드의 역사는 파란만장했다. 1772년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 지배되다가 1795년 주권을 상실하고 120여 년간 러시아제국의 혹독한 지배를 받았다. 이 시기에 태어난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Fr·#47045;·#47061;ic Fran·#46828;is Chopin·1810~ 1849)은 쓰라린 나라의 운명을 보며 자랐고, 마음 한구석에는 강한 애국심이 자리 잡았다.

    쇼팽은 아름다운 피아노 작품에 애국심을 담았다. 마주르카, 폴로네즈 등 민족성을 반영한 음악은 많은 폴란드인의 심금을 울렸고, 나아가 그들의 민족성을 결집하는 매개체가 됐다. 폴란드인에게 쇼팽과 그의 음악은 영웅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피아노 시인’ 탄생 200주년 곳곳에서 기념

    오늘날 쇼팽은 폴란드의 으뜸가는 국가 브랜드다. 수도인 바르샤바에 발을 디디자마자 보게 되는 건물도 프레데리크 쇼팽 국제공항이고 시내 중심부로 들어서면 쇼팽 거리, 쇼팽 공원, 쇼팽 박물관, 쇼팽 협회, 쇼팽 센터, 쇼팽 음악대학 등을 만난다. 상점에선 쇼팽 보드카, 쇼팽 초콜릿 등 쇼팽의 이름이 들어간 상품을 무수히 볼 수 있다.



    쇼팽은 966년 폴란드 건국 이래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세계적으로 걸출한 피아노곡 작곡가였다. 피아노 작품 작곡에 전 생애를 걸었던 쇼팽은 교향곡의 베토벤, 실내악곡의 하이든, 가곡의 슈베르트처럼 피아노 분야서 영원한 왕좌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쇼팽은 일찍이 음악적 재능을 나타내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였다. 7세 때 이미 2개의 폴로네즈를 작곡했고, 그의 천재성이 바르샤바에 알려져 귀족의 관심을 끌면서 1818년 8세에 첫 연주회를 했다.

    1826년부터 쇼팽은 그의 출생년도에 설립된 바르샤바 음악원(1979년 국립쇼팽음악원으로 이름이 바뀜)에서 요제프 엘스너(Jozef Elsner)에게 사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을 배웠고 1830년에는 바르샤바 대극장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1831년에는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와 빈으로 이주해 파리 근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프랑스에 머물 때 러시아의 식민통치에 반대한 폴란드인의 혁명이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낙심하기도 했다.

    쇼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바르샤바의 공원에 있는 쇼팽 동상.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 이후 1830년대 초·중반 파리는 예술가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쇼팽이 명작들을 남긴 것도 이 시기. 1838년경 그는 파리 시민에게 유명해졌다. 쇼팽은 프란츠 리스트, 빈첸초 벨리니, 헥토르 베를리오즈, 로베르트 슈만 등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특히 슈만은 쇼팽의 연주회가 끝나자 “신사 숙녀 여러분! 여기 천재 음악가가 나타났습니다. 모두 모자를 벗고 그를 경외합시다”라고 극찬했다.

    쇼팽은 죽기 며칠 전 누이동생에게 “폴란드가 독립하면 심장이라도 고국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쇼팽의 시신은 파리 근교에 안장됐고,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이 무덤에 뿌려졌다. 그의 심장은 1918년 폴란드가 해방된 이후 바르샤바에 있는 성 십자가 성당에 묻혔다. 21세가 되던 해 아버지의 조국 프랑스로 유학 갔다가 죽어서야 비로소 바르샤바에 돌아온 쇼팽, 39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음악은 시공간을 초월해 우리의 가슴에 메아리가 돼 영원히 울려 퍼진다.

    쇼팽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세계적으로 기념음악회와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조국 폴란드는 2010년을 ‘쇼팽의 해’로 정했다. 쇼팽 관련 자료와 유품 등을 전시한 기념관이 바르샤바에서 새로 문을 열었다.

    폴란드 정부는 세계 각국의 건축사사무소에 쇼팽 기념관의 건축을 의뢰했고, 치열한 경쟁 끝에 이탈리아의 밀리오레 세르베토 건축사사무소의 프로젝트가 당선됐다. 2008년에 공사를 시작해 2010년 3월 개관했는데, 덕분에 방문객은 쇼팽의 다양한 자료를 한곳에서 볼 수 있다.

    쇼팽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새로 문을 연 쇼팽 기념관(오른쪽). 내부에는 쇼팽 일대기 전시관(①)과 그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체험실(②), 악보 전시실(③) 등이 마련됐다.

    고성(古城) 11개 방 리모델링 … 다양한 자료 전시

    일단 쇼팽이 그린 초상화와 자필 문서, 악보, 생전에 사용한 가구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념관은 쇼팽의 음악과 이야기를 다양한 테마를 통해 자연스럽게 이해하도록 설계됐다. 기념관에는 독특한 선율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킨 쇼팽의 명곡이 잔잔히 울려 퍼지는데, ‘혁명 연습곡’ ‘강아지 왈츠’ ‘장송 행진곡’ ‘즉흥 환상곡’ 등은 언제 들어도 감미롭다. 음향은 전시관 전체를 아우르는 중요한 요소로, 쇼팽의 음악과 그에게 영감을 준 다양한 소리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다.

    쇼팽 기념관이 들어선 자멕 오스트롱스기히(Zamek Ostrogskich) 성은 낡아서 리모델링이 필요한 곳이었다. 기념관의 건축을 책임진 밀리오레 세르베토 건축사사무소는 자멕 오스트롱스기히 성에 있는 11개 방을 활용했다. 각 방은 ‘연인’ ‘파리’ ‘피아노’ 같은 쇼팽의 일생에서 중요했던 주제로 꾸며졌다. 방문객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쇼팽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는 느낌이 들도록 세심하게 전시한 점이 돋보인다. 또한 첨단 컴퓨터 기술을 활용한 터치스크린 방식을 도입해 역동적 기념관이 되도록 했다. ‘쇼팽을 알게 되고, 쇼팽을 경험하게 된다’라는 모토를 가진 쇼팽 기념관. 전시물은 물론 각종 영상과 음악을 통해 쇼팽을 알게 되고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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